한 무리의 새가 낙조 속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붉은 해에 부딪힌 수십 개의 점들이 타닥타닥 불타면서 이내 사라졌다. 산잔등을 걷는 두 사람의 얼굴이 노을빛으로 물들어갔다. 마을과 멀어지는 두 사람과 달리 그림자는 몸을 낮추고 마을 쪽으로 길게 늘어졌다.
친척 어른을 따라 걷던 그녀가 뒤를 돌아보았다. 고향집이 시냇가의 하얀 조약돌만큼 작게 보였다. 조금 더 걸음을 옮긴 후에는 그녀가 태어나고 자랐던 집은 보이지도 않았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 흘렀다. 지팡이 하나를 땅에 짚은 채 허리가 구부정한 당숙 어른이 혀를 찼다.
"거, 좋은 날 눈물을 보이면 쓰나. 쯧쯧."
그녀가 시집가던 날이었다. 그녀의 나이는 18세였다.
"입하나 덜어 주는 것이 효도하는 일인 게여."
동네 노인들이 그녀를 볼 때마다 한 말이었다. 그녀는 싫다고 떼를 썼다. 부모님은 아무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 자신도 머지않아 집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 밑으로 일곱 명의 동생들이 있었고 동생들은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더 많았다. 모두 가난했기에 머리가 제법 큰 아이들은 배고픔 정도야 참을 수 있었지만 아직 뒤뚱거리며 걷는 꼬맹이 몇은 자주 배고프다고 칭얼거렸다. 그녀는 동생들을 보면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친척 어르신을 찾았다.
"저, 시집갈래요. 대신에 밥은 굶지 않는 집으로 찾아봐주세요."
그녀가 시댁에 도착했을 때 그녀를 맞은 사람은 젊은 여자였다. 그녀보다 열댓 살쯤 많아 보였다. 그녀의 시어머니였다. 시어머니에게서 짙은 분 냄새가 났다. 올망졸망한 세 명의 아이들도 있었다. 도련님과 아기씨라고 했다. 시아버지는 두 번째 아내로 젊은 여자를 선택했다. 다행히 젊은 시어머니는 그녀에게 혹독한 시집살이를 시키지 않았다. 그저 살림살이만 부탁했다. 많은 동생들을 보살피며 살림을 도맡았던 그녀였다. 집안일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다만 시어머니가 장사하러 집을 자주 비우는 통에 도련님과 아기씨를 돌보는 일까지 그녀의 차지가 되었다.
그녀가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였다. 남편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새어머니도 아기를 가졌다네......"
시어머니는 또 한 명의 도련님을 출산했다. 한 달 뒤에 그녀도 아기를 낳았다. 딸이었다.
시어머니는 몸을 추스르자마자 다시 장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녀는 젖먹이 도련님에게 한쪽 가슴을 내어주어야 했다. 아기 둘을 안고 젖을 먹일 때면 한 달 앞선 사내아기가 딸의 머리를 밀어젖히기 일쑤였다.
젖먹이를 두고 밖으로 나도는 시어머니에게 아버님이 한 소리를 했다. 시어머니는 젖먹일 사람이 있는데 웬 타박이냐고 언성을 높였다.
시어머니는 더 이상 도련님이나 아기씨를 만들지 않았다. 그녀는 세 명의 자녀를 더 낳았다. 여덟 명의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모두 그녀의 몫이었다.
"남편이 바람이 났어. 날 여기 버려두고 딴 여자랑 산다니까."
새로 요양원에 입소한 할머니가 몇 마디 말을 한 후에 꼭 덧붙이는 말이었다. 할머니는 대화를 나누는 상대가 바뀔 때마다 영감이 바람났다고, 나를 버려두고 딴 여자랑 살림을 차렸다고 말했다.
할머니의 나이는 70대 중반이었다. 대강 짐작해도 할머니 남편의 나이가 80세 전후일 텐데 바람이라니. 직원들은 과거의 기억과 현실을 혼동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치매를 앓고 있는 다른 할머니들은 혀를 차며 그녀의 남편에게 분한 마음을 드러냈다. 과거의 할아버지들은 참 많이도 바람을 피운 것 같은데, 물론 이 내용을 일반화할 수는 없다. 할머니들의 증언에 의한 것이기에.
그녀의 남편은 광부였다고 한다. 검은 재를 온몸에 뒤집어쓰는 일이었지만 네 아이들 배는 곯지 않고 살았다. 남편이 갱도에 들어갈 때면, 그녀는 그가 흰 이빨을 보이며 탄광에서 나올 때까지 가슴을 졸였다. 그녀는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남 부러워하지 않고 살았다고 했다.
아이들이 하나씩 가정을 이루고 그녀 곁을 떠나갔다. 집에 아이들이 사라지자 남편의 잦은 외박이 시작됐다. 며칠씩 집에 들어오지 않기도 했다. 급기야 딴살림을 차렸다는 얘기가 들렸다. 그녀는 남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나름의 계획을 세웠다. 그녀의 묘책은 동네방네 남편의 행실을 소문내는 것이었다. 그러면 창피함을 느낀 남편이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할머니의 각본대로 남편은 돌아왔을까?
복도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던 할머니의 귀에 매달린 작고 빛나는 금 귀걸이가 흔들렸다.
"와! 할머니, 귀걸이가 이뻐요. 누가 준 거예요?"
할머니는 창문에 부딪쳐 굴절된 연한 햇빛처럼 웃었다.
"남편이 사줬지요."
옆에서 한 노인이 한쪽 눈썹을 올리며 말했다.
"그 바람난 여자에게도 같은 것을 준 게 아닐까?"
할머니가 손사래를 쳤다.
"아니에요. 그 여자에게는 더 큰 귀걸이를 줬어요."
예상과 달리 느긋한 할머니가 못마땅하다는 듯이 말을 건넨 노인이 턱끝을 들며 다시 말했다.
"아이고, 저런. 배 아파서 어째. 당장이라도 그년보다 더 큰 걸 내놓으라고 생떼라도 부려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