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십칠 세의 할머니가 고개를 숙였다. 평소 다른 노인들과 잘 어울리던 분이었는데 거실에 나오지 않고 침대에만 머물렀다. 눈물까지 흘리고 있었다. 왜 노인은 울고 있었을까?
사건은 할머니의 목욕시간에 일어났다. 목욕을 마치고 할머니가 옷 입을 때였다. 할머니는 걸을 수 없는 분이다. 휠체어를 이용해서 이동한다. 두 팔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은 가능해서 스스로 화장실 이용도 가능하다.
목욕 후 옷을 입을 때 직원 한 명이 어르신 속옷 입는 것을 도와주면서 허벅지에 걸쳐진 속옷을 끝까지 올려드리지 않고 말했다.
- 팔십이 넘었는데 팬티 정도는 입어야죠.
안전봉을 두 손으로 잡고 있던 할머니였다.손을 놓으면 쓰러질 것 같았다.
-.......
어르신은 아무 대꾸도 못 하고 고개를 숙였다. 할머니 마음에 뾰족한 못 하나가 파고들었다.
머리에 보따리를 이고 한 손에는 시장에 내다 팔 채소 담긴 수레를 잡은 채 다른 손엔 작은 아이의 팔을 잡고서도 힘들다는 소리 한번 없이 고개 두어 개를 넘던 분이었다. 그 산길을 수십 년 오가며 다섯 아이를 키워낸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요양원에 오신 이후에도 웬만한 건 스스로 하려고 노력했다.
할머니는 분을 숨기지 못하고 얼굴을 붉혔다. 할머니는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원통함을 호소했다. 곧 소문이 났다. 내막은 요양원 전체에 삽시간에 번졌다. 며칠 후 할머니 마음을 아프게 한 직원은 경위서를 썼다.
그 직원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평소 예의 있던 모습에서 찾을 수 없는 이상한 말을 한 이유가 뭘까.
요양원은 노인들에게 삶에서의 마지막 집이다. 현실적으로 그렇게 보인다. 대개는 그렇다.
하지만 노인들은 요양원을 집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서 지내고 있지만 집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밤이 되면 짐을 싸는 노인들은 말한다.
"집에 가고 싶어. 거, 왜? 집에 안 보내줘? 응?"
안타깝지만 노인들은 그들이 가고 싶어 하는 집에 갈 수 없다. 노인들이 그리워하는 집은 그분들의 기억 속에 있기 때문인데, 그 집은 어린 시절의 고향이거나 첫 신접살림을 꾸렸던 곳이거나 아이들을 키웠던 작은 집, 그곳이 그들의 집이다.
노인들의 집은 현실에서 찾을 수 없다. 그 집은 추억 속에만 존재한다.
어르신들을 보살피는 이들은 가끔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노인들이 내 가족이라는 착각.
8시간 근무라고 하지만 365일 쉼 없이 돌아가는 요양원의 특성 때문에 직원들은 마치 어르신들이 가족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어르신들을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면서부터 여러 가지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 것을 나는 자주 보았다.
집안의 분위기가 엄한 곳도 있겠지만 대부분 가정에서 가족들은 편하게 말하고 그러다 보면 가끔 말실수도 하기 마련이다. 때로는 소리를 높여 다투기도 한다. 부모에게 반말하는 자녀들도 많다. 다정한 반말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이런 일은 가정에서는 가능하지만 요양원에서는 불가하다.
요양원에서는 어르신들과 대화할 때 반말을 금지하고 있다. 염려하는 마음이 담긴 다정한 반말을 포함해서이다.
수간호사 화법이란 것이 있다. 주로 병원 등에서 사용하는 말투다.
예를 들면,
"그렇게 식사를 안 하면 큰일 나셔~"
"이리로 오세요, 추우셨지?"
"그러면 안 돼, 알았죠?"
이런 식의 존댓말과 반말을 섞은 모호한 말투를 말하는데 그 느낌은 꽤 다정한 느낌이다.
요양원에서는 이런 부드러운 반말이 험악한 말투의 시작이 될 것을 염려해서 어르신들과 대화를 나눌 때 어떤 반말도 사용하지 않도록 직원들을 교육하고 있다.
항상 부드러운 시간만 있지 않기에. 요양원에서는 언제든 극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에. 가장 흔한 일인 벽에 똥칠을 하는 일, 등등 등등!!
그런데 매일 어르신들을 만나다 보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내 가족 같다는 생각이 들고 점차 다정하게 말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이런 일은 좋은 의도로 시작된다. 그렇지만 어르신은 요양원을 집으로 생각하지 않는데 직원은 어르신을 가족으로 느끼고 허물없이 지내려고 할 때, 치매 노인과 돌보는 이의 경계가 무너지고 노인 학대라는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많은 요양원 홍보 문구에 등장하는 말,
- 가족처럼 모시겠습니다.
다들 가족들에게 잘하는가 보다. 나는 가족에게 참 못했다. 가족이니까 함부로 말한 적이 있었고, 가족이니까 무심했고, 가족이라서 남보다 신경을 덜 썼다. 가족과는 내일이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
요양원에서는 노인들을 가족처럼 모시지 말자. 제발.
요양원에 온 어르신들은 가족이 아니라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고객이니까.
할머니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힌 직원이 나쁜 의도로 말한 것은 아닐 것이다. 내 할머니에게나 할 수 있는 장난을 친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데도 말이나 행동으로 노인의 마음을 아프게 해서는 안 된다. 결코.
- 할머니, 나이 들수록 자꾸 해 버릇해야 해. 운동 삼아서 해 보자.
- 우리 할머니, 팬티 올리나 못 올리나 어디 보자. 파이팅!
내 할머니에게는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그래도 그러지는 말자) 요양원에서 일하는 직원이 현실에서 이렇게 말한다면 노인학대로 처벌받을 수 있다.
노인들과 직원들이 지켜야 하는 선이 있다. 그 선은 법으로 적확하게 표시할 수 없는 선이다. 하늘과 바다는 수평선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다. 바다와 하늘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기 때문에 수평선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노인과 그분들을 보살피는 이들 또한 적당한 거리가 꼭 필요하다. 평화롭게 보이는 수평선처럼 말이다.
비단 요양원뿐이랴!
창문에 바람이 부딪친다. 바람을 따라 하얀 구름도 함께 왔다. 곧 비가 내릴 모양이다. 이런저런 찌꺼기는 모두 씻겨 사라지고 진한 흙냄새가 피어나길. 그러고는 초록 새싹도 돋아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