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둥병이 아니라네~
할머니는 한 마리 새처럼 노래를 불렀다
침대에 누워있던 할머니가 침대 난간을 붙잡고 상체를 세웠다.
"카악"
목에 걸린 가래 뱉어내는 소리를 한번 내고 할머니는 옆 침대를 쳐다봤다. 한 할머니가 코를 골며 잠들어있었다. 할머니는 슬그머니 베개 밑에 숨겨둔 효자손을 꺼내 들었다. 아마 이번에 입사한 신임 요양보호사가 등만 긁겠다는 할머니의 말을 믿었던 모양이다.
할머니는 효자손 잡은 왼팔을 옆 침대를 향해 휘둘렀다. 팔을 쭉 뻗어도 옆 침대에는 닿지 않았다. 닿을 듯 닿지 않는 효자손을 거두어들인 할머니는 분이 풀리지 않자 자신의 침대 난간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새벽 한 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할머니, 왜 그러세요? 모두 주무시는 시간에 그러시면……."
"저 옆에서 코를 골아서 잠을 잘 수가 있어야지. 어휴. 이제 잠은 다 잤네. 그려."
평소에도 밤에 깊은 잠을 못 자는 할머니였다. 밤에 안 자니 낮에 꾸벅꾸벅 졸았고 그러면 다시 밤에는 말똥말똥 눈을 뜨고 있는 거였다. 본인은 못 자는데 옆에서 코까지 골며 자는 모습을 보니 심통이 난 모양이었다.
그냥 돌아 나올 수가 없어서 나는 할머니 침대 한쪽에 걸터앉았다. 잠깐이라도 할머니의 소란을 멈추게 할 생각이었는데 할머니는 물어보지도 않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열아홉에 시집을 갔더랬어. 큰 아버지 소개였지."
당시의 분위기는 웃어른이 소개하면 남편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결혼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할머니도 예외는 아니었다.
"남편이 말이야. 키가 크고 이마도 넓었어. 눈, 코, 입이 다 정상이었는데 보기 좋게 붙어있더라고."
할머니는 얼굴 가득 미소를 띠고 말했다. 다행히 남편 될 사람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할머니의 남편은 그녀를 많이 아껴주었다고 했다. 남편은 물려받은 농지가 꽤 있었다. 논 20마지기였다.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논 1마지기는 80평에서 300평이다. 할머니는 논 1마지기를 300평이라고 말했다. 경상도가 할머니의 고향이다.
할머니는 결혼 후 곧바로 임신했고 아이를 낳았다. 딸이었다. 그런데 그때부터 시어머니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았다. 아이를 낳고 일주일쯤 지나서 할머니의 왼쪽 허벅지부터 종아리에 붉은 반점이 몇 개 생겼다. 처음에는 엷은 반점이었는데 점차 진한 색으로 변했다. 시어머니는 집에 문둥병 환자가 생겼다며 마당에 주저앉아 땅을 쳤다. 그 길로 할머니는 집에서 쫓겨났다.
할머니는 원주 시내에 있던 기독병원에 입원했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며칠 지나자 반점은 깨끗하게 사라졌는데 할머니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할머니가 집에서 쫓겨난 이유가 반점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칵"
잠시 호흡을 고른 할머니는 가래 뱉어내는 기침 소리를 다시 낸 후 말을 이었다.
"두 번째 결혼했는데 이번에도 총각이었다니까."
나는 능력 있으셨다고 맞장구를 쳤다.
할머니는 두 번째 결혼 생활에서는 아이를 낳지 않았다.
"아이가 생기지 않은 게 아니라 가지지 않았다니까"
할머니 목소리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할머니는 몸에 반점이 생기지 않았고 쫓겨나지도 않았다.
"아드님이 계신 거로 아는데요?"
얼마 전 면회 온 아들을 떠올리며 내가 물었다.
"아들이 있지.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말하다 보니 끝도 없네. 칵."
할머니 동서가 아이를 낳다가 그만 죽었단다. 할머니는 조카를 아들로 가슴에 품었다고 했다. 아들은 유독 몸이 약했고 그 때문에 할머니는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한다. 할머니는 병원을 들락거렸던 아들이 이제는 건강하게 잘 컸다며 소리를 높였다.
"저번에 면회 오신 분은 따님이시던데요?"
나는 할머니가 한센병으로 오인되고 쫓겨난, 집에 두고 온 딸이 궁금했다.
할머니는 딸과 다시 만날 수 있었다고 했다. 후일 딸아이가 용케도 못난 어미를 찾아왔다며 할머니는 훌쩍였다.
할머니와 대화를 마치고 방을 나오는데, 할머니의 노래 같은 흥얼거림이 계속 들려왔다.
"나는 문둥병이 아니라네~~"
할머니는 자주 한 마리 종달새처럼 노래한다. 그 시절의 눈물을 덤덤하게 말한다.
할머니를 보며 나는 한 가지를 느꼈는데, 죽을 것 같은 고통도 지나고 나면 노래하듯 얘기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다.
공기 반, 소리 반으로, 자연스럽게.
*할머니 표현을 살리다 보니 문둥병이란 단어를 사용했어요.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정확한 명칭은 나병과 한센병임을 밝힙니다.
커버 사진: pixabay.com, teefar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