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LOST STORY2

아니, 어떻게 알고 왔지?

짜잔, 제 책 출간일이 5월로 앞당겨졌어요

by 고재욱

새벽 한 시가 다되어 갈 때쯤 할머니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나는 CCTV를 보고 있었는데 지체하지 않고 할머니 방으로 갔다. 화장실을 갈 때 도움이 필요한 할머니였다. 나를 본 할머니가 깜짝 놀란 얼굴이다.

"아니, 어떻게 알고 왔지?"

나는 그냥 웃기만 했는데 화면을 보고 왔다고 설명을 드려도 보청기를 뺀 할머니는 전혀 들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할머니를 부축해서 화장실로 모셨다. 할머니가 침대에 누우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고마우이"

보청기가 없으면 자신의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목소리 조절이 안된다. 다른 노인들이 깰 새라 나는 손가락 하나를 입에 붙였다. 할머니는 더 큰 소리로 외쳤다.

"조용히 하라고? 알았어."


할머니는 유달리 참견하는 것을 좋아했다. 가만히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노인에게 할머니는 괜한 재촉이었다.

"그만 방에 가서 쉬어. 어서 들어가라니까."

영문을 모르는 노인들은 눈만 끔뻑일 뿐이었다.

고관절이 부서져서 혼자 걷는 것이 위험한 노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할머니는 휠체어 안전벨트를 직원들 몰래 풀고 노인에게 말했다.

"일어나 봐. 걸어보라니까. 걷지도 못해?"

할머니의 부추김에 노인이 부들거리는 다리로 일어서다가 사고가 날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거기다가 할머니는 자신의 말만 하고 상대의 말은 잘 듣지 못하기 때문에 자주 오해를 사기도 했다. 가끔 보청기 전원이 꺼져있을 때도 있었고 할머니가 자신도 모르게 스피커 볼륨을 가장 낮게 맞춰놓은 탓이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상대편 말을 듣지 않는 모습은 비단 할머니에게만 나타나는 일은 아니었다. 요양원에서 흔한 모습이었다. 치매 노인들은 서로 전혀 다른 내용을 가지고 언성을 높일 때가 많았다. 노인들끼리 다투는 큰 이유 중의 하나가 듣지 못하거나 듣지 않는 것이었다.

오늘도 다른 노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며 다툼을 일으킨 할머니는 왜 이것저것 참견하는 걸 좋아하는 걸까?


할머니는 구멍가게 사장님이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남편과 함께 였는데 남편이 죽고 나서는 할머니 홀로 가게를 운영했다. 담배와 막걸리나 소주를 주로 파는 작은 가게였다. 할머니의 구멍가게는 동네 아줌마들이 언제라도 만날 수 있는 모임 장소였고 나이 지긋한 노인들이 과자 한 봉지에 막걸리 잔을 돌리는 곳이었다. 삼십 대에 남편을 떠나보내고 세 아이들을 위해 종일 작은 가게를 지켰던 할머니가 유일하게 세상과 소통할 수 있었던 방법은 가게에 오는 동네 사람들을 통해서였다. 할머니는 자연스럽게 이 사람 저 사람의 일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90세가 가까운 할머니다. 50년 넘게 지녔던 습관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할머니의 참견하기는 쭉 계속될 것인데, 사정을 듣게 된 후에 나는 할머니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할머니가 또 한 번 누운 채로 고개를 들었다. 나는 할머니가 몸을 일으키기 전에 할머니의 침대 옆에 섰다. 할머니는 놀란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전보다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어떻게 알고 왔어?"

나는 한 번 더 손가락 하나를 입술 앞에 세웠다.

할머니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조용히 하라고? 다 자니까 조용히 해야지."

주위를 둘러본 할머니가 우렁차게 말을 이었다.

"저 할머니는 왜 이불을 삐딱하게 덮고 있지?"

"저 노인은 아무래도 추워 보이는데."

"저 할머니는 화장실 안 가나?"

할머니의 고함에 가까운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같은 방에 있던 노인들이 마디를 했다.

할머니는 투덜거리는 노인들을 향해 웅변하듯이 외쳤다.

"시간이 몇 신데 잠을 안 자고 떠들어."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살아온 인생들이 모여 요양원이란 삶터를 만들었다. 그분들이 살아온 길을 알고 나면 이해하지 못할 행동은 없었다. 그 지독함이, 고집이, 어쩌면 이기적인 마음이 나라 잃은 설움을, 전쟁을, 가난을 견디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악착같이 살아오며 굳어진 마음이 조금씩 풀어지기를, 우리들이 그분들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기를 조용히 바라본다.



※ 제 책 출간이 5월로 앞당겨졌어요. 이 꼭지는 출간될 최종 원고에서 보류된 것입니다. 그냥 묻히는 것이 안타까워 브런치에 올립니다. 잘났거나 못났거나 다 제 자식 같은 글이니까요~~^^

곧 출간 소식 전할게요. 모두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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