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괴한 일상이 계속된다. 인적 끊긴 요양원 초입에는 키 큰 간판 두 개가 섰다. 성인 남자 키 높이의 간판에는 큰 손바닥이 그려져 있다. 천주교 법인에서 운영하는 요양원 간판에 예수님의 것도, 성모 마리아의 것도 아닌 부처님 손바닥을 새겨놓았다. 손바닥 아래로 출입금지라고 써 두었다.
건물 뒤편의 구릉에 오르면 멀리 원주시 전경이 보인다. 5세기 중반 신라의 금관처럼 군데군데 높이 솟은 빌딩이 햇볕에 반짝였다. 도시 전체를 치악산 줄기가 둘러싸고 있어서 지평선은 보이지 않는다. 산 넘어 산이 있을 뿐.
요양원 아래위로 법인 건물인 장애인 시설이 모여있다. 24시간 장애인 생활시설과 낮에만 와서 간단한 일을 하는 장애인 작업장이다. 넓은 부지에 소나무, 벚나무, 자작나무가 어우러져 요양원 모습은 사진 속 풍경 같다. 드나드는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 가끔 흔들리는 나무가 아니었다면 시간이 멈춘 것으로 착각할 정도다.
평소에도 가족을 기다리는 노인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옘병이 돈다’라고 생각하던 노인들은 뉴스를 도배하는 신종 염병 소식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다.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는다. 올 수도 갈 수도 없다. 모든 면회는 금지되었다. 붓글씨 쓰기, 종이접기, 건강 체조 등의 프로그램은 임시 휴업 중이다.
간식거리를 가져온 보호자가 요양원 현관 앞에 물건을 두고 멀찌감치 떨어져서 손을 흔들었다. 누구라도 보균자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치매 노인의 보호자는 멀리서 손만 든다. 안에서는 ‘염병이 아무리 무서워도 그렇지 어째 코빼기도 안 보이냐’고 노인들이 투덜거린다. 베지밀 1박스와 과자 몇 봉지를 받아 든 노인은 아무 말도 없다. 뉴스에서는 염병이 끊임없이 소개된다.
이 와중에, 한 달 전쯤 입소한 할머니가 옴에 걸렸다. 잠복기를 계산하면 옴에 걸려서 입소한 거로 생각된다. 옴은 진드기 종류로 피부를 뚫고 들어가 알을 낳는데, 심한 가려움증을 유발한다. 환자의 피부는 물론 옷, 이불이나 환자가 만진 곳에 알을 떨어뜨리고 이 알이 다른 사람에게 옮겨간다. 그러고는 밤이 되면 사람의 체온을 찾아 움직이는 것이다. 옴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마스크로 피할 수 없다. 전염력이 무척 강하다. 성관계로 인해 전염되기도 해서 성병으로 분류하기도 하지만 요즘은 이와는 무관하게 요양원 등에서 가끔 발생한다.
요양보호사 서너 명도 옴 확진을 받았다. 우리는 코로나를 잠시 잊어야 했다.
보건소, 시청에 연락했다. 전염병이니까. 매뉴얼대로 따라야 한다. 코로나 때문에 바쁜 시청 직원들은 고맙게도 바로 방역 일정을 잡아주었다. 옴 치료는 간단하면서 복잡한데, 연고를 얼굴을 제외한 온몸에 바른다. 몇 가지 종류의 연고가 있다. 린단, 유락신, 오메크린 등이다. 우리는 오메크린을 처방받았다. 마른 몸에 연고를 바르고 12~14시간 후에 씻어낸다. 의사 선생님은 6시간 후에 씻어도 무방하다고 했다. 보통 자기 전에 바르고 일어나서 목욕하면 될 것이다. 여기서 좀 복잡한 문제가 발생한다. 이 옴 연고를 함께 생활하는 모든 사람이 발라야 한다는 것인데, 직원의 가족을 포함해서이다. 증상이 있든 없든 요양원 직원의 가족 모두가 같은 날에 옴 연고를 발라야 한다. 어르신들과 우리는 모두 오메크린을 바르고 잠들었다.
다음날 어르신 전체 목욕을 해드리고, 침대 시트며 이불, 옷장에 있던 옷들까지 전부 세탁을 하고 고온 살균을 했다. 시청 방역팀이 요양원 전체를 소독했고, 그 시간에 어르신들은 강당이나 물리치료실에서 대기했다. 이 한 번의 소동으로 옴이 사라지지 않으면 연고를 바르는 것부터 다시 반복해야 한다. 부디 이번 한 번으로 끝나기를.
요양원은 바이러스와 세균, 진드기와 늘 전쟁 중이다. 고령의 어르신들, 당연히 기저질환이 있고 약하기만 한 노인들에게는 코로나뿐만 아니라 감기조차도 위험하니까.
많은 요양원에서는 코로나가 나타나기 전부터 입구에 손 소독제를 두었다. 직원들은 수시로 손을 씻는다. 어르신들이 병에 걸리기 전, 예방이 중요하기 때문인데, 이번 경우는 놓친 것이 많았다. (대놓고 우리 요양원을 디스 하겠다. 반성 좀 하길 바라며.)
요양원 대부분은 새로 입소하는 노인에게 증상의 유무와 관계없이 옴 연고를 바른다. 옴 진드기의 잠복기 때문이다. 입원을 끝내고 돌아오는 노인에게도 그러하고 어떤 곳은 하룻밤 외박을 해도 옴 연고를 바른다. 옴으로 돌아가시지는 않지만, 표현도 못 하는 어르신들의 괴로움을 예방하기 위해서이다. 단 한 번의 올바른 선택이 큰일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여러 곳에서 경험된 바다.
우리는 온몸을 긁으면서 입소한 노인에게 연고를 바르지 않았다. 그냥 피부염이라는 보호자의 말만 믿고. (보호자가 거짓을 말한 것이 아니고 일반 피부과에서는 초기 옴 진단이 어렵다. 혹은 잠복기였던 것 같다.)
검지 길이의 연고 하나만 발랐다면 막을 수 있는 일. 이번 일을 계기로 요양원 태도는 바뀔 테지. 앞으로는 당하고 나서 후회하지 말기를 바란다. 예방, 예방, 쫌!
입국한 후 자가격리 기간임에도 가족과 제주도 여행을 강행한 유학생 이야기를 들었다. 심지어 여행 기간 중 기침과 근육통, 코로나 감염 증상을 보였다고 한다. 예방은 못 할망정 병을 퍼트리고 다닌 모습이 충격이었다.
현장에서 쪽잠을 자며 땀 흘리는 의료진이나 봉사자들은 나와는 상관없다고 여긴 걸까. 그들은, 정부의 방침대로 집에서 강제 칩거하는 국민은 ‘순진하게 말 잘 듣는다’라고 여겼을까.
그 정도는 아닐 거로 생각하고 싶다. 그저 나 하나쯤 하는 생각이었겠지. 모처럼 가족과 만난 기쁨이 컸겠지.
꼭 직접 아파봐야 아픔을 아는 것은 아니다. 이탈리아에서 매일 코로나 현황을 올리시는 내가 꿈꾸는 그곳, 작가님의 글에서처럼 세계 각국에서 매일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죽고 있다. 두려워 떨고 있을 필요는 없지만, 코로나의 선봉장이 되어서야 하겠는가.
뻔한 결과가 보이는데, 불 속으로 달려드는 나방이 되지는 말자. 좀!
목숨 걸고 병과 싸우는 의료진과 환자분들, 열심히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우리 국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