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아파트 한 채를 선물 받았다
이 글은 출간될 책, 최종 원고에서 보류된 것인데 브런치에 남깁니다
부동산 큰 손이 있었다. 이 큰 손의 진짜 재산은 누구도 가늠할 수 없었다. 평소 그의 말에 의하면 수백 채의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었다.
큰 손, 할아버지는 몸에 살이 없어서 키가 무척 커 보였는데 실제로는 170㎝ 정도였다. 워커라는 보행 보조기를 사용해서 걸음을 움직이는 그였지만 다른 사람의 도움을 달가워하지는 않았다. 아주 느린 속도로 세수를 하고 식사를 할 때면 가장 늦게 식판을 내주었다.
그의 재산은 병실 앞쪽으로 보이는 아파트를 비롯해서 멀리 보이지 않는 산 너머까지 헤아릴 수 없다고 했다. 실제로 그의 아파트는 여러 명에게 매일 증여되었는데 그 수는 전혀 줄지 않는 듯했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를 큰 손이라 불렀다.
그는 매일 저녁 식사가 끝나면 바퀴 네 개 달린 은색 워커에 의지한 채 복도를 느린 속도로 어슬렁거리며 걸었다. 방이 다 나갔는지, 새 세입자가 들어왔는지를 확인하는 거였다. 방마다 꽉 찬 사람들을 보고 그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서 종이에 뭔가를 적었는데 전, 월세 계약서라고 했다. 실제로 그가 내민 종이에 한문으로 적은 주소가 있긴 했지만, 이름 석 자와 엉성한 주소만 있는, 달력을 재활용한 종이를 계약서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는 매일 계약서를 썼고 뜯긴 달력은 그가 사용하는 매트리스 밑에 차곡차곡 쌓였다.
그는 내게도 세 채의 아파트를 주었다. 창밖으로 마주 보이는 스물네 평의 아파트 한 채와 아직 가보지 못한 집 두어 채인데 큰손에게 아파트 세 채는 아무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그는 기분이 내키면 아파트 한 채를 선물로 주었다.
"자네가 참으로 내게 친절하게 대해 주었으니 저기 보이는 아파트 있지? 저걸 한 채 주지."
"......."
이런 식이었다.
큰손의 과거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가 어떤 경로로 그처럼 많은 재산을 모을 수 있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가 아파트 한 채씩을 내놓을 때는 모두 공손하게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한 가지 이상한 건 있었다. 큰손, 할아버지는 집 한 채 선물하는 일에는 망설임이 없었는데 월세에 대해서는 조금의 이해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같은 집에 사는 노인들에게 '왜 월세를 내지 않느냐'라고 소리치기 일쑤였다. 어떤 날은 붙잡고 있던 워커를 월세가 밀린 그의 세입자에게 휘두르기도 했는데 흥분한 그를 말리는 와중에 할아버지의 두 팔목에 퍼런 멍이 든 적도 있었다. 그는 며칠 동안 소고기 살점을 두 팔목에 두르고 있었다. 멍을 빨리 없애는 민간요법이라 했다.
그의 아파트 증여와 월세 독촉은 오래가지 못했다. 구십을 훌쩍 넘긴 그였다.
늦가을쯤에 할아버지의 식사 시간이 더 길어지기 시작했다. 마른 잎사귀 같던 그의 몸은 금세 바삭하고 부서질 것만 같았다. 목에서는 쇠 끓는 소리의 기침이 계속됐다. 39도가 넘는 열은 진통제 몇 알로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결국, 가족들은 할아버지를 병원에 모셨고 그 길로 그는 중환자실에서 지내게 됐다.
그에게 집 몇 채씩을 받은 이들은 모두 그를 걱정했는데 월세 독촉에 시달리던 그의 세입자들도 그를 염려하는 눈치였다. 월세를 채근한 적은 있었지만 한 번도 나가라고는 하지 않던 그였다. 모두 그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희망했다.
두 달 뒤에 할아버지의 부고 소식이 전해졌다. 그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나는 그를 면회 간 적이 있었다. 무의식적인 몸부림 때문에 그는 의식이 없는데도 두 팔과 두 다리가 묶여있었다. 그의 머리 위에는 링거가 주렁주렁 매달려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보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끝내 그는 떠났다.
창 너머 아파트가 눈에 들어왔다.
‘저기 보이는 아파트 있지? 저걸 한 채 주지.’
그가 한 약속이 떠올랐다.
한 직원의 탄식이 이어졌다.
"나는 아직 제주도 땅, 300평 못 받았는데……."
할아버지가 땅을 주기로 한 모양이었다. 큰 손, 할아버지에게 집과 땅을 선물 받은 모두가 아쉬운 눈빛이었다.
할아버지는 요양원에서 생활하는 치매 환자였다. 다른 기억들은 흐릿했는데 무슨 연유에선지 자신이 수백 채의 집을 보유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 수백 채의 집을 쌓아두지만 않았다. 쉼 없이 사람들에게 나누었다. 그가 집을 증여할 때는 너무나 진지했기 때문에 나는 잠시 진짜 집이 생긴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그는 있지도 않은 집을 선물했는데, 선물을 받은 이들은 그의 허풍에도 모두 행복해했다.
당신 마음에 든 사람들에게 집 한 채씩을 선물하던 큰 손은 이제 죽음을 맞이했다. 그가 선물한 아파트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같은 병실을 사용하던 치매 노인들은 주인 잃은 워커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아무 말도 없었다.
내일 할아버지의 자리에 다른 치매 환자가 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창밖에 보이는 아파트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