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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욱 May 11. 2020

글쓰기를 성경으로 배우다

감동은 덤이다

성경이 읽히기 시작했다. 아침을 먹고 난 후 상 앞에 앉아서 점심도 거른 채 저녁 식사를 청하는 동료가 나를 부를 때까지 성경을 읽었다. 혹은 성경이 나를 읽는 듯도 했다. 성경 한 구절에서 그간의 내 삶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강 집사가 두꺼운 책 몇 권을 옆에 두고 갔다. 성경 해석에 도움을 주는 책이었다.      


누가 누구를 낳고, 또 누가 누군가를 낳았다는 성경 첫 장, 창세기가 재밌기는 처음이었다. 40여 년 동안 읽기만 하면 하품이 나온 책이 성경이었다. 신약 성서 일부분을 읽은 적은 있지만 구약 성경을 펼칠 때면 창세기는 넘지 못할 시내 산-십계명과 율법을 받은 산-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런 꼭지에 감동까지 받은 것이다.      


첫 관문을 통과하자 그 이후로는 스토리가 나를 이끌었다. 성경은 설명하는 책이 아니었다. 보여주는 책인 것이다. 성경의 문장은 내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떠올랐다. 장면들은 각각의 사건이지만 하나의 의미로 끝나지 않았다.

문설주에 바른 어린양의 피는-출애굽 12장- 예수의 십자가로,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자는-이사야 53장- 약 730년 뒤 예수의 고난으로 연결된다. 성경은 하나의 메시지를 향해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날실과 씨실의 빈틈없는 짜임으로 쓰인 책이었다. 그 메시지는 예수 그리스도였다.     


이상했다. 나는 그동안 성경 읽기가 왜 그리 어려웠을까. 이리 재미있는데 말이다. 그건 내가 가르침에 집중한 탓이다. 어떤 문장이라도 뭔가 교훈이 있을 거로 생각하고 문장이 보여주는 장면을 떠올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해가 안 된다고? 흠흠! 그럼 예를 들어보자.

예전에, 내게 넘사벽이었던 창세기를 살펴보면, 여기엔 무수한 이름이 나온다. 나는 그 이름의 히브리 뜻을 찾아가며 이름 하나하나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했다. 얼마나 어려웠겠나. 셋, 에노스, 게난, 마할랄렐, 야렛, 에녹……. 졸릴 수밖에 없다.      

성경에는 주인공이 아닌 스쳐 지나가는 엑스트라의 이름도 무수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랏! 성경이 하나님께서 쓰신 책이라면(알려지기는 성경은 하나님께 인도함을 받은 사람들이 쓴 책) 하나님이 지나가는 사람 1, 사람 2, 사람 3의 이름까지 다 알고 계신다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그분께서 내 이름을 불러줄 수도 있다는 데까지 미치자 성경에 나온 그 수많은 이름이 친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름 뒤에 숨어 있던 화면들이 내 머릿속에 그려졌다. 성경 읽기가 더는 어렵지 않았다.      


그간 몇 권의 글쓰기에 관한 책을 읽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성경으로 글공부를 한다. 수천 년의 역사를 요약한 성경에는 군더더기가 있을 수 없다. 그랬다면 우리는 성경을 손에 들고 다닐 수 없었을 것이다. 분량을 줄이기 위해 장면 묘사의 문장에 꼭 필요한 표현만 있는 것이다. 수십 명의 성경 저자가 수많은 비유와 예언을 적었는데, 그 모두가 하나의 주제를 향하고 있다. 빼도 박도 못하게.

글의 구성을 익히는데 성경은 큰 도움이 된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더 알게 되는 것은 덤이다. 다만 나는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

성경을 읽을수록 느끼는 것이 있는데, 어쩌면 현대 교회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하늘을 찌를 듯한 높아진 건물에 그분이 계실 이유가 무엇일까.     


지금까지 성경 전체를 7번 읽었다. 교회에서는 완독이란 표현을 하며 그런 일에 축하를 하는 모양이지만, 나는 글공부를 위해 읽었다. 물론 감동도 크다. 그리고 계속 읽을 것이다.

잘 쓰기 위해,

그분의 뜻대로,

잘 살기 위해서.



※  이해인 수녀님께서 이번 달에 출간하는 제 책, 추천사를 써주신답니다.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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