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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욱 May 22. 2020

글쓰기는 마치 분리수거 같아서

버려질 수도 있는 글을 쓰는 이유

   원주시는 일주일에 두 번, 재활용품을 수거한다. 나는 수요일이나 토요일 저녁에 내 허리 높이의 투명한 봉지를 바깥에 내어 둔다. 비닐봉지는 50매 묶음인데, 철물점에서 4천 원을 주고 사 왔다.

  혼자 살고 있지만, 그동안 재활용품 처리에 여간 골머리를 썩인 것이 아니었다. 빈 생수병부터 음식 배달이 남긴 용기들, 각종 일회용품……. 정해진 날을 기다리며 좁은 집안에 작은 봉지나 종이상자마다 쌓여가는 재활용품들은 처치 곤란이었는데, 큰 봉지를 마련한 뒤로 이런 걱정이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재활용을 하며 환경보호에도 일조한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는 일주일에 두 번씩 어김없이 봉지가 터질 정도로 가득 찬 재활용품을 바깥에 둔다.     

 

  새벽 근무가 있는 날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나서는데 큰 트럭 한 대가 건물 입구에 서 있었다. 재활용품을 수거하는 차였다. 한 남자가 트럭 뒤로 종이상자와 비닐봉지를 옮겨 싣고 있었다. 내가 놓아둔 커다란 비닐봉지도 있었다.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새벽에 땀 흘리며 나의 재활용품을 처리해주는 남자에게 너무나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그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다.

“어유, 이렇게 일찍 수고 많으십니다. 오늘은 양이 좀 많죠?”

그가 굽은 허리를 펴며 답했다.

“이 정도는 뭐, 많은 것도 아니에요. 그래도 이 집은 정리를 잘해서 배출해 주기에 일하기가 한결 수월해요.”

그의 말에 한껏 들뜬 내가 말했다.

“아! 저기 큰 비닐이 제 것인데요. 저 정도면 꽤 재활용되겠죠?”

그가 미동도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거, 뭐. 저기서 오 분의 일 정도나 재활용이 될까 몰라요.”

내가 물었다.

“엥, 왜요? 재활용품에 딱 맞는 것만 담았는데요?”

  저렇게 큰 비닐봉지에서 딱 오 분의 일만 재활용이 된다니, 그마저도 안될 수도 있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는 손에서 장갑을 벗으며 손가락 끝으로 트럭 위에 쌓인 비닐봉지를 가리켰다. 라벨이 제거되지 않은 생수병, 색깔 있는 맥주 페트병, 음식이 묻어있는 일회용 그릇, 이 모든 것이 재활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바쁜 그를 붙잡고 오래 얘기할 수는 없었다. 그는 금세 다른 골목으로 사라졌다.

  

  며칠 후에 나는 따뜻한 캔커피 몇 개를 준비해서 새벽부터 재활용 수거 차를 기다렸다. 내가 내놓은 재활용 쓰레기가 어떻게 처리되는지 자세히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며칠 전 나와 대화를 나눴던 사내를 만날 수 있었다. 글 쓰는 이에게 취재는 기본 아니던가. 흠흠!!

  모인 재활용품은 바닥에 쌓여 큰 산을 만든다고 한다. 그 앞에는 긴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는데 벨트 위로 쓰레기들이 놓여 일렬로 이동을 하게 된다. 컨베이어 벨트 양쪽으로 사람들이 서서 재활용할 수 있는 것들과 할 수 없는, 말 그대로 쓰레기에 불과한 것들을 분리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은 버려진다고 했다. 특히 재활용할 수 없는 플라스틱은 소각로에서 태워야 하는데, 그 온도가 너무 높아서 소각로가 감당하기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예전에는 중국 등으로 보냈지만 중국이 쓰레기 수입을 중단하는 바람에 요즘은 그마저도 힘들다고 했다.

  캔커피 한 모금을 들이켠 그가 문득 말했다.

“사장님은 우리나라가 일본 폐페트병을 수입하는 거 알고 계세요?”

“네에? 우리나라 페트병도 처리하기 힘들다면서 왜 일본 거를 수입해요?”

그가 코웃음 소리를 내며 말했다.

“거참 이상하죠? 작년에만 몇천 톤의 폐페트병을 수입했다고 하더라고요. 일본 거는 페트병이 모두 투명하거든요. 라벨도 쉽게 떨어지고요. 요즘 우리나라도 쉽게 떨어지는 라벨지를 쓰는 곳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접착제로 붙여두어서 그런 페트병은 재활용이 안 돼요. 폐페트병을 활용하는 게 새로 만드는 것보다 원가가 싸다 보니 일본에서 수입까지 하는 거죠. 열심히 재활용품 분리들을 한다고 하지만 다 헛일일 때가 많다니까요.”

“아……!”

  재활용품 수거 트럭이 한쪽 등을 깜빡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가 급하게 차 뒤쪽에 만든 발판 위로 뛰어올랐다. 곧 쓰레기가 될, 어쩌면 5분의 1쯤은 살아남을 내 커다란 비닐봉지가 푸드덕거리고 있었다.     

  

  그 밤에 노트북을 열었다. 내가 쏟아내는 이야기들이 마치 주방 한쪽에 매달아둔 재활용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벨이 붙어있는, 음식이 묻었거나 담배꽁초가 들어 있는, 투명하지 않은 플라스틱병처럼 버려질 수도 있는 글들. 한동안 커서만 노려보는데 문득 그의 말이 생각났다. “5분의 1쯤은 재활용이 되지요.” 나는 다시 하얀 백지에 글자를 입력했다. 커다란 비닐봉지 안의 것이 모두 버려지는 것은 아니니까. 긴 컨베이어 위에 놓인 재활용품처럼 하얀 화면 위의 내 문장들도 일부는 살아남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날부터 나는 재활용품을 분류할 때 더 신중해졌고 글을 쓸 때는 더 생각이 많아졌다. 붙어있는 라벨이 없는지, 불투명한 병은 아닌지, 컨베이어 벨트 옆의 이들에게 위험한 물건은 없는지.

  

  다음 재활용품 수거일이 되었을 때, 큰 비닐봉지는 반도 차지 않았고 일주일에 두 번 내놓던 재활용 봉지는 한 달에 두 번으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글 쓰는 시간이 잦아졌다.


(커버 사진: pixabay, kalhh님의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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