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메기, 하늘을 날다
엄마 없던 겨울밤, 할머니의 간식
누르스름한 속살을 드러낸 물메기가 새파란 하늘에 떠있었다. 앙상한 뼈가 드러난 온몸을 날개처럼 활짝 펼친 물메기는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듯했다. 하지만 물메기는 제자리에서 버둥거릴 뿐이었다. 물메기의 몸을 관통한 얇고 뾰족한 대나무가 빨랫줄에 묶여 있기 때문이었다.
먼바다 깊은 물속에서 살았을 물메기는 육지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자신의 체취만 바다로 보내며 줄에 매달린 채 꾸덕꾸덕 말라갔다. 이미 물메기의 혼은 고향으로 떠난 것인지도 몰랐다.
투명한 겨울 햇빛으로 제 살을 말리며 계절풍에도 날아오르지 못한 물메기를 어린 나와 나처럼 네 살쯤 먹은 고양이, 나비는 함께 목을 꺾고 올려다보곤 했다. 우린 혀를 날름거리며 노릇하게 익어가는 물메기를 끝도 없이 쳐다봤는데 물메기는 아랑곳없이 살랑살랑 흔들리고만 있었다.
어린 아들을 할머니 손에 맡긴 엄마는 몇 년 동안 아들을 안지 못하고 속을 끓였다. 엄마는 폐결핵 말기였다. 그녀의 폐는 대나무에 찔린 물메기처럼 여러 개의 구멍이 난 상태였다. 어린 아들은 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다가 할머니가 엄마일 거로 생각했다. 할머니의 홍시 같은 젖가슴을 파고들 때 코끝에 스미는 냄새를 아이는 무척 좋아했다.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엄마 젖을 먹지 못한 일이 늘 서운했는데, 나는 그렇다 치고 병 때문에 아들에게 젖 한 번 물리지 못한 엄마의 마음은 또 어땠을까.
할머니는 겨울밤에 어린아이 얼굴보다 몇 배는 커다란 잘 마른 물메기를 둥근 대나무 쟁반에 담아 방으로 가져왔다. 깨가 송송 떠 있는 붉은 초장이 담긴 흰 사기그릇과 함께.
할머니가 만든 초장은 부드럽게 흐르는 것이 되직한 요즘 초장과는 질감부터 달랐다. 어린아이 입맛을 염두에 둔 것인지, 할머니의 초장은 새콤한 맛에 단맛이 살짝 강했고 매운맛은 덜한 편이었다.
나는 바닥에 놓인 물메기를 보고 환호성을 질렀고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나비는 기지개를 켜고 꼬리를 추켜세웠다. 그러면 할머니는 물 빠진 갯벌 같은 손으로 물메기를 북북 찢기 시작했다. 물메기는 가시가 많은 생선인데 억세지는 않아서 길게 살의 결대로 찢어놓으면 어린 내가 먹기에도 무리가 없었다. 다만 물메기가 지닌 특유의 결 방향대로 찢어야 한다. 잘게 찢어놓은 물메기 살은 전혀 딱딱하지 않고 보슬보슬 부드러웠고 살 주변으로 보풀이 이는 느낌이었다. 그걸 양손에 쥐고 초장을 푹푹 찍어 입에 넣으면 시고 달고 약간 매운맛 뒤로 물메기만의 향이 입안에 퍼졌다.
스스, 소리를 내며 입으로 매운 기운을 몰아내면서도 나는 물메기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옆에서 나비도 한 조각을 물고 핥고 빨면서 우리의 입은 벌겋게 물들었고 엄마 없던 그 밤도 함께 깊어갔다.
"네가 좋아하는 물메기 말려두었다."
요즘은 남해안 바닷가 근처가 아니라면 말린 물메기를 구하기가 쉽지 않은데, 엄마는 안양 농수산물 시장에서 생물 상태의 물메기를 사서 직접 옥상 빨랫줄에 말렸다고 했다.
"와! 옛날 맛이 나려나. 맛있겠다. 근데 그 몸으로 무슨 생선을 말리셨어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내 입속에는 벌써 침이 가득 고였다. 엄마는 장미 한 송이가 인쇄된 사각 쟁반에 초장과 말린 물메기를 담아 왔는데, 어렸을 때 봤던 물메기보다는 훨씬 작았다. 어쩌면 물메기는 그대로인데 내가 훌쩍 커버렸기 때문인지도.
"물메기 보니까 옛날 생각이 나네. 그때 젖도 못 뗀 널 할머니에게 보내고 얼마나 가슴 졸였던지."
옆에서 아버지가 물메기를 북북 찢기 시작했다. 물메기 살이 뜯기면서 사방으로 민들레 꽃씨 같은 먼지가 흩날렸다.
엄마는 경상남도 남해라는 섬에서 매우 유복하게 자랐다고 한다. 외할아버지 소유의 땅이 섬 곳곳에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병에 걸리면서 자리에 눕게 되었을 때 할머니는 그런 할아버지 병을 고친다며 한 종교에 빠지게 됐다. 할머니의 기도로 할아버지의 병이 나았으면 좋았겠지만 할머니는 그 많던 재산만 사이비 종교에 갖다 바쳤고 결국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할아버지가 앓았던 병은 폐결핵이었다.
결핵이 유전병인지, 결핵에 걸리기 쉬운 체질을 물려받은 것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엄마는 둘째 아이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외할아버지처럼 결핵에 걸렸다. 의사는 엄마에게 너무 늦었다며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엄마는 젖먹이 아들이 걷게 될 때까지만 살게 해달라고 빌었단다. 내가 걷게 되었을 때 엄마의 기도는 국민학교 들어갈 때까지만, 중학교까지만, 고등학교까지만 하고 바뀌었다. 내가 결혼하고 아들을 낳았을 때 엄마는 이만하면 되었다고 말했는데, 내가 사업실패로 이혼하고 노숙인이 되었을 때 엄마는 아들이 제발 노숙인 신세만 면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요즘은 아들이 새 장가갈 때까지 만으로 기도 제목이 수정되었다. 어쩌면 그럴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내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기에.
사각 쟁반 위에 아버지가 손질한 물메기가 손가락 길이로 해체되어 수북하게 쌓였다. 나는 하나를 집어 한쪽에 놓인 초장에 푹 담갔다가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엄마가 나를 쳐다봤다.
"어째, 옛날 먹던 맛이 나니?"
"이야! 이거 진짜네, 엄마! 완전 그 맛인데요. 옛날에 먹던 딱 그 맛이 나네."
나는 물메기에 묻은 초장을 쪽쪽 빨아먹고 재차 초장을 찍었다. 입에서 마구 침이 고였다. 그런데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초장을 만든다고 만들었는데, 요즘 엄마가 영 간을 못 맞춘다. 그래도 입에 맞다니 다행이네. 우리 아들 많이 먹어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사실 물메기 맛은 내가 기억하는 그 맛이 아니었다. 질긴 듯하지만 씹을수록 부드럽고 알싸한 바다 향기가 배어 나왔던 물메기 살은 딱딱하기만 했다. 거기다가 초장은 아주 시고, 짜고, 매웠고, 되직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이것이 오리지널이라고 큰소리로 외쳤고 나는 손바닥을 치며 맞장구를 쳤다.
엄마의 손마디가 툭툭 불거져 있다. 류머티즘 때문이다. 그런 엄마에게 아버지가 물메기 한 조각을 건넸다. 엄마는 손을 내저었다. 엄마는 틀니를 사용한다. 몇 년 전에는 항암치료를 받았다. 그때부터 엄마의 음식 맛이 들쑥날쑥해졌다. 요즘은 틀니가 잘 맞지 않아서 고생 중이시다.
엄마가 물메기 살 하나를 집어 초장을 찍은 후 내게 내밀었다. 가만히 입에 넣고 씹었다. 이상하게 그때부터 처음과 달리 진짜 옛날 맛이 났다. 신맛, 단맛, 짠맛, 매운맛이 절묘하게 어우러져서 파도처럼 끊임없이 밀려왔다. 그러곤 잊었던 한 가지 향취가 입안에 번지기 시작했다. 납작한 할머니의 젖무덤 냄새, 유방암 수술로 사라진 엄마의 한쪽 젖가슴 냄새가 혀끝에 와 닿았다.
그 밤에 나는 꿈을 꿨다. 큰 물메기 한 마리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양쪽 가슴엔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데도 물메기는 자유롭게 구름 사이를 헤엄쳐 다녔다. 나는 목을 꺾고 물메기를 쳐다봤다. 그러다가 물메기와 눈이 마주쳤다. 햇빛 때문에 보이지 않던 물메기의 얼굴을 그제야 나는 볼 수 있었다.
엄마는 너무나 편안한 얼굴로 마음껏 하늘을 날고 있었다. 익숙한 향내가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