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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욱 Jun 02. 2020

브런치에 글을 쓴 게 다인데

기적이 일어났다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작년 12월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받은 출간 제의. 이후로 원고를 쓴 시간이 꿈같기만 합니다. 출간한 지 며칠 되지 않았는데 에세이 Top 70위 안에 들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또 볼을 꼬집어 봅니다. 윽! 아프네요. 제 책장에서만 마주하던 두 분의 시인께서 추천사를 써주시기도 했고요. 도무지 현실적이지 않은 이 현실.

저는 그저 브런치에 글을 쓴 게 다인데, 기적이 일어났네요. 이 모든 것은 브런치와 글쓰기가 힘들어질 때마다 한 분씩 늘어난 저의 구독자분들 덕분입니다. 오늘까지 196명인 구독자는 한꺼번에 갑자기 생기지 않았어요. 하루에 한 분, 혹은 두 분 그렇게 늘어났는데요. 참 신기한 일은  글 쓰기가 힘드네! 하고 생각할 때면 어김없이 한두 분의 구독자가 생겼다는 깃털 알림이 떴고 그러면 또 글이 써졌다는 겁니다. 그러니 제게 일어난 기적은 대부분 저의 구독자분들 덕분이란 것입니다. 아고~ 정말 감사합니다. 일당 백의 196명의 구독자님들!!


제 책에 표시된 정식 출판일은 6월 10일입니다. 광고가 9일부터 나간다는데요, 출판사에서는 왜 이렇게 빨리 책을 세상에 내놓은 걸까요? 음. 광고도 없지. 아! 한 권도 팔리지 않으면 어쩌지. 걱정을 했어요. 5월 26일부터 인터넷 예매를 하더라고요. 진짜 잠은 안 오고 깊은 밤에 별만 반짝이는 것이 아니었어요. 누우나 서나 말똥말똥한 밤이 지나고 YES24 인터넷 서점을 클릭. 큭! 판매지수가 천이 넘은 게 아니겠어요. 생소한 저자의 책을 누군가 사주다니. 또 한 번의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브런치 구독자님들과 몇 안 되는 블로그 절친들의 힘이었죠. 판매지수여 쭉쭉~~. 오늘 2쇄를 찍었다는 출판사의 연락을 받고 또 두근두근.


하루에도 몇 번씩 인터넷 서점을 들락거리며(광화문 교보에 가보고 싶지만 아직 시간이 허락하지 않네요. 누구라도 광화문에서 제 책을 보신다면 사진 한 장만 찍어주세요. 제 브런치 메일로 쏴주시면 감사!) 판매지수 변동을 보았어요. 그러다가 혼자 막 웃었네요. 처음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1분에 한 번씩 통계를 눌렀던 기억이 떠오른 거였죠. 크크! 저 그랬답니다. 물론 지금은 안 그래요...... 쪼금만 그래요.


오늘은 온종일 침대와 혼연일체였는데요, 컴퓨터를 켜지 않았어요.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작가는 글을 쓰고 책 파는 일은 출판사에게 양보해야겠다고요. 아! 물론 일반화는 아니고요. 제 경우에는 그렇게 하기로 다짐했다는 거예요. 자꾸만 판매에 신경을 쓰게 되니 글을 쓸 수가 없어서요. 저는 글을 쓸 때 제일 행복한 사람이거든요. 책이 많이 팔리면요? 그러면 대따 행복할 테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글쓰기에 집중하려고요.

다음 책을 준비해야 하거든요. 목표는 내년 이맘때쯤으로 잡고 있어요. 이미 매거진을 열었는데요, 길 위의 사람들 이야기랍니다. 갈 길이 멀지만 다들 아시잖아요. 쓰면 써지는 게 글이라고. 살면 살아지는 삶처럼.


글 이야기가 나온 김에 글쓰기에 대해 몇 문장 덧붙일게요.

어떤 분들은 글쓰기가 어렵다고 해요. 뭘, 어떻게 쓸지 모르겠다고 하시는데요. 그러면 글쓰기 선생님들은 나를, 명확하게, 매일 써라!라고 하던데요. 이런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제게는 너무 어렵게만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쓰라는 건데요?)


제게도 주위에서 글을 어떻게 쓰냐고 묻는 지인들이 몇 분 계세요. 처음 글쓰기를 시작하는 분은 첫 문장을 적기도 힘들 때가 있잖아요.

저는 이렇게 말해드렸어요.

"가상의 상대편이 앞에 있다고 여기고 핸드폰 녹음기를 켜세요, 그러고는 그 상대에게 머리 혹은 가슴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세요. 그다음 내가 했던 말을 다시 들으며 종이로 옮겨 적어요.(말을 텍스트로 바꿔주는 툴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권하고 싶지는 않아요. 우리는 자꾸 머리를 써야 해요.)  

물론 똑같이 적을 필요는 없어요. 우리 머리가 저절로 불필요한 말들을 없앨 거예요."


그녀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어요.

"나를 쓰라고 하는데 내 인생은 별로 쓸 게 없어요. 다 흔해빠진 경험들인데....."

"당장 어제 일어난 일 하나를 생각하고 그걸 쓰세요. 특별하지 않아도 좋아요. 시장에서 시금치 한 단을 산 일도 좋지요. 다만 시장에 가보지 않은 사람도 시장을 떠올릴 수 있도록 자세하게 써보세요. 하지만 시금치 생김새를 묘사할 필요는 없어요. 그건 식물도감에 자세히 나와있으니요. 시금치를 키운 사람들의 땀이나 그걸 파는 할머니의 삶, 혹은 조물조물 고소하게 무친 시금치를 먹는 가족들을 생각하며 시금치를 표현하는 훈련이 필요해요. 묘사를 위한 묘사는 늘 지루하게 만드니까요."


여기서 중요한 게 있어요. 어떤 이들은 매일 쓰는 것이 글쓰기 근육을 키우는데 중요하다고 강조해요. 제 생각은요, '사람마다 다르다'예요. 저역시도 매일 쓰기 운동을 해보았는데요. 시간이 지날수록 글의 내용이 아니라 글 쓰는 행위에 집중하더라고요. 즐겁지가 않았어요. 글쓰기만 생각해도 가슴이 답답해지기도 했고요. 물론 무라카미 하루키나 강원국 작가는 매일 써야 해요. 쓰는 것이 그들의 직업이니까요. 그렇지만 우리는 아니잖아요. 우리는 죽기 살기로 글을 쓸 필요가 없다고요. 즐거운 글쓰기가 직업으로서의 글쓰기로 이어지기를 바라지만요.


그래서 저는 글쓰기를 시작하는 지인들에게 제발 매일 쓰지 말라고 말해요. 금세 지칠 확률이 높기 때문이에요. 형식적인 매일 쓰기가 글의 질을 높인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단 매시간 메모를 잊지 말라는 말을 덧붙여요. 메모는 키워드가 되는 단어 몇 개, 한 문장 정도면 족해요. 그조차도 없으면 잠시 떠오른 생각이 바람처럼 사라지거든요. 그리곤 다시는 똑같은 느낌이 생각나지 않아요. 깊은 밤에 갑자기 떠오른 한 문장을 몇 번 머리에 되뇌고는 '내일 새벽에 일어나서 써야지' 하고 미룬다면 새벽에 미치고 환장한답니다. 절대 떠오르지 않아요. 글을 처음 쓰는 분들은 특히 이 메모가 정말 중요하답니다. 메모가 쌓이면 뭘 쓰지? 고민할 일이 없거든요. 매일 쓰는 일이 행복하다면 당연히 매일 쓰면 되겠고 그렇지 않다면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쓰는 걸 권해드리고 싶어요.

정리하자면,

말과 글은 다르지 않다. (가상의 독자를 앞에 두고)

사람 혹은 사물의 내면을 꿰뚫어 보기. (묘사를 위한 묘사는 지양)

글을 쓰는 빈도는 자신에게 맞게. 

제일 중요한 것은 메모 또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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