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길은 길 끝에서 시작된다,

그때가 진짜 시작이다

by 고재욱

집 잃은 사람이 늘고 있다는 뉴스를 듣는 것과

눈앞에서 노숙인을 보는 것은,

다르다


한 끼를 바쁜 일상에 양보하는 것과

한 끼를 위해 온 하루를 내주는 것은,

다르고 말고


노숙인들 사이로 외치는 소리가 있다

힘내세요,

포기하지 말아요,

희망이 있잖아요,

길 위의 사람들은 미동도 없고

이내 목소리는 찬 바람에 묻힌다


눈 앞에서 사람이 죽고

죽은 자의 모습에서 나의 얼굴을 발견하는 일은,

어느 날 문뜩 방 귀퉁이

가득 쌓인 먼지에 화들짝 놀라는 일과,

다르다


높고 빛나는 욕망과

밥 한 끼를 구하는 것은,

벌판에서 풀을 뜯는 소와

눈동자만 꿈벅거리는 쓰러진 소는,

다르고 말고


서울역에서 용산, 영등포로

밥을 위한 긴 여정


기독교로, 불교, 천주교로

밥을 찾는 지난한 순례


말라버린 사막에서 자란

독초를 삼킨 그들은

끝없는 허기를 느낀다

코로나 기근 아래,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다르지 않다


바다로 앞서 뛰어드는 레밍의 우두머리는 어디 있는가


그는 대양 건너 연한 풀을 꿈꾸는가

쉼 없이 두 발을 저어라

끝없이 멈추지 말아라

혹여, 가라앉을지라도


언제나,

새 길은

길 끝에서 시작된다

그때가

진짜 시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