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박한 철거민

by 고재욱

기록에 의하면 111년 된 마을입니다. 타지의 사람들이 이주해 온 것은 70여 년 전이었습니다. 본격적으로 많은 사람이 살기 시작한 때는 50여 년 전부터입니다. 여기로 옮겨온 이들은 재개발 붐이 일어났던 72년에 서울을 떠나야 했던 철거민이었습니다. 재개발이 뭔지도 몰랐던 그들은 국가에 의해 옮김을 당했습니다. 낯선 동네에 도착한 그들은 거의 다 가난하고 기댈 곳 없던 이들이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국민들도 형편은 비슷했기에, 그들은 누굴 탓하기보다 살아갈 궁리부터 해야 했습니다.


천막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을, 노부모를 밖에서 재울 수는 없었으니까요. 얼마간 천막에서 지내고 있을 때, 나라에서 땅을 분배해 주었습니다. 산을 깎아서 만든, 집을 지을 수 있는 땅입니다. 위, 아래 위치는 제비 뽑기를 했다네요. 뭐든 공짜는 귀하게 여겨지지 않는 걸까요? 혹은 눈앞의 현실이 너무 힘들었을까요? 받은 땅을 헐값에 팔아버리고 주인 없는 빈 땅을 찾아서 불법으로 판잣집을 짓는 사람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들을 강제로 옮겨 온 국가는 다시 땅을 주었습니다. 천막 사이사이 남는 땅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 시기에 맞춰 인근에 공장들이 들어섰습니다. 신발이나 옷을 만드는 꽤 큰 규모의 공장입니다. 어른은 물론이고 아이들도 국민학교만(초등학교) 졸업하면 일을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돈을 벌면 벽돌을 샀습니다. 모래는 근처 하천에서 퍼왔다고 합니다. 돈이 더 모이면 시멘트를 구해왔고요.


철거민들은 천막 있던 자리에 집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방 한 칸에 부엌 한 칸짜리 집이었습니다.

공장들은 바쁘게 돌아갔습니다. 전국에서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서 몰려들었고요. 작은 시장에 사람들이 북적거렸고, 식당이며 포장마차가 늘어섰습니다. 공장이 끝나는 저녁이나 주말에는 사람들에게 밀려다닐 정도였다고 합니다.

돈을 모은 이들은 방 한 칸, 부엌 한 칸 옆에 붙여서 방 한 칸, 부엌 한 칸을 더 지었습니다. 공사비를 아끼려고 인부를 써서 직접 공사를 한 이들이 많았습니다. 이 방을 공장에서 일하는 청년들에게 세를 놨습니다. 어떤 이들은 2층으로 짓기도 했습니다. 경쟁이라도 한 듯이 집이 들어섰습니다. 집을 지을 때 남동향을 따지지는 않았습니다. 몸 누일 방 한 칸과 밥 해 먹을 부엌 한 칸도 없는 이가 많을 때였습니다.

방 한 칸, 부엌 한 칸 집은 점점 넓어졌고, 높아졌으며, 다가구주택과 소형 아파트가 생겼습니다.

철거민들은 이제야 한숨 돌릴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평화로운 일상이 계속될 것만 같았습니다.



애초 산을 깎아서 만든 마을입니다. 비가 오면 아래쪽에 물이 고이기 일쑤였고, 경비를 줄이려고 직접 집을 짓다 보니 비가 새어서 곰팡이 핀 집을 찾기가 쉬웠습니다. 빠르게 진행되는 도시정비계획도 변수였습니다. 이곳과 멀지 않은 곳에서는 이미 아파트 공사를 마치고 입주를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속속 근처 마을의 재개발, 재건축 소식이 계속해서 들려왔습니다. 전국적인 현상이었습니다. 이내 철거민 마을에도 도시 재정비 붐이 일었습니다.

한쪽에서는 새 아파트 입주를 환영했고, 다른 쪽에서는 재개발을 반대했습니다. 철거민으로 쫓겨와서 판잣집을 짓고 마을을 개척한 이들에게 새 아파트는 마지막 꿈일 수도 있었고, 이제야 고생을 끝내고 조용한 일상을 살고 싶은 노부부에게는 새 아파트가 마지막 꿈을 방해하는 해방꾼이기도 했습니다. 주민 찬반 토론이 계속됐습니다. 찬성표가 갈수록 늘어갔습니다.



경사가 가파른 현장을 오르락내리락하면 아직 젊은(?)데도, 다리가 뻐근해집니다. 눈이라도 오면 언덕길은 걷기에 더 험난하지요. 그러다 문득 철거가 시작되기 전에 부지런히 집을 보러 다니던 한 할머니가 떠올랐습니다.

허리가 많이 굽으셔서 한 열 걸음을 걸으면 벽을 붙잡고 잠시 쉬었다 다시 걷던 할머니였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재개발구역에 살던 주민 90%가 이사할 때까지 계속 언덕 꼭대기에 사셨습니다. 나이가 많아서 오늘내일하는 친구들을 떠나서 멀리 갈 수가 없는데, 재개발 소식에 근처 방세가 너무 많이 올라버려서 어쩔 수 없이 버티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할머니는 매일 방을 구하러 다녔습니다. 굽은 허리를 열 걸음마다 한 번씩 폈다 굽혔다 하시면서.

할머니는 이사를 하지 않으면 강제집행을 하겠다는 경고를 두 번이나 받은 후에 이사를 하셨습니다.


재개발구역에서 이사를 할 때는, 몇 가지 서류를 꼭 제출해야 합니다. 이 서류가 확인된 후에야 이주비, 이사비 등의 재개발 보상금이 지급되기 때문입니다. 서류는 수도, 전기, 가스 폐전 그리고 정화조 청소 영수증입니다. 여기에 집안에 쓰레기가 있는지 확인합니다. 이상이 없다면 그 앞에 빈집임을 알리는 스티커를 붙이고 현관을 봉쇄합니다. 그러면 이사가 완료되는 것입니다.

할머니 집을 확인할 때, 사진첩 한 권을 발견했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할머니께서도 젊을 때가 있었습니다. 노인들을 뵐 때 자꾸 그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저만 그렇겠죠?

한복을 입은 할머니는 새색시입니다. 볼에 연지곤지를 찍고 머리에는 족두리를 썼습니다. 웃음기 하나 없는 흑백 사진입니다.

처음 이곳에 오셨을 때 마을 모습은 없습니다. 배경보다 사람이 우선인 사진들입니다. 아이들이 자라고, 아이들이 결혼하고, 그 아이들이 아이들을 낳은 사진입니다.


재개발로 철거민이 되어 어린아이들 손을 잡고 이곳에 와서 천막을 치던 할머니를 떠올립니다. 공장을 다니며 벽돌을 사고, 개천에 나가서 모래를 퍼오던 겨우 초등학교를 졸업한 여자아이를 생각합니다. 손수 벽돌을 쌓아서 방 한 칸, 부엌 한 칸짜리 집을 짓고 손뼉을 부딪쳤을 사람들을 상상해 봅니다.

시간이 흘러서 재개발이라는 이유로 또다시 철거민이 된 할머니 심정은 어떨지, 저는 감히 말할 수 없습니다. 제대로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주가 시작되고 1년이 안 되어서 이곳 주민들의 90%가 이사를 마쳤습니다. 타 현장과 비교하면 무척 빠른 속도입니다.

유달리 노인분들이 많은 동네였습니다. 노인분들은 큰 반발 없이 이주를 했습니다. 이를 본 사람들이 한 마디씩 합니다.

가난한 동네에다 순박해서 그런 거라고, 뭘 몰라서 순순히 이사를 간 거라고요. 정말 그럴까요?

노인분들은 누구보다 철거민의 아픔을 잘 아시는 분들입니다. 팍팍한 현실에 많이 배우지도 못 했습니다. 하지만 그분들은 산을 깎아서 만든 황무지를 반듯한 마을로 바꾼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그분들은 재개발이란 정책에 쫓겨와서 새 마을을 일구는 동안 누구보다 도시재생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한 날에 현장 출입문 앞이 소란스러웠습니다. 할아버지 한 분이 경비원과 소리를 높이고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사십 년을 넘게 살았다고 하셨습니다. 이사를 갔지만 아직도 집이 눈에 선해서 철거가 아직 안 됐으면, 마지막으로 그 집을 한 번만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경비원은 위험해서 안된다고 막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옆에는 한 청년이 난처한 표정으로 서 있었습니다.


위험한 작업이 끝난 구역이라서 노인분을 현장 조금 안쪽으로 모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젊은 청년을 보며 손가락을 들어 한 곳을 가리켰습니다. '저가 네가 태어난 곳인데 벌써 집이 없어졌구나!'

한동안 할아버지는 청년과 현장 곳곳을 가리키며 대화를 했습니다.

손자는 머리를 긁적이며 인사를 했고, 할아버지는 제 어깨를 툭툭치고는 빨리 공사를 부탁한다고 했습니다.

당신 죽기 전에 아파트에 들어가면 좋겠다고, 내가 죽으면 손자가 살 집이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그러고는 가시면서 몇 번이나 뒤를 돌아봤습니다. 지금은 철거 공사 중입니다. 아파트가 완성되려면 아직 삼 년쯤 남았습니다. 모쪼록 새 아파트에 입주하시기를.



아마도 새 아파트에는 노인분들보다는 젊은 분들이 더 많이 사실 것 같습니다. 조합원보다 일반분양이 두 배나 많기도 하고, 근처 위성도시에서 다수의 재개발공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이곳이 서울과 가까운 수도권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분양권이 당첨되거나 전세 혹은 월세로 새 아파트에서 살게 되는 분들은 너른 창을 통해 멋들어진 조경을 보시겠지요. 지대가 꽤 높아서 경관도 무척 좋을 것 같습니다.

그때 이곳의 과거를 한 번쯤 생각해 주시면 어떨까요? 아파트가 지어지기 전에 이곳을 개척하며 살았던 사람들이요. 순박하고 뭘 몰라서 떠난 것이 아니라 내 것을 손해 보며 우리에게 터전을 내어준 철거민들이요.


새 아파트 한쪽에 작은 기념관을 만들면 좋겠습니다.

그곳에 마을의 과거 흔적들과 원주민들의 일상을 담은 사진 몇 장 있으면 더 좋겠지요.

작은 아이의 조개만 한 손을 잡고, 아파트가 생기기 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고요.

그러면, 순박해서, 뭘 몰라서 이사를 가셨던 노인분들에게 조금 덜 미안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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