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이 없어진 자리에 잔디를 심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씨를 뿌렸다. 오래된 건물들을 철거한 후다. 아무것도 없는 들판, 흙만 남은 가파른 비탈면은 큰 비라도 온다면 흙더미가 무너져 내릴 수 있다. 바람이 불어도 흙먼지가 날릴 것이다. 경사를 최소한으로 줄였지만, 풀 한 포기 없는 흙은 믿을 수 없다. 그래서 잔디를 심기로 한 것이다. 현장에서는 이를 법면 녹화 작업이라고 부른다.
단순히 씨를 뿌리는 것은 아니다. 잔디씨와 거름과 씨가 날리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종이며, 이 재료를 멀리 뿌려주는 장비와 인력이 필요하다. 몇만 평이나 되는 허허벌판 전체를 작업반경으로 한다면 억 소리 나는 비용이 든다. 그래서 건설현장에서 녹화작업은 대개 소규모로 이뤄진다. 그런데 요즘 환경관리가 무척 강화되었다. 구청 환경과에서 수시로 출동해서 먼지 발생을 체크한다. 저 너른 들판을 어찌할꼬. 회의가 계속됐다.
건설현장은 간략하게 시행, 도급, 하도급으로 나눌 수 있다. 시행은 재개발조합, 도급은 원청 시공사, 하도급은 전체공사 중 일부를 맡은 회사를 말한다. 우리 회사는 하도급으로 건축물 철거공사를 맡았다.
예전에는 하도급 회사가 다시 하도급 계약을 맺는 재하도급이 가능했다. 이를 뿐인가. 재재하도급, 재재재하도급도 있었다. 하지만, 아래로 내려갈수록 공사금액이 줄어들다 보니 부실시공이 많았다. 이를테면 광주 학동 사고 같은 -원청인 현대산업개발과 하도급 회사가 계약한 50억 원이 재하도급을 지나 재재하도급을 거치며 9억 원으로 줄었고 이는 부실공사로 이어졌다. 이 사고로 9명이 사망했다- , 이 사고 이후 재하도급은 금지되었다. 예외규정이 있지만, 너무 복잡하니까 패스!
원청 시공사는 대기업이다. 현장소장은 훤칠한 키에 서글서글한 인상이다. 시공 기술사 자격 보유자다. 그리고 S대 출신이다. 이쪽 수준에서 보면, 그냥 천재다.
그가 현장을 둘러보며 말했다.
"잔디를 심어봅시다."
그의 말 한마디에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됐다.
이 정도 대규모 녹화 작업은 전국에서 최초의 시도라고, 본사에서도 기대가 크다고 했다. 구청 환경과, 시청 재개발 담당 부서에서도 얼른 초록 잔디밭을 보고 싶다고 했다.
트럭 적재함에 커다란 물탱크가 실려있다. 탱크에 잔디씨와 비료, 착색제, 기타 등등을 넣고 섞은 후 고압펌프를 가동한다. 펌프에 연결한 긴 호스 끝에서 진한 물줄기가 솟구친다. 근로자가 호스를 이리저리 흔들며 흙에 초록색 물감을 흩뿌린다. 땅이 바다로 바뀐다. 금세 잔디가 쑥쑥 자랄 것만 같다. 이만여 평의 바다가 탄생하기까지 삼일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출근하면 씨앗을 뿌린 곳부터 둘러본다. 아직 아무 반응이 없다. 점심 식사 후 녹화 작업장에 가본다. 씨앗은 아직이다. 퇴근할 때쯤 다시 돌아본다. 역시 없다.
일주일이 지났다. 시공 기술사인 S가 찾아왔다. 이마에 땀이 흥건하다. 바쁘게 현장을 둘러본 모양이다.
"큰 일 났습니다."
"네? 왜요?"
그가 얕은 한숨을 쉰다.
"그게 우리 씨를, 다 주워 먹고 있어요."
"...... 무슨 씨를..... 아! 잔디씨요? 누가요?"
그에게 붙들려 급히 현장으로 향했다. 그곳에 그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새였다. 심지어 한 종류도 아니었다. 흔히 보는 비둘기에다 검은 머리에 흰색 배를 드러낸 까치와 온통 시커먼 까마귀가 주로 보였고, 주먹보다 작은 종다리, 곤줄박이도 섞여 있었는데, 거기에 이름도 알 수 없는 온갖 잡새까지 가세해서 그토록 오매불망 기다리던 우리 잔디씨로 단체 회식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돌멩이라도 하나 집어던질 요량이다. 녀석들과의 거리는 삼사십 미터, 그들을 향해 있는 힘껏 돌을 던졌다. 으윽, 어깨에 통증이다. 진작에 오십견을 치료했어야 했다. 돌은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코앞에 떨어진다.
물끄러미 새떼를 보던 S가 말했다. "새총이 필요하겠어요."
그의 말 한마디에 지체 없이 새총을 검색했다. 쿠팡에서 Y자로 벌어진 양끝에 고무줄을 매단 새총 두 개를 주문했다. 쇠로 만든 튼튼한 총이다. 새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잔디씨를 허무하게 잃을 수는 없지 않은가.
사냥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왼손을 앞으로 쭉 내밀고 엄지와 검지로 쇠구슬을 감싼 가죽을 단단히 붙잡은 후 오른손을 뒤로 쭈욱 잡아 뺀다. 왼팔이 후들거린다. 오른쪽 눈을 감은 채 왼쪽 눈을 크게 뜨고 녀석들을 노려본다. 이제 손가락을 놓기만 하면 된다. 일견 미안한 마음도 든다. 쇠구슬이 허공을 가르고 날아가 녀석의 몸에 맞으면 녀석은 몸을 부르르 떨며 양발을 허공으로 향한 채 고꾸라질 것이다.
"피잉"
헛, 총알이 까마귀 바로 근처를 지나는데. 녀석은 미동도 없이 식사를 계속한다. 조금 더 전진해야겠다.
S가 곧바로 엄호사격을 시작한다.
"핑"
과연 기술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S다. 정확하게 까마귀 몸통에 적중시킨다. 녀석이 후드득 날갯짓을 하며 그 자리에서 튀어 오른다. 그런데 그뿐이다. 멀리 가지도 않고 튀어 오른 그 자리에 다시 착지한 까마귀는 머리를 끄덕이며 우리 잔디씨를 먹는다.
S가 어금니를 깨문다.
"진짜 총이 필요하겠어요."
거침없이 테무 앱을 연다. 이번엔 공기압력을 이용한 새총과 고무줄을 이용하긴 하지만 총신이 긴 새총을 구매했다. 해외배송이라고 했는데, 일주일 만에 도착했다. 글로벌한 세상.
붉은색 스프레이로 담벼락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한쪽은 펌프질을 해서 공기를 압축시킨 총을 들고 한쪽은 개머리판을 바닥에 놓고 긴 총신 끝에 매단 고무줄을 팔을 부들거리며 뒤로 당겨서 장전을 했다.
슝, 슈슝.
담벼락 과녁에 먼지가 일었다. 소리 또한 둔탁한 것이 파괴력도 충분하다. 이제는 전쟁을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슈슝, 슝.
탄환을 아끼지 마라, 쏘고 또 쏴라.
S를 필두로 우리는 용감하게 전장을 누볐다. 7부 능선까지 쉬지 않고 내달렸다.
승패는 금세 갈렸다. 우리 쪽은 부상병이 속출했고 저쪽은 누구 하나 다치지 않았다. 한 병사는 허벅지에 쥐가 났고, 한 병사는 무릎이 구부러지지 않았고, 또 한 병사는 고무줄이 끊어지며 얼굴을 때려서 볼에 상처가 생겼다. 하나둘씩 무장을 해제하고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우리는 전쟁에서 지고 말았다. 완벽하게.
공기압이나 긴 고무줄을 사용한다고 해도, 새총은 새총이었다. 최소한 이십 미터 거리까지는 접근해야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새들이 그 정도 거리를 허용하지 않았다. 멀리서 쏘면 몸에 맞아도 끄떡없었고, 조금이라도 다가가면 새들은 후드득 날아올라 우리가 다가간 만큼만 거리를 벌렸다. 급기야 녀석들은 날지도 않고 걸어서 도망을 쳤다.
멍청이란 의미로 새대가리란 말을 쓴다면, 완전히 틀렸다. 영리하다는 뜻이다. 새대가리는.
S는 녹화 작업을 전면 중단했다.
전쟁이 끝난 후 체념을 배운 패자들은 새들이 오든지 말든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촘촘하게 뿌린 잔디씨의 절반쯤은 새가 먹어치웠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몇 번의 큰 비가 내렸고, 살아남은 씨앗이 자라기 시작했으며,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찾아왔다. 녹화 작업을 한 현장은 탈모증처럼 군데군데 구멍이 나 있다. 그래도 높이 올라서 찍은 드론 사진을 보면 푸릇푸릇한 것이 보기에 좋다.
새들은 더는 오지 않는다. 가끔 한두 마리만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걸 보면 인근 얕은 산에서 이곳의 동태를 살피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추운 계절이다. 새들이 다시 찾아왔다. 뭐라도 찾은 건지 머리로 방아를 찧는다. 덤성덤성 자라던 잔디는 모두 자취를 감췄다. 결국 이렇게 사라지고 말 것을 뭘 지키겠다고 총까지 들었단 말인가.
원주민들에게 쇠구슬을 날린 일은, 일상을 빼앗긴 쪽은 저쪽인데,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드는 일은, 역시 점잖지 못한 일이었다.
남아있던 잔디씨 한 움큼을 집었다.
싸우다가 정든다더니,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새들이 다가와서 총총거린다. 까치는 토끼처럼 깡충깡충 뛰어다닌다. 새들 사이에서 망부석이 된다.
창고에 용도가 사라진 여러 개의 새총이 굴러다닌다. 근로자 단합대회에서 새총 사격 대회를 연다고 한다.
동그란 과녁을 제작 중이다. 상금도 있다.
모두들 자신만만한 표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