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열두 시가 되면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긴 머리를 돌돌 말아 비녀를 꽂았다. 눈빛마저 비장했다. 그녀 옆에는 작은 아이들 넷이 서로의 다리를 엇갈려 포갠 채 누워있었다. 성인 남자 서너 명이 누우면 꽉 찰 것 같은 작은 방이었다. 그녀는 이리저리 구겨진 이불을 반듯하게 펴서 아이들 몸을 덮어 주고 조용하게 일어나 방문을 나섰다. 찬 공기가 그녀의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그녀는 급하게 방문을 닫았다. 문에 덕지덕지 바른 창호지가 맥없이 흔들렸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던 그녀의 눈동자에 비친 별들이 곧 쏟아질 것만 같았다. 마루 아래 디딤돌에 놓인 아이들의 고무신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부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궁이에는 크고 오래된 가마솥이 누런 흙에 둘러싸여 머리만 내놓고 있었다. 그녀는 서둘러 아궁이에 장작부터 넣었다. 곧바로 그녀는 전날 불려놓은 콩이 담긴 고무통에서 콩을 꺼내 맷돌에 갈기 시작했다. 콩을 갈 때 콩 불린 물을 넣으면서 갈았는데 돌아가신 어머니의 어깨너머로 배운 방법이었다. 어처구니를 잡은 팔이 욱신거렸지만 그녀는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콩을 모두 간 그녀는 갈린 콩을 삼베 자루에 넣고 콩물을 짜고 또 짜냈다. 삼베 자루 안에 남은 찌꺼기는 따로 보관을 했다. 비지란 것인데 얼마간 그녀와 아이들의 밥상을 책임질 것이었다. 콩물, 즉 두유를 끓이기 시작할 때 그녀의 손길은 더 분주해졌다. 가마솥 가운데 부분에 작은 거품이 보글거릴 때 그녀는 아궁이 속에 있는 벌건 장작을 서둘러 꺼냈다. 뜨거운 김이 사그라들자 그녀는 준비해 둔 간수를 가마솥에 부었다. 이때 그녀는 한 번에 간수 넣기를 끝내지 않고 몇 번 반복했는데 이 역시 어머니께 배운 일이었다.
금세 두유가 몽글몽글 엉기기 시작했다. 순두부였다. 그런 다음 그녀는 순두부를 작은 구멍들이 뚫린 사각형 나무틀에 넣고 널판자로 덮은 다음 그 위에 무거운 돌을 올렸다. 돌의 무게에 순두부가 머금고 있던 물기가 아래로 빠지기 시작했다. 몇 시간을 쉬지 않고 두부를 만든 그녀였다. 그럼에도 그녀의 얼굴에 힘든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작아진 고무신 뒤축을 구겨 신고 학교를 가던 막내아들을 떠올렸다. 어미에게 말도 꺼내지 못하고 고개를 떨군 채 텅 빈 누런색 봉투를 들고 가는 큰 아들의 뒷모습까지 생각나자 그녀는 연신 코를 훌쩍거렸다. 따뜻한 김을 올리며 완성된 두부는 그녀에게 막내의 검정 고무신이었고 큰 아들의 육성회비였다. 그녀는 아직 해도 뜨지 않은 길을 서둘러 걷기 시작했다.
도깨비 시장. 새벽에 장이 열리고 이른 아침이면 언제 장이 섰는지 모르게 사라져 버린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새벽 시장이란 다른 호칭이 있었지만 사람들은 보통 도깨비 시장이라 불렀다. 갑자기 병을 얻어 그녀 곁을 떠난 남편 대신 그녀가 아이들을 책임져야 했지만 그녀는 이렇다 할 장사 경험이 없었다. 그런 그녀가 생각해 낸 것이 도깨비 시장에 나와서 이른 아침 장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상인들에게 두부를 파는 일이었다. 죽은 남편을 알고 있는 상인들도 여럿 있어서 장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조금씩 자리가 잡히는 중이었다. 그녀는 그런 분들에게 은혜를 갚는 일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 여겼다. 두부를 만들 때는 물론이고 두부를 예쁘게 전시하는 일에도 허투루 하지 않았다. 저 멀리 누군가 그녀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내 두부를 위해 누군가 달려오고 있다'
"악! 할머니, 이게 뭐예요?" 복도를 관통하는 누군가의 외침이 다급했다. "아이고! 또 장사 준비 중이시다." 목소리에 이끌려 급한 걸음으로 할머니의 방안에 들어섰다. 할머니는 이미 장사 준비를 마치고 좁은 침대 난간을 따라 물건 진열을 하면서 손님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어르신. 뭐 하시는 거예요?"
나는 잠시 어르신의 기억 속으로 들어간다. 할머니는 고개를 아래로 향한 채 흰자위를 뒤집으며 '그것도 모르냐?'는 대답이다. "보면 몰라? 두부 팔아야지. 내가 한시라도 손을 놀리면 우리 애들은 어찌 먹고살아?" 할머니 말씀처럼 좁고 긴 침대 난간 위에는 익히 알고 있는 두부보다 훨씬 더 작은 사각형의 그것들이 가지런히 놓였고 희고 부드러운 종이 안에서는 분주한 할머니의 손놀림을 따라 계속해서 작은 두부가 만들어지는 중이었다.
할머니께서는 사십 년이 넘게 두부 장사를 하셨다고 한다. 아들 셋을 두부를 팔아 모두 대학공부까지 시켰다고 늘 자랑하시는 당신이었지만 자녀들은 많이 바빠 보였다. 면회 오는 모습은 자주 볼 수 없었고 왜인지는 모르지만 할머니는 기초생활 보장 수급자였다. 사실 어떤 날은 아들이 넷, 딸은 셋이라고 하고 딸만 있다느니 아들만 있다느니 갈팡질팡했는데 두부 장수 사십 년에 대한 말씀은 한결같아서 아마도 두부에 대한 일은 진실일 것이라고 다들 믿었다.(할머니에게는 아들 셋과 한 명의 딸이 있다.) 어쨌든 할머니의 장사가 잘되어야 장날 또한 끝날 것이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도깨비 시장처럼.
"어르신. 이거 다 해서 얼마인가요?" 얼추 두부 만들기가 끝난 모양이다. 두부 빚는 일을 멈추고 그것들을 일렬종대로 예쁘게도 전시를 끝낸 할머니가 흘러내린 눈두덩이를 손가락으로 잡아 올리며 작은 눈동자를 반짝였다. "하이고, 마수걸이에 다 사 가려고? 오늘 횡재했구먼." 할머니는 손님의 마음이 변하기라도 할까 봐 겉면에 '프리 *어'(기저귀 상표)란 파란 글씨가 새겨진 하얀 종이에 그 작고 앙증맞은 사각의 작은 두부들을 정성껏 모두 담은 후 종이의 대각선 모서리 둘씩을 붙잡아 묶고 단단히 고정한 다음 내 코밑에 떡하니 내밀었다. (그 향기와 자세한 색깔에 대한 것은 최대한 자제하는 중이다.)
"어르신, 고맙습니다. 그런데 두부 만드시느라 손이며 옷이 더러워졌네요. 씻어야겠어요. 옷도 갈아입고요." 침대 시트며 난간에 묻은 누런 얼룩에서 모락모락 향기가 피어올라 온 방을 채우기 전에 서둘러야 했다. 문밖에서는 몇몇 요양보호사들이 코를 막고 키득거렸고 할머니와 같은 방을 쓰는 어르신들은 허공에 삿대질을 던지고 있었다.
급한 내 마음과 달리 정작 할머니는 느긋하기만 했다. 장사를 성공적으로 마친 두부 장수 할머니는 오른손을 내 얼굴 앞에 내밀고 손가락 끝을 아래위로 까딱거렸다. "잠깐 있어 보래이. 이리 떨이를 해줬는데 덤이라도 하나 드려야지. 가만있어 보래이. 이기 어디 있나." 할머니는 주머니 여기저기를 뒤적이더니 왼쪽 주머니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여기 있었구먼. 자, 요건 덤이니까 요것도 마저 가져 가래이." 두부 재료가 부족해서 미처 사각으로 만들지 못하고 동그랗게 빚은 메추리 알 모양의 그것은 살포시 내 손바닥 위에 올려졌다. "어르신. 이제 목욕물도 적당히 데워졌을 테니 일어나세요." 두부 장수, 할머니는 그제야 느릿하게 몸을 움직였다.
요즘 도깨비도 세상 변화를 따라가나 보다. 시장은 예전처럼 그리 일찍 열리지 않고 일찍 끝나지도 않는다. 새벽 다섯 시부터 오전 열 시까지도 장이 열린다. 도깨비 시장의 모습은 예전과 달라졌지만 장날을 기다리던 할머니의 마음은 변함이 없어 보인다.할머니께서 아이들을 위해 두부를 만드는 마음은 끝이 없을 것 같다.
요양원에서 어르신들을 보며 부모의 마음과 자식의 그것은 결이 많이 다름을 느낀다. 아직까지 자식을 원망하는 어르신을 본 적이 없다. 6년이 넘는 기간 동안 수백 명의 노인들 중에 단 한 명도 없었다.
나는 어머니를 원망한 적이 많았다. 처음은 왜 내게는 아버지가 없냐고, 나중에는 왜 나는 아버지와 성이 다르냐고 어머니를 힘들게 했다. 어머니도 어쩔 수 없는 상황임을 알았지만 나는 자주 어머니를 원망하며 내 부족함을 원망 속에 숨기려 했다. 꽤 오랫동안 그랬다. 그런 나를 어머니는 언제나 묵묵히 기다려주었다.
창밖으로 바람을 기다리는 민들레 군락지가 눈에 들어왔다. 치매라는 병으로 대부분의 기억을 잊어버리고도 자식 걱정뿐인 할머니 마음은, 민들레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식을 위해 언제든 흩뿌려질 준비가 되어있는.
저만치 앞서가던 할머니께서 어서 오라며 봄처럼 웃는다. 나도 그만 따라서 웃어버린다.언젠가 할머니의 도깨비 시장은 사라질 것이다. 두부장사를 그만둬야 할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이 조금 더디게 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