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쪽에 기역자로 구부러진 네 군대의 받침이 있는 스테인리스 지팡이에 검은 모자가 걸렸다. 모자 옆으로 참전용사라고 새긴 노란색 글씨가 선명하다. 침대에 걸터앉아 창밖을 살피는 할아버지는 잔뜩 미간을 구부린 얼굴로 턱을 치켜들고 있다. 돋보기안경을 코에 걸쳤는데 비스듬한 방향에서 할아버지를 보면 한쪽 눈이 도깨비 눈처럼 크게 보였다. 할아버지는 150cm의 키에 그만큼이나 마른 체형인데 귀에는 살색 보청기가 걸렸다. 침대 머리맡에는 농사 시기를 알려주는 농협에서 만든 달력이 붙어있고 달력은 6월 달에 멈춰있다. 침대 옆으로 낮은 서랍장 위에도 작은 달력이 서있는데 그곳의 시간도 6월이었다. 현재 우리의 시간은 10월을 지나고 있다.
하늘을 한참 살피던 할아버지가 누가 듣기라도 하면 안 된다는 듯이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
"오늘이 며칠인고?"
나는 지체하지 않고 대답했다.
"6월 26일입니다."
할아버지는 어제도 며칠인지 물었고 나는 6월 26일이라고 답해드렸다. 내일도 할아버지는 똑같은 질문을 할 것이고 그때에도 내 대답은 똑같을 것이었다.
"그럼 올해도 전쟁 없이 지나간 거군."
"네. 올해도 아무 일 없이 지나갔습니다. 오늘이 6월 26일이니까요."
할아버지는 6·25 전쟁 당시 학도병으로 참전했다고 한다. 전장에 투입되기 전 2주의 훈련이 다였다. 할아버지 나이, 18세였다. 학도병으로 소집된 후 할아버지는 경상북도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 작전에 투입되었다. 작전명 174 고지, 장사동 상륙 작전이었다. 772명의 대한민국 학도병이 이 작전에서 전사하거나 행방불명됐다.(wikiedia)
할아버지는 이 전투에서 청력을 잃었고 두 무릎이 부서졌다. 할아버지 허리 쪽으로 쇳조각을 제거한 흔적이 여러 군데 있다. 하얀 물감을 뿌린 것 같았다. 반 백 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지만 할아버지 눈에는 당시의 공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 같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신다. 할아버지에게 치매는 악몽 같은 기억을 끝없이 반복하게 하는 도돌이표였다.
인공 관절을 사용하는 바싹 마른 다리가 요즘 들어 말을 잘 듣지 않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앙상한 다리를 보조하는 은색 지팡이가 부들부들 떨었다. 침대에서 힘겹게 일어나면서도 할아버지의 주름은 동그랗게 말렸다. 돋보기안경 속에 주먹만 한 눈동자가 배시시 웃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6월 25일이 지나야지만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식사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할아버지의 달력이 6월에 멈춰있는 이유였다. 할아버지의 오늘은 항상 6월 26일이었다.
"할아버지! 정말 그렇게 총을 잘 쏘셨어요?"
늘 백발백중을 입에 달고 다니셔서 살짝 여쭤봤다. 보청기를 사용하고 있지만 역시 동문서답이 돌아온다.
"칡 밥이 먹고 싶네."
쌀 위에 잘게 자른 칡을 올려 밥을 짓는 것인가 했더니 그건 아니었다. 할아버지 말에 의하면 칡 밥이란, 제법 높은 산에서 어른 허벅지만 한 칡을 하루 종일이든지 다음 날까지도 죽을힘을 다해서 파낸다, 그럼에도 전부는 못 캐고 가져올 만큼만 잘라온다, 그 칡을 두들기고 찧고 또 찧고 하면 보슬보슬한 하얀 속살이 남는데 쌀은커녕 보리 한 톨도 섞지 않고 거무티티 한 칡이 내어준 흰 속살로만 짓는 밥이라는 것이었다. 지금 같으면 보약 밥으로 무척 비싼 값에 팔렸을 것 같았다. 그 당시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 그리 먹었다니 사실 어떤 맛일지 짐작도 되지 않지만 할아버지의 기억 안에서는 그리운 고향 밥인 것은 분명해 보였다.
금세 수저를 놓는 할아버지에게 영양식 캔 음료를 내밀었다. 손사래를 치며 먹지 않겠노라 선언하는 할아버지에게 몇 번 더 영양식 캔을 권했다. 할아버지는 지팡이를 가슴까지 올리고 총을 겨누는 자세를 취하신다. 드시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암만 봐도 백발백중이라던 할아버지의 총구가 내 쪽을 한참 벗어나 있다.
"그렇게 겨누면 제가 맞기나 하겠어요? 백발백중이라 하시더니 순 엉터리네요."
할아버지의 주름살이 동그랗게 웃었다.
"다 같은 조선 사람끼리 총을 제대로 쏘면 죽을 텐데, 어떻게 맞히나? 사람 없는 땅에다 쏘는 거지. 백발백중으로 땅에다가."
나는 말문이 턱 막혔다. 할아버지의 백발백중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기 위한 백발백중이었던 거다. 시력이 나빠지신 거라 생각했는데 할아버지의 지팡이 총구가 내게서 한참 멀었던 것은 할아버지만의 비밀스러운 사격 방법이었던 거였다. 18살에 전쟁터에 가야 했던 할아버지, 난 18살에 아버지 돼지 저금통을 들고 가출을 했었다. 정말 비교된다.
한 손에 복도에 설치된 안전봉을 잡고 한 손엔 은색 지팡이를 의지한 채 방으로 돌아가는 할아버지의 흔들거리는 뒷모습이 어쩐지 대단하게 느껴졌다. 최고의 명사수가 확실한 할아버지는 오늘도 사람들을 피해 요양원 이곳저곳에 백발백중의 사격을 하는 중이다. 할아버지의 명사수 총구처럼 내 글도 누군가를 웃기고 울리고 살리게 되면 더할 나위 없겠다. 백발백중은 아니더라도, 단 하나의 글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