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세 된 할머니가 단식 선언을 하셨다. 요양원에서 지내는 어르신들 중 최고령이다. 할머니는 아침저녁으로, 동네 마트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아카시아 꿀을 한 모금씩 드신다. 잠자리에 들기 전 마른 수건으로 온몸을 닦는다. 할머니가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하는 루틴이다.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다. 고령의 어르신 중에는 혼자 식사가 어려워 요양보호사가 조력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할머니는 식사 또한 스스로 하려고 노력하신다. 다른 사람보다 두 배는 걸리지만 끝내 혼자 식사를 마친다. 그 할머니가 수저를 놓으셨다. 뭐가 마음에 들지 않다는 신호다.
토라지면 일단 밥을 거부하신다. 마치 아이처럼.
할머니는 150cm가 안 되는 작은 체구에 동그란 얼굴이다. 할머니가 지내는 침대에는 온갖 잡동사니가 올려져 있는데 이를테면 지난 달력들, 20cm 정도의 파란 플라스틱 바구니, 바구니 안에 빗과 거울, 로션, 이불을 청소한다며 탁탁 털 때 사용하는 효자손 등이다. 이상하게 연세가 드실수록 눈에 보이는 곳에 여러 가지 모으는 것을 볼 수 있다. 희미해지는 기억 대신 눈에 보이는 것에 안심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할머니는 치아가 하나도 없다. 치아가 없다는 것은 발음이 정확하지 않다는 뜻이 포함된다. 할머니 역시 도통 알아듣기 힘든 단어들을 쏟아내신다.
경험 있는 요양보호사들은 잘 알아듣지 못하면서도 대강 눈치로 할머니의 의도를 알아채는 편이다. 문제는 신입 요양보호사가 열정을 가지고 일 할 때이다. 할머니는 풀숲에서 먹이를 기다리는 두꺼비처럼 몸을 동그랗게 말고 때를 기다린다. 복도를 지나는 발자국 소리를 듣는다. 낯선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그때를 놓치지 않고 할머니는 호출벨을 누른다.
'딩동, 딩동'
한걸음에 달려온 신입 선생님이다. 할머니는 원래도 듣기 힘든 자신의 말을 더 흐릿하고 빠르게 쏟아낸다. 누구라도 알아들을 수 없는 할머니의 말이다. 신입 선생님은 고개를 돌리며 양쪽 귀를 번갈아서 할머니의 입 앞에 갖다 댄다. 알아들을 수 없다. 한쪽 손을 귀에 붙인다. 양 쪽 손으로 고깔을 만든다. 귀가 들을 수 있는 소리를 최대한 늘려본다. 쓸데없는 짓이다. 애초부터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다. 신입 선생님은 당황하기 시작한다. 듣고 듣고 또 들어봐도 도통 이해할 수 없게 된 신입 선생님 얼굴이 노랗게 뜬다. 할머니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눈두덩이 흘러내려 눈을 거의 덮고 있어 보이지 않던 할머니의 눈빛이 반짝 빛나기 시작한다.
할머니의 작전이 시작되는 것이다.
멀리 194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화에서 본 타임머신은 과거로 떠나기 전 준비기간이 있었다. 주인공을 둘러싼 기계가 빙글빙글 돈다. 굉음을 내며 돌아가는 속도가 최고조에 오른다. 그제야 과거로 출발이다.
할머니의 타임머신에게 그 따위는 없다. 바로 시작이다.
중일 전쟁 때였다. 일본은 1941년 7월 관동군 24만 명을 75만 명으로 증강시킨다. 대(對) 소련 전략의 일환이었다. 이때 관동군 보급 담당 참모 '하라'가 조선총독부를 방문해서 조선'도라지꽃'2만 명을 요구했다. 1만 명의 조선 처녀들이 관동군 쪽으로 끌려갔다.(wikipedia)
"좋은 직장에 가서 돈을 벌게 해 준다고 했지만 모두들 전쟁터로 끌려가는 거라고 말했어. 벌써 동네에서 서너 명이 잡혀간 터였어. 내게 열네 살 먹은 딸이 있었는데 그 애를 그리 보낼 수 없었지. 큰 항아리에 숨겼어. 만약 발각이라도 되면 딸아이와 함께 나도 죽을 생각이었어. 긴 칼을 허리춤에 찬 일본 순사가 새벽부터 어린 여자들을 찾으러 다녔어. 일주일 동안이나 마을을 돌아다녔지. 끝내 나는 항아리 속의 딸을 지켜냈어."
국사책에서나 읽었던 내용에, 듣고 있던 신입 선생님의 감탄사가 터진다. 놀라움의 탄성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녀는 어째서 할머니의 말소리가 처음과 달리 쏙쏙 귀에 들어오는지 눈치채지 못한다. 신입 선생님의 눈에 눈물까지 맺힌다. 이때가 할머니의 작전 클라이맥스다. 할머니는 최대한 애절한 목소리로 속내를 털어놓으신다.
"내가 109년을 살았는데 이제 무슨 여한이 있겠는가.
오늘 갈지 내일 갈지 모르는데 먹고 싶은 것도 먹지 못하고 살아서 무엇하겠는가.
여기서 세끼 밥은 준다지만 내가 진짜 먹고 싶은 것은 따로 있다네."
이쯤 되면 신입 선생님은 할머니가 드시고 싶은 것이 무엇이건 간에 가져다 드리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할머니는 입맛을 한 번 다시며 그것을 털어놓는다. 할머니의 최애 식품 목록이 등장한다.
새우깡, 새우깡, 또 새우깡
할머니는 복도를 힐끗 쳐다보고 목소리를 낮춘다. 손가락 한 개를 입에 붙인다. 다른 사람이 알게 되면 결코 안된다. 너만 알고 있어야 한다. 둘도 말고 하나만 사 오라는 당부가 이어진다. 이미 할머니의 작전에 빠진 신입 선생님은 대단한 것도 아닌데 그냥 몰래 하나만 사드리자고 마음먹게 되는 것이었다.
요양원에는 하루 두 번의 간식이 있다. 유제품이나 부드러운 빵 종류가 주로 나오지만 원한다면 새우깡 정도는 원도 없이 드시게 할 수 있다. 문제는 새우깡이 생기기만 하면 할머니는 식사를 거부하시고 침대에 누운 채로 새우깡만 물고 계신다는 거였다. 치아가 하나도 없기 때문에 미음을 드셨는데 새우깡만 드시다가 설사를 하기 일쑤였다. 할머니의 건강을 위해 요양원 측에서 보호자에게 당부하고 요양보호사들에게도 일절 새우깡을 드리지 말 것을 통보하기에 이른 터였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 입사한 신입 선생님이 할머니의 작전에 보기 좋게 걸려들었다. '둘도 말고 하나만'이 아닌 홈플*스에서 판매하는 무려 새우깡 다섯 개가 묶인 세트 상품을 아무도 몰래 가져다 드린 것이다. 할머니의 작전은 완벽하게 성공했다. 할머니는 밤새 주무시지도 않고 새우깡 네 봉지를 해치웠다. 할머니는 날이 밝은 후 내내 설사에 시달려야 했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안 나는 어쩔 수 없이 나머지 한 봉지의 새우깡을 압수했다. 할머니는 특유의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하며 '밥을 먹지 않겠다' 선언하신 것이었다.
이놈들아~ 너희들은 그 옛날, 쌀을 수탈해간 일본 놈들하고 똑같은 놈들이다.
요즘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한창이다. 할머니가 쌀을 일본에게 뺏기던 시절, 일본은 당시 한국에서 재배하던 쌀의 품종을 자국의 품종으로 교체했다. 더 많은 쌀 수확을 위해서 일본의 좋은 품종을 사용한다라고 선전했다. '산미 증식 계획'이었다. 늘어난 쌀 수확량은 고스란히 일본이 뺏어갔다. 현재까지도 우리 식탁에 일본 품종 쌀이 오른다. 고시히까리, 추정(아끼바레) 등 60% 이상이 일본 쌀이다. 경기미라고 알려진 쌀도 실은 고시히까리나 추정벼를 재배해서 판매한다.(김세진, mbc 뉴스 참조 2019. 08.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