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마주칠 때마다 할머니의 '어스름' 하는 소리가 들린다. 연한 붉은빛 염색을 한 단발머리 할머니는 피아노 치는 자세로 소파에 등을 기대지 않고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주위를 두리번거린다.할머니는 전직 중학교 선생님이었고 자칭 타칭, 아름다운 외모에 세련된 말투를 가진 치매를 앓고 있는 여자다.
"어스르음~" "할머니. 지금은 좀 바빠서요... 조금 있다가 말씀해 주세요."
요양원의 일과 중 가장 바쁜 아침시간이다. 할머니는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 병은 할머니의 기억 대부분을 먹어치웠다.할머니에게 남은 한두 가지의 기억을 놓지 않기 위한 힘겨운 노력일까. 할머니는 늘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설명했다.바로 '어스름'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꽤 장구하기에 지금처럼 바쁜 시간엔 들어 드릴 수가 없다. 나는 할머니의 시선을 피해야만 했다. 할머니는 아쉬운 눈빛으로 낡고 긴 소파에 앉은 채 요리조리 '어스름'을 펼칠 상대를 찾고 있지만 늘 실패하기 일쑤였다.
조금 여유가 생겨 할머니 앞에 앉았다. 외로움과 아픔이 깊이 스며든 눈빛을 끝까지 외면할 수는 없다. 아파본 사람이 타인의 아픔을 더 잘 볼 수 있다. 나는 꽤 많이 아팠었다.
할머니 자글한 주름이 더 쭈글 해지고 주름살 사이로 깊이 숨겨둔 눈동자에 빛이난다. '어스름' 스토리에 준비운동은 없다.바로 본론이다. 그 이야기가 할머니 기억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주의사항이 있다. 일단 이야기가 시작되면 어떤 질문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인데 스토리 중간에 갑자기 끼어들면 할머니는 다시 처음, 그러니까 '어스르음~'으로 돌아가버리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어스름'에 붙잡히고 싶지 않다면 가만히 고개만 끄덕이며 이야기의 결말을 기다려야 한다.
어스름 저녁이 되면 아버지는 긴 곰방대를 한 손에 쥐고 한 손에는 작은 내 꼬막손을 잡고 집 뒤에 있는 야트막한 동산에 올랐다.낮다고는 하지만 어린 내게 꽤 험했기에 괜히 길가의풀을 잡아 뜯으며 심통을 부렸다.동산 꼭대기에 오르면 아버지는 가파른 경사면이 시작되는 곳에 걸쳐있는 넓고 평평한 바위에 앉으셨다.
그때는 일제가 한참 미국과 전쟁을 벌이던 때였다. 전쟁물자를 충당하기 위해 여러 명목의 수탈이 가장 극심했을 때이기도 했다. 마을 대부분의 논은 아버지 소유였지만 아버지는 소작농들에게 불평을 듣는 사람은 아니었다.
일본은 마을별로 할당량을 책정해서 각종 물자를 뺏어갔는데 쌀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본의 물자수탈 초기에는 마을로 보내진 가마니를 채우기만 하면 됐다. 가마니에 든 내용물을 구분하지 않고 말이다. 아버지는 논에 옥수수를 대량으로 심어 옥수수를 쌀 대신 보내며 마을의 쌀을 마련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전쟁에서 수세에 몰린 일제의 수탈 방법 또한 치밀하고 주도면밀해졌다. 결국 마을에서 사용할 쌀마저 뺏기게 되면서 내 또래의 밥을 굶는 아이들은 늘어만 갔다.
멀리 마을 아낙들이 큼지막한 대나무 바구니를 머리에 올리고 콩콩거리며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모습이 보였다. 산 그림자가 서둘러 그 뒤를 뒤쫓고 있었다.동그란 점들이 서둘러 각자의 집으로 사라지면 굴뚝마다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고 아버진 긴 곰방대에 말린 담뱃잎을 꾹꾹 눌러 넣고 시꺼먼 돌멩이에서 떨어진 불똥을 빨아댔다. 곧 곰방대에서 연기가 몽골 거리며 올랐고 아버지는 동네를 한 바퀴 휘익 돌아봤다.집집마다 긴 곰방대와 같이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런데 유독 한 집의 굴뚝은 깜깜이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연기가 보이지 않았다.내 친구 명자네 집이었다. 아버지의 긴 곰방대에서 한숨이 나왔다. "아가! 광에 가서 쌀 한 바가지 가져가다 저 집 마루에 두고 오너라." "우리 먹을 것도 부족한데....."
복어 마냥 양쪽 볼을 한껏 부풀린 나는 애꿎은 길가의 돌멩이만 걷어차며 명자 네로 갔다.문틀과 아귀가 맞지 않아서 삐딱한 방문 틈으로 방안의 모습이 보였다. 밥상 위에 공깃밥 하나를 두고 다섯 식구가 둘러앉아 공놀이 하듯이 밥그릇 하나를 이리 밀고 저리 밀고 있었다.여기저기 살 튼 고동 색깔 밥상이 휘어진 다리를 부들거렸다. '명자야!' 부를까 하다 말고 툇마루에 쌀 한 바가지 조용히 두고 오는 길에 심통에 부풀었던 두 볼은 어쩐지 웃고 있었다.부리나케 집으로 오는 길에 몇 번이나 명자네 굴뚝을 돌아봤는지모른다. 저 멀리 아버지의 곰방대가 피워 올리는 연기가 보이는 것 같았다.허허, 기분 좋게 웃고 계실 아버지의 모습도 함께.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누군가 면회를 왔다는 신호다. 할머니께 어색한 미소를 전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말을 멈춘 할머니는 곁눈질을 하는가 싶더니 다시 입술을 움직인다.
"어스름 저녁이 되면......"
오늘은 할머니의 기억 전부를 나눌 수는 없겠다.살짝 웃어드리고 돌아선 등 뒤로 아쉬운 할머니의 소리가 따라온다. "어스르음~"
얼마 전 낯선 도시에서 생활고를이기지 못하고 죽음을 맞은 작가를 꿈꾸던 젊은 여성, 얼마의 월세를 봉투에 담아두고 함께 세상을 떠난 세 모녀, 홀로 죽은 뒤 아무도 찾지 않아 백골의 모습으로 발견된 중년 사내의 뉴스가 생각난다. 우리는 할머니가 기억하는 그때보다 훨씬 잘살게 되었지만 굴뚝에 연기를 올리지 못하는 명자네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한 번씩 우리가 사는 동네를 한 바퀴 휘익 돌아보면 좋겠다. 연기가 나지 않는 굴뚝을살피면서.어쩌면 그 옛날 소녀의 두 볼처럼 우리도 웃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