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LOST STORY 04화

그거면 됐다

할머니의 기도

by 고재욱
기도란
무력한 인간에게 주어진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기도와 무력함은 떼어놓을 수 없다.
오로지 무력한 이만이 진심으로 기도할 수 있다.

- 오 할레스비





어둠 속에 숨어있던 안개는 새벽이 되어도 사라지지 않았다. 더 짙어졌다. 큰 나무들이 몇 조각으로 잘렸다 붙기를 반복했고 마을을 둘러싼 산등성이는 안개에 밀려 멀리 물러나 보였다. 논에 물을 대러 가는 사내의 그림자가 유령처럼 허옇게 흔들렸다. 마을은 축축했지만 조용했고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그때까지는 어느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무슨 일이 생기고야 말았다는 것을. 아침이 오기 전까지는.

안개에 반쯤 잘린 자동차 옆으로 허리 굽은 노인이 사라지고 있었다.


하루 중 가장 분주한 아침시간이었다. 치매노인들에게는 오늘이 창세기 1장 1절의 시작이다. 어제의 기억은 사라지고 현재의 시간만이 오늘의 기억이 되는 곳, 오늘의 기억은 다시 사라지고 내일이면 잊힌 어제가 되고 말 곳, 이곳은 치매노인들을 돌보는 요양원이다. 잠에서 깬 어르신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눈만 끔뻑거린다. 나는 어르신들의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세수를 돕고 면도를 해드리고 아침 식사준비를 한다. 기저귀를 봐드리고 옷을 갈아입혀드리고 휠체어에 어르신을 태우는 똑같은 일상이지만 매번 분주하고 약간의 긴장이 도는 아침이 한참일 때, 다급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할머니께서 사라지셨다."

평소에도 가끔 집에 가신다며 보따리를 싸던 분이셨다. 걸음이 조금 불안했지만 보행이나 식사는 스스로 할 수 있는 분이었다. 인지능력은 '치매 중기'(기억이 뒤죽박죽 뒤섞임, 시간과 장소를 혼동, 거리를 배회하거나 길을 잃어버림 등) 상태였다. 할머니의 방을 살폈다. 다행히 보따리가 있었다. 멀리 가신 것은 아니었다. 서둘러 요양원 주변을 살폈다. 자욱했던 안개는 자취를 감쳤고 할머니도 안개처럼 족적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주민이 적은 마을이지만 땅 넓이는 작지 않은 시골마을이었다. 이곳은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이다.

찐빵과 더덕과 고로쇠 수액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면소재지 가운데쯤 5일장이 열리는 시장이 있다. 예전에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이는 꽤 큰 규모로 장이 열렸다고 한다. 외곽으로 새 도로가 생긴 뒤로는 장이 서는 날에도 한산하기만 했다. 시장이라고 해봐야 길 하나를 두고 양쪽으로 늘어선 상점이 다였다. 상점마다 들러 할머니를 수소문했지만 모두 고개를 저었다. 이 마을은 들어오고 나가는 길이 뻔했다. 큰 길쪽으로만 가신 것이라면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지만 넓은 하천이나 논, 산으로 할머니의 걸음이 향했다면 보통 문제가 아닌 것이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가을이 왔다고들 하지만 낮 기온도 심상치 않게 높았다. 멀리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바쁘게 할머니를 찾는 모습이 보였다. 그럼에도 우리의 수색은 아무 성과가 없었다. 어떤 연락이라도 확인하기 위해 휴대폰 화면을 켰다. 할머니가 사라진 지 한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사무실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렸다. 나는 전화기를 향해 몸을 돌렸다. 사무실에 모였던 모두의 눈빛이 전화기로 향했다.

"요양원 할머니 같으신데 모셔 가세요."

"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끝도 없이 '감사합니다'를 전화기 너머로 전했다. 요양원 직원들뿐만 아니라 함께 했던 경찰관들도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서둘러 차에 올랐다. '무사하시다니 되었다'라고 생각하면서도 왜 그런 일을 벌이시는지 내심 서운한 감정이 밀려왔다.


자동차가 도착한 곳은 마을 외곽에 있는 성당이었다. 높게 자란 소나무들을 배경으로 그보다 더 높은 종탑을 목을 꺾고 올려다봐야 했다. 아득했다. 넓은 마당엔 네모난 돌들이 흙속에 파묻혀서 징검다리를 만들고 있었다. 소나무가 만든 검은 그늘 아래에서 몸의 반쯤을 그늘로 덮은 고양이 한 마리가 땅에 턱을 고이고 나를 쳐다봤다. 때늦은 매미가 고양이 소리를 내며 울고 있었다. 한눈에도 오래되어 보이는 성당 입구를 찾기 위해 나는 성당을 한 바퀴 돌고 나서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성당 안은 바깥에 비해 어두웠지만 벽에 붙은 색유리창을 통과한 햇볕의 줄기들이 조명 역할을 해서 보기에 불편한 정도는 아니었다. 맨 안쪽 벽에 높이 걸린 십자가가 보였다. 십자가에 달린 남자의 얼굴이 고통스럽다. '수천 년이 지났지만 왜 아직도 고통스러운 얼굴을 하고 십자가에 달려있을까'하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교회에 걸린 십자가에는 아무도 매달려있지 않다. 나는 개신교인이었다. 그렇다고 열심당원은 아니었다. 할머니는 십자가 아래에 있는, 십자가에 매달린 사람의 표정과는 달리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는 하얀 조각상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할머니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시간이 떠올라 따지기라도 할 요량으로 할머니 앞으로 성큼 향했다. 할머니 뒤에 서있던 검은 사제복을 입은 머리 희끗한 신부님이 내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이 빙긋이 웃으며 손가락 하나를 자신의 입에 갖다 대었다. 할머니를 방해하지 말란 뜻이었다. 나는 얼떨결에 조용히 할머니의 뒤, 신부님의 옆에 나란히 서게 되었다.


할머니는 성모 마리아상 앞에서 공손하게 절을 올렸다. 두 손을 얼굴 가까이에 멈추고 손바닥을 붙였다.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바닥에 대고 머리를 바닥까지 숙인 다음 두 손바닥을 하늘이 보이도록 뒤집었다. 그러고는 다시 일어나 이 행동을 처음부터 반복 하는 것이었다. 노 신부님이 내게 미소를 보냈다. 신부님은 살짝 내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조용히 말했다.

"108배 중이십니다."

할머니는 불교신자였다.


노 신부님은 할머니의 머리가 바닥에서 들릴 때마다 숫자를 세 주었다. 그런데 숫자의 순서가 드문드문했다. 17, 30, 51, 80.... 이런 식이었다. 몇 번의 절이 더해지고 나서 노 신부님과 나는 동시에 크게 외쳤다.

"108"

뒤를 돌아보며 눈을 끔뻑거리는 할머니께서 자글자글한 주름을 잔뜩 모아서 흡족한 미소를 보내셨다.

"기도란 것이 결국 무력한 인간을 위한 것일 테니 '보살'이시면 어떻고 '마리아'시면 어떻습니까. 허허..."

노 신부님의 선한 웃음소리가 멀리까지 우리를 배웅했다.





"할머니, 기도하실 거면 왜 여기까지 오셨어요? 교회 놔두고요."

"거긴 시끄러워서...."

할머니 시선에서는 교회가 기도하는 곳이 아니었나보다.

"그래서 뭘 그렇게 비셨는데요?"

"..... 소원을 말하면 부정 타서... 말하면 안 돼..."


말하지 않아도 알겠다. 할머니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랬을 테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새벽에 정갈하게 머리를 묶었을 것이다. 부엌 부뚜막 위에 우물에서 제일 먼저 길어온 물 한 그릇 올려놓고 할머니는 정성을 다해 두 손을 비볐을 것이다. 부엌에서는 조왕신(전통설화에 등장하는, 부엌을 수호하는 신)에게, 마을 입구에 있는 서낭당을 지날 때면 마을을 지켜준다는 다른 신에게, 부처님을 알게 된 후에는 절마다 있는 부처상에게 소원을 빌었을 할머니였다. 나 역시도 그래온 것 같다.

교회 딸린 요양원에 지내시며 부처님 찾아 천주교 성당에 가서 마리아 상 앞에서 108배를 무사히 마친 할머니의 얼굴이 평온하게 느껴졌다. 노 신부님의 말처럼 '그거면 됐다.'싶다.

할머니께서 뭘 비셨는지는 말하지 않겠다. 말하면 부정 타니까.




*사진 출처. Myriams-Fotos,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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