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 ‘심다'라는 단어가 있다. 사전적 정의는 초목의 뿌리나 씨앗 따위를 흙 속에 묻는 것을 말하고 비유적으로는 마음속에 확고하게 자리 잡게 하다는 뜻을 지녔다.‘심다'라는 말이 씨앗처럼 내 마음 밭에 자리 잡고 싹을 틔운 것은 순전히 그 덕분이었다.
요양원에 입소한 그는 근육이 굳어가는 파킨슨 병을 앓고 있었고 당뇨병으로 인해 두 눈이 어두워가는 상황이었다. 거기다 그는 정기적으로 신장투석을 받았고 살이 거의 없어 무척 마른 편이었다.
내가 그와 처음 만났을 때 그는 길고 하얀 머리카락을 뒤로 질끈 묶고 꼿꼿이 세운 허리로 침대 모서리에 앉아있었다. 괴팍한 노인이니 조심하라는 둥, 앞을 잘 보지 못하니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는 둥, 몇 가지의 지나가는 충고가 들렸다. 며칠 동안 그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다정한 인사를 건네도 빈 허공만 쳐다볼 뿐이었다.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 갈수록 불편해지는 쪽은 나였다.
<1953년, 강원일보 소설 연재. 그림 공부를 위해 파리 유학. 대한민국 사진전 대상>
그의 화려한 이력에 사람들은 수군거리다가 맥없이 하루를 침묵 속에 보내는 노인의 모습에 다시 수군거렸다. 나는 그의 이력을 알고 난 후부터 무슨 생각인지 그에게 시를 읽어주기 시작했다. 내가 습작하던 유치하기 짝이 없는 시였다. 과거 소설가였던 치매노인에게 뭔가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순수한 마음이라고는 하지만 무슨 용기로 그랬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에게 시를 읽어줄 때 가끔씩 허공을 향한 그의 시선이 나를 향하기도 했다. 그러면 나는 더욱 신이 나서 시를 짓고 그에게 낭송을 했다. 사람들은 부질없는 짓이라며 혀를 찼다.
어느 날, 엉성한 시 한 편을 그에게 읽어주고 있을 때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자네가 직접 쓴 시인가?"
처음으로 듣는 그의 목소리는 따스하고 깊은 애정이 느껴졌다. 그는 내게 솔직함을 감추는 용기를 글에 넣어보라고 했다. 이제야 그 말의 뜻을 조금 알겠다. 한번 시작된 그의 말은 자주 내 마음을 흔들었고 오랜 세월을 지나온 경험들이 쏟아질 때면 나는 동상처럼 그의 앞에 서서 떠날 줄을 몰랐다.
그는 눈앞 30cm밖에 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아침마다 더듬거리며 아주 느린 속도의 걸음으로 정원을 산책했다. 그를 혼자 보낼 수 없었기에 나는 늘 그와 함께 했다. 그럴 때면 그는 내게 꽃에 얽힌 사연을 들려주었다. 제주도의 오름에서만 자란다는 붉은 피뿌리풀, 잎과 꽃잎이 서로 한 번도 만나지 못한다는 상사화, 자르고 잘라도 다시 자란다는 부추꽃 등 한 번도 본 적 없던 꽃들이 그의 입을 통해서 내 마음으로 들어왔다. 그가 전하는 꽃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며 나도 모르게 그와 동행하는 산책을 즐기게 됐다.
그는 방으로 돌아와서는 스케치북을 펼쳤다. 벽화 속으로 들어가려는 사람처럼 스케치북에 머리를 바짝 붙이고 그가 내게 말해주던 꽃들을 그렸다. 그의 꽃은 아주 느리게 자랐지만 하루하루가 쌓이면서 어느새 4절지를 반 이상 채우며 흰 종이 가득 피어났다.
그가 한 번은 손잡이가 있는 큰 돋보기를 구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한 손에는 돋보기, 다른 한 손에는 펜을 들고 큰 글자들을 스케치북에 쓰기 시작했다. 대개는 가끔 그에게 걸려오는 지인과의 전화 내용이거나 산책길에서 나와 나눴던 일상의 평범한 이야기들이었는데, 그는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을 들이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가 며칠 지나면 그만둘 것이라 예상했지만 그는 한 달이 지나도 꽃을 그리고 글자 새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하겠노라 선언했다.
어느 날부터 그는 산책 나가는 일을 멈췄다.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도 글자를 새기지도 않았다. 그의 두 눈이 더 나빠졌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눈앞 30센티미터의 사물도 식별이 어렵다고 했다. 돋보기로도 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는 며칠을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늘 웃음기 가득한 얼굴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웠던 며칠이 지나갔다. 드디어 그가 나를 불렀다.
"구어체의 내 소설을 현재에 맞도록 고쳐주게."
1950년 대에 발표된 그의 첫 소설을 현재 상황에 맞춰보겠다고 했다. 신문에 매일 연재되었던 글이었다. 나는 공식적으로 글공부를 한 적이 없었다. 아니, 비공식적으로도 없었다. 나는 그럴 수 없다고 딱 잘랐다. 그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고 식사도 거의 하지 않았다. 도리가 없었다.
강원일보를 방문했다. 1953년도 그의 연재소설이 실린 신문을 물었다. 놀랍게도 있었다. 친절하게 복사까지 해 주었다. 단편소설이었다. 최소한 신문사에서 복사해준 종이 뭉치는.
방에서 나온 그는 다시 생기를 찾았다. 자상한 미소도 돌아왔다. 그리고 소설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가 어떤 장면 하나를 떠올리면 나는 그 장면을 실감 나게 묘사해야 했다. 그와 대화를 나눈 후에는 또 그만큼의 분량이 늘어났다. 구어체의 문장만 바꾸면 될 것이라는 내 생각은 완전히 오판이었다. 밤을 새워 글을 써야 했다.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가 슬퍼할 것 같았다. 나는 이미 그가 좋아져 버렸다. 소설은 어느새 중편소설이 돼버렸고 훌쩍 삼 개월이 지나갔다. 드디어 서울에 있는 인쇄소에 원고를 보냈다. 그리고 그에게 달려갔다. 제 딴에 으쓱해진 손자가 할아버지 품을 향해 달려가듯이.
그는 오랜만에 산책을 가자고 했다. 아침이슬이 땅과 하늘을 반반씩 머금고 떠날 준비가 한창이었다. 볕뉘 내리는 작은 오솔길에서 그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한껏 햇살을 받는다. 나도 같은 모습으로 그를 따라 한다. 그를 닮아가는 느낌이 참 좋다.
"그 책은 말이지. 자네를 위한 내 선물이네. 소설 한 편을 완성해보았으니 앞으로 글쓰기에 큰 도움이 될 거네."
뜨거운 것이 목울대로 넘어왔다. 감았던 눈을 뜨고 그를 찾는다. 그는 어디에도 없다. 그와 함께 보았던 꽃만 흔들린다.
그는 끝내 4절지 가득한 꽃을 피우지는 못했다. 돋보기로 한 글자 한 글자 새기던 그의 마지막 소설 또한 미완성으로 남았다. 하지만 그가 씨앗 하나를 내 가슴에 심은 것은 분명했다. 그가 떠난 뒤에도 자꾸만 그를 닮아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가 빈 백지에 그리던 꽃과 글자들은 고스란히 내 마음 밭에 떨어져 자리 잡았다. 이제 가꾸고 꽃을 피우는 일은 내 몫일 것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내 마음 밭에서 자라는 씨앗이 활짝 피어나서 누군가에게 꽃씨 하나 된다면 참 좋겠다. 그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이정연 작가님의 신문 연재는 1966년이었습니다. 1953년이라고 쓴 본문은 지난 기억을 되살리다 생긴 오류인데, 본문은 그대로 두고 덧붙이는 것으로 수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