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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김치통을 안고 울었다

열무와 갓김치

by 고재욱


지난 추석 연휴였다. 추석 당일 나는 오후 4시까지 일을 했다. 원래 근무는 오후 9시에 끝나는 이브닝 근무였다. 직장 동료가 자신과 근무를 바꿔달라고 부탁했다.

올해 추석에도 엄마를 뵐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기막힌 타이밍에 근무 변경으로 추석날 찾아뵐 수 있게 된 거다.


몇 년 동안 추석이나 설 명절에 집에 갈 수가 없었다. 강원도라는 거리가 주는 부담과 삼 교대라는 근무체계 때문이기도 했지만 내가 솔로로 지내는 것과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동료들은 은근히 내게 명절 근무를 바라는 눈치였고 나 역시 적극적으로 명절 근무를 반대하지 않았다. 나는 요양보호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이 직업은 다른 사람의 부모를 보살피기 위해 정작 내 부모는 찾아뵙지 못하는 일이었다. 어머니는 늘 서운해하셨지만 좋은 일 하는 거라며 오히려 나를 격려했다.

추석 당일이라 서울방향 고속도로가 막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 밖이었다. 막혀도 너무 막혔다. T-map에서 제공해주는 빠른 길 안내나 실시간 교통 정보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내비게이션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자신은 시간이 얼마가 걸려도 상관없다는 말투였다. 평소라면 1시간 30분 걸리는 거리. 전혀 지치지 않은 내비게이션 그녀와 달리 나는 눈이 퀭해진 후에야 안양에 도착했다. 3시간 넘게 걸려서.

부모님 집 근처에 도착한 후에도 나는 쉽사리 집으로 향하지 못했다. 그동안 찾아뵙지 못한 죄송함과 엄마의 아픈 얼굴이 먼저 떠올랐기 때문이다.


3년 전에 엄마는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결국 한쪽 가슴을 잘라내야 했다. 혼자 살면서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꽤 철없는 나에게는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치료가 끝나고도 한참이나 지나서야 나는 엄마의 한쪽 가슴이 사라졌음을 알았다. '괜한 걱정만 시킬 게 뻔하니'가 엄마의 이유였다.


방사선 치료를 받을 당시에 엄마는 치료 부작용으로 전혀 식사를 하지 못하셨다. 근 1년간을 미음이나 죽으로 연명하셨다고 했다. '이번에도 못 오니?' 엄마가 물었을 때 '그렇지 뭐 '라고 대답한 나는 김치가 떨어졌다고 말했다. 엄마는 내게 김치를 보냈다. 나는 열무김치와 갓김치도 먹고 싶다고 했다. 엄마는 며칠 후에 열무김치와 갓김치를 내게 보냈다. 집에서 식사를 잘하지 않던 나는 엄마가 보내준 김치를 몇 번 먹지 못하고 몽땅 버렸다. 나중에 엄마의 사정을 알게 된 나는 빈 김치통을 안고 한참을 울어야 했다.

다행히 더 이상 엄마의 몸속에서 암세포는 발견되지 않았다. 정기적으로 검진을 할 뿐이다. 그 일 후에 나는 요양보호사란 직업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 내 부모님께 기본도 못 해 드리면서 다른 노인들을 보살핀다는 것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엄마는 '네가 하는 일이 얼마나 귀한 일이더냐'라며 만류했다. 요즘 나는 이직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팔십 가까운 엄마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대문 앞에 한쪽 다리를 삐딱하게 하고 서 있는 엄마 모습이 보였다. 노인들을 보살피는 일을 하다 보니 어르신들의 자세만 봐도 어디가 불편한지가 보인다. 엄마는 무릎이 아프신 게다. 나를 본 엄마가 뭐라 몇 마디를 했다. 잘 왔다, 오느라 고생했다, 살이 빠졌구나... 이런 말들이었을 것이다. 엄마를 보자마자 목울대에 뜨거운 것이 걸려서 나는 들리지도 말할 수도 없는 지경이 되었다. 괜히 화장실만 들락거렸다.

빠른 속도로 상이 차려졌다 미리 도착한 누나와 매형, 엄마와 아버지, 그리고 나. 오랜만에 조촐한 가족이 모두 모였다. 조카 둘은 제 할 일들을 하러 갔다고 했다. 이미 다 커버린 녀석들이다.


식구도 몇 되지 않는데 엄마는 늘 상당한 양의 음식을 준비한다. 나와 누나의 손에 음식을 들려 보낼 요량이신 거다. 갈비, 홍어찜, 동태전, 새우튀김, 양념게장이 바쁘게 차려졌다. 아버지가 직접 수산시장에서 생선을 구입한 후 옥상에서 말렸다는 생선구이도 있었다. 이어서 8종류의 나물이 등장했다. 경상도가 고향인 엄마는 추석 때 각종 나물을 빠트리지 않는다. 그런 다음 동그랗고 하얀 접시에 그것이 담겨 나왔을 때 나는 화장실에 가기도 전에 어깨를 들썩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열무김치와 갓김치'였다.

엄마는 자꾸만 음식들을 내 앞으로 끌어다 놓았다.
엄마의 추석 음식은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전부 맛있었다.
그럼에도 내 시선은 자꾸만 '열무김치와 갓김치'로 향했다.
열무김치에서 엄마의 눈물 맛이 났다.
갓김치에서 엄마의 사라진 젖가슴 냄새가 느껴졌다.
엄마는 보름달처럼 웃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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