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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살, 녀석에게 항상 막걸리 냄새가 났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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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욱

1.


녀석에게서 항상 막걸리 냄새가 났다. 녀석의 나이 열세 살이었다. 평상시에 양쪽 무릎 부근이 불룩 솟은 감색 운동복과 발가락이 튀어나오는 슬리퍼를 신고 다니던 녀석은 아이들 틈에서도 금방 눈에 띄었다. 녀석을 아래위로 훑어보던 아이들이 녀석과 눈이 마주치자 급히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었다.

나는 손을 흔들며 녀석에게 말했다.

- 야, 이제오냐.

-......

녀석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의 귀밑이 빨갛게 물들어있었다.

- 또?

녀석은 여전히 말이 없었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는 듯이 이를 악물고 있었다.

녀석의 슬리퍼 한쪽이 너덜거렸다. 녀석은 벗겨질 것 같은 슬리퍼를 땅에 질질 끌며 교문 안으로 들어섰다. 녀석은 책가방도 가져오지 않았다. '가방은?' 물으려다가 나는 입을 다물었다.


녀석은 그날 선생님에게 매를 맞았다. 학교에 오는데 운동복을 입어서 한 대, 양말도 없이 슬리퍼를 신어서 또 한 대를 맞았고 책가방을 가져오지 않은 일에는 길고 얇은 고동색 회초리로 손바닥을 셀 수도 없이 맞았는데,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은 선생님은 매를 맞고 자리로 돌아가는 녀석의 뒤통수를 한차례 더 때렸다. 녀석은 '아야'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녀석의 사정을 빤히 알면서 녀석을 매타작 하는 선생님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녀석은 자리로 돌아가면서 한쪽 끝이 떨어져 너덜거리는 슬리퍼를 바닥에 끌며 소리를 냈는데, 그 때문에 의자에 앉지도 못하고 교실 뒤에서 슬리퍼를 손에 고 벌을 서야 했다. 슬리퍼를 끈 것이 반항의 표현이라는 선생님의 판단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녀석을 힐끔거렸다. 고개 숙인 녀석이 한 번씩 고개를 들 때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걱정과 달리 녀석은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이를 악물었다.


여자아이 하나가 우리 앞에 서서 쭈뼛거렸다.

- 뭔데?

길을 비키라는 뜻으로 내가 말했다.

- 저기..... 오늘이...... 내 생일인데 혹시 우리 집에 오지 않을래?

여자애는 반 아이들이 대부분 참석할 거라고, 생일 선물은 사 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덧붙였다.

- 그으래? 그럼 가볼까?

나는 녀석을 쳐다봤다.

그때 꼬맹이 여자애가 내 팔목을 잡아끌었다. 녀석은 말고 너만 와라, 이런 소리를 했다. 반 아이들이 녀석을 싫어할 이유는 없었지만 좋아할 이유 또한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녀석을 힐끔 쳐다봤는데 녀석은 먼 하늘만 보고 있었다. 나는 짝꿍 여자애에게 생일 파티엔 못 가겠다고 말했다. 얼굴을 붉히던 짝꿍은 두 번 묻지도 않고 뒤돌아섰다. 녀석은 왕따가 아니었지만 반 아이들 모두 반기지도 않았다.


생일 파티를 거절한 우리는 집으로 향했다.

현관문, 이랄 거도 없는 작은 문을 열면 부엌이 나오고 부엌에 딸린 작은 방 두 개가 있는 반지하 집이 내가 살던 곳이었다. 부엌에 연탄을 넣는 부뚜막이 있었지만 겨울도 아닌 계절에 연탄불이 있을 리 만무했고 우리는 석유곤로에 불을 붙이고 물을 담은 냄비를 올렸다. 포장지 색깔마저 먹음직스러운 삼양라면 두 봉지를 뜯으며 우리는 한 가지 생각만 했다. 빨리 익어라.


며칠 동안 녀석이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녀석이 하루 이틀 결석하는 일은 가끔씩 있었던 일이었다. 녀석의 빈자리를 확인한 선생님은 출석을 부를 때 녀석의 이름을 건너뛰었다. 그런데 삼 일이 지나도 녀석은 나타나지 않았다. 아무도 걱정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나는 나흘째 되는 날 녀석을 찾아 나섰다.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알았지만 나는 한 번도 녀석의 집에 가본 적이 없었다. 나는 녀석을 찾기 위해 산으로 향했다. 녀석이 사는 곳은 약수터였다.


이십 분쯤 등산로를 따라 오르자 동네 외곽에 있는 테니스 장 넓이의 공터가 나왔다. 평행봉과 철봉, 서너 개의 운동기구가 보였다. 하얀색 플라스틱 통을 바닥에 내려두고 몇 명의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그 옆으로 10여 미터 길이의 검은 천막이 보였다. 천막은 비닐하우스 형태였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비닐하우스 위에 검은 천을 한 겹 덧씌워놓은 것이었다. 검은 천막의 입구는 열려있었다. 입구 앞쪽에 피라미드처럼 생긴 나무 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거기에는 막걸리, 파전이라는 굵고 검은 글씨가 삐뚤빼뚤 적혀있었다. 천막 앞 쪽으로 흰색 테이블 두 개가 있었고 테이블 주변으로 가벼워 보이는 파란색 의자가 덤성덤성 놓여있었는데 손님들은 한 명도 없었다.

- 봉만아!

나는 녀석을 부르며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천막 입구에 간단한 조리기구가 보였다. 프라이팬과 그릇들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는데 설거지를 해놓지 않아 파리떼가 그 주위로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다시 녀석의 이름을 부르려고 가슴에 공기를 불어넣었다. 그때 천막 안쪽에 있는 두꺼운 검은 천으로 감싼 문이 열렸다. 녀석이었다.

- 야. 학교는 왜 안 나오냐? 어... 네 얼굴이...

나는 말을 하다 말고 녀석 앞으로 달려갔다. 녀석의 이마에 큰 혹이 생겨서 앞으로 튀어나와 있었고 얼굴엔 여기저기 퍼런 멍이 보였다. 입술 한쪽은 터져 딱지가 앉아있었다. 녀석이 늘 입고 다니던 운동복엔 검붉은 얼룩이 잔뜩 묻어 있었다. 녀석의 두 다리가 부들거렸다.

나는 급하게 주위를 둘러봤다.

녀석이 힘겹게 말했다.

- 없어. 술에 잔뜩 취해서는 엄마 잡으러 나간다더니 며칠 동안 소식이 없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엄마를......

녀석의 퉁퉁 부어오른 입술이 씰룩거렸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녀석의 얼굴만 보고 있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녀석의 결석은 자주 반복되었다.

녀석의 말수도 갈수록 줄어갔다.


녀석과 나는 같은 중학교에 배정되었다. 입학식 날 녀석은 나타나지 않았다. 녀석의 책상은 한동안 비어있었는데 곧 치워져 버렸다. 그렇게 녀석은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다음 편으로~~


(커버 사진 pixabay,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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