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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 Dec 12. 2021

동네 미용실이 다 망했다

갈곳 잃은 내 머리

전역 후, 나는 1년 7개월 만에 미용실을 가기 위해서 집 밖을 나섰다.  나는 입대 전에 늘 다니던 미용실이 망했으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당연히 그 미용실을 향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 미용실 자리에 있던 것은 미용실이 아닌 장황하게 영어로 써진 Hair salon 이였다.




안을 들여다보니, 흔히 내가 '비싼 미용실'이라 생각하던 풍경이 들어있었다. 젊은 여성 미용사들이 손님 한 명에게 기본 2~3명씩 붙어있었고 원장으로 보이는 머리가 긴 남자 미용사는 내가 지금까지 다니던 미용실에선 볼 수 없었던 온갖 기술들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머리 자르러 나왔으니까 자르고 들어가야지." 라고 생각하며 조금 긴장된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그러자 카운터에 앉아있던 젊은 미용사 한 명이 벌떡 일어나며 인사를 했다. "어서 오세요! 혹시 예약하셨나요?" 나는 벙 찐 표정으로 답했다. "예약이요? 안 했는데,," 그러자 그 젊은 미용사는 나에게 미용실 명함을 건네며 말했다. "죄송해요. 저희 샵은 예약을 하고 와주셔야 해서,, 지금 바로 예약 잡아드릴까요?"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여기 미용실이 좀 특별한 것이지, 다른

미용실은 내가 생각하던 그 모습일 거라 착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간단하게 목례를 하고 

미용실을 나왔다.

내가 생각하던 미용실이 아닌데,,



몇 걸음 더 가지 않아서, 사람이 없어 보이는 미용실 하나를 발견했다. 미용실 이름이 또 "영어 영어~~ hair art"라서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설마 손님도 없는데 예약했냐고 물어보진 않겠지?" 라며 스스로를 위안

하며 또 한 번 미용실 문을 열었다. 그러자 소파에 앉아있던 원장으로 보이는 미용사가 일어나서 인사를 하더니, 전 미용실과 똑같은 인사말을 했다. 예약을 했느냐고.. 나는 당연히 안 했다고 했고, 원장 미용사는 

전 미용사와 똑같은 답을 해주었다. 나는 "아니 손님도 없는데 그냥 잘라주면 안 되나요?" 라고 말하고 싶은 욕구가 들끓었지만, 차마 말하지 못하고 간단한 질문만 하나 했다. "요즘 미용실은 다 예약을 해야 하나요?"

그러자 원장은 웃으며 말했다. "동네 이발소 제외하면 대부분 그렇죠." 




결국 머리를 자르지 못하고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오면서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에 피어올랐다. 언제부터 내가 다니던 미용실이 이발소로 변해버린 것일까. 나는 이제 20대 초반인데 벌써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일까,, 

나에게 있어서 위에서 말한 저런 미용실은 머리를 자르기 위함이 아닌, 파마, 매직 혹은 염색을 하러 가는 전문점 같은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그곳에서 커트를 하자니, 커트 비용만 15,000원이었다. 누군가는 내가 궁상맞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돈 없는 대학생인 나에겐 여러모로 아까운 돈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저런 미용실, 흔히 샵이라고 부르는 미용실은 동네에 몇 개 없어서 큰맘 먹고 좀 번화가(?)로 나가서 가는 곳이었는데 이젠 그런 곳들이 동네까지 다 들어왔다는 게 많이 어색하기도 했다. 그래도 길어만 가는 머리를 그냥 둘 순 없기에, 자주 미용실을 들락거리는 친구에게 연락을 해보았다. "야 전역하고 미용실을 가려는데 죄다 샵이고 예약하라는데 무슨 상황이야 이거?" 친구는 빵 터지며 말했다. "야 요즘 다 그래. 나 미용실 할인 쿠폰 있는데 그거 줄테니깐 좀 싸게 잘라" 




나는 집에 와서 왜 미용실이 이렇게 변해버린 것인지 인터넷에 검색해보았다. 이유는 정말 단순했다. 세상이 진화하는 것처럼, 미용실도 진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용실]은 머리를 '잘라주는 곳'이고 [헤어 살롱]은 머리를 '만들어 주는 곳' 이라고 한다. 즉 미용실에 가서 "적당히 정리해주세요" 혹은 "숱이랑 기장만 좀 잘라주세요" 이렇게 말하면 미용사는 그 말에 맞게 본인이 알아서 적당히 머리를 잘라준다. 하지만 [헤어 살롱]은 1부터 100까지 완벽히 고객의 취향에 맞게 머리를 만들어준다." 여기는 어떻게 잘라주시고, 여기는 이렇게, 여기는 건들지 마시고,," 이런 식으로 주문을 넣어서 고객이 원하는 머리를 만들어낸다. 물론 헤어 살롱에 가서 그냥 미용실처럼 주문을 넣어도 잘라는 주겠지만, 

그러면 15,000원 내고 헤어 살롱에서 자르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 난 어디서 자르지..?




미용실과 헤어 살롱의 양극화가 점 점 심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애매한 미용실은 사라지면서 남는 거라곤 정말 '이발소'만 남게 되거나 한 단계 진화해서 '헤어 살롱'으로 변한다. 그 '애매한 미용실'의 단골이었던 나는, 그리고 20대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집 앞 동네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도 모르는 나는, 

이 허탈한 기분을 애써 "군대 간 사이에 세상이 바뀌었네~"라고 나를 애써 위안하며 친구가 준 미용실 쿠폰을 가지고 내일 헤어 살롱을 갈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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