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겨우면서도 화려한 [롤리타]
"나는 교훈적인 소설은 읽지도 않고 쓰지도 않는다. [롤리타] 속에는 어떠한 도덕적 교훈도 없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롤리타 작가]
롤리타 콤플렉스의 어원이자, 소아 성애의 이름표와도 같은 책.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Lolita)].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참을 수 없는 역겨움이 느껴졌고 수많은 장면들이 내 머릿속에서 뭉게뭉게 떠오를 때마다 괜스레 주위 눈치를 보게 되었다. 마치 어떤 한 명의 소아 성애자가 자신의 범죄를 정당화하기 위한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는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내가 이 책을 쉬지 않고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역겨움 뒤에 숨어있는, 숨 막히게 아름다운 문장들 때문이었다.
롤리타. Lolita.Лолита.
롤리타. Lolita.Лолита.
지금까지 내가 읽은 책들 중에 제일 인상 깊었던 도입부를 고르라고 하면 나는,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아래쪽이 하얘졌다. - 설국 [가와타바 야스나리]
당연히 이 문장을 골랐다. 내가 설국을 읽을 때는 눈이 펑펑 오지도, 심지어 겨울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 책을 펼치고 저 문장을 만나자마자, 내 머릿속에는 한 겨울의 무거운 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느낀 바를 떠나서도 이 도입부는 일본 문학 도입부의 정수라고도 불리곤 한다.
하지만 내가 롤리타를 만나면서, 이 설국의 도입부는 인상 깊었던 두 번째 도입부로 밀려나게 되었다. 내가 설국 도입부를 보면서 느꼈던 감정이 '감탄'이었다면, 롤리타의 도입부를 보면서 느꼈던 감정은 '충격'이었다.
롤리타, 내 삶의 빛, 내 몸의 불이여. 나의 죄, 나의 영혼이여. 롤-리-타. 혀끝이 입천장을 따라 세 걸음 걷다가 세 걸음째에 앞니를 가볍게 건드린다. 롤. 리. 타. - 롤리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나는 이 도입부를 읽자마자 충격과 더불어 엄청난 궁금증이 생겼다. "왜 내 삶의 빛이며 내 몸의 불인 걸까?
그리고 왜 나의 죄이며, 나의 영혼인 걸까?" 이 궁금증의 해답을 찾기 위해 나는 책에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충격은 바로 뒷 문장이었다. "혀 끝이 입천장을 따라 세 걸음 걷다가 세 걸음째에 앞니를 가볍게 건드린다.
롤. 리 타." 우리 한번 '롤리타'라는 단어를 직접 입으로 굴려보자. 그럼 정말로 우리의 혀가 앞니를 정확히
세 번, 그것도 아주 가볍게 톡 톡 치게 된다. 나는 이런 표현을 도대체 어떻게 생각해낼 수 있는지 충격을 받았고 "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흔히 언어의 마술사로 불리는지" 어느 정도 알 것만 같았다.
[나보코프는 화려한 문장, 그리고 러시아인임에도 불구하고 영어로 이런 책을 썼다는 점에서 언어의 마술사라고 불리곤 한다]
롤리타의 내용을 아주 살짝만 짚고 넘어가 보자면, 다들 알다시피 '소아성애자의 이상 성욕을 그린 작품'이다.
그 외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책의 주인공 험버트(37)는 12살의 돌로레스를 만나게 되고 본능적으로, 그리고 역겨운 욕망에 이끌려 돌로레스에게 빠지게 된다. 여기서 '롤리타'라는 단어는 '돌로레스'를 부르는 험버트 애칭이다. 험버트는 자신의 롤리타와 더 가까워지기 위해 아버지가 없었던 돌로레스의 의붓아버지를 자처하게 되고 그렇게 돌로레스는 험버트의 걷잡을 수 없는 욕망의 세계로 납치되게 된다. 그리고 그 욕망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역겨운 장면들은 차마 글로 쓰기도 민망하기에, 궁금하다면 읽어보길 바란다.
그럼 저자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자신이 만든 인물인 '험버트'와 '돌로레스'를 어떻게 생각할까? 나보코프 또한 자신이 이 책을 쓰고 받을 엄청난 질타와 오해를 예견했는지, 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모두 정리해두었다. 그 첫 번째가 맨 위에 쓰인 "이 책에는 아무런 교훈도 없다"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험버트의 소아 성애에 대한 변명을 우회적으로 비꼬고 있는 책의 내용이며 (나보코프 또한 '험버트'라는 인물을 혐오한다고 하였다.) 세 번째는 '돌로레스'라는 이름의 탄생 비화이다. [돌로레스, Dolores]는 라틴어로 해석 시 [고통]이라는 뜻이다. 작가의 의도를 100%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 하지만, 적어도 저자가 정말로 소아 성애를 옹호, 혹은 자신의 내밀한 이면을 비추려고 이 작품을 썼다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롤리타]는 많은 사람들에 입방아에 오르긴 하지만, 정말로 완독 한 사람은 드문 책이다. 아마 '롤리타 콤플렉스' , '험버트 증후군' 같은 현상들을 심심찮게 들으면서 정말 [롤리타]라는 책이 가지는 의미가 '소아 성애' 밖에 없다고 지레 생각하는 듯싶다. 하지만 이 책은 누군가에겐 '금서'로 그리고 누군가에겐 '명작'으로
인식되는 만큼, 양극이 너무 심하기에 섣불리 읽어보라곤 하지 못할 것 같다. 이 책에 도전하려면 적어도
[롤리타]라는 책에 대한 거대한 호기심과 끊임없이 이어질 역겨움을 참아낼 수 있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고무 수영모, 진주알 같은 물방울들, 햇볕에 타서 반질반질한 피부, 광고모델처럼 즐거운 표정, 착 달라붙은 새틴 팬티, 주름을 넣은 브라 등등. 어린 연인이여! 그녀가 나의, 나의, 나의 연인이라는 사실에,,, - 수영장에 있는 롤리타를 바라보는 험버트
나는 이 책을 그 누구에도 추천해주지 않는다. 아마 나 또한 "나보코프처럼 오해를 받을 것만 같아서" 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으려는 어떠한 사람들에게 "이 책이 노벨 연구소 선정 책이자, 고전 반열에 오른 건 다 이유가 있어서입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나보코프가 만든 화려한 문장과 언어유희는 영어였기에, 한국어 번역본을 읽는 우리는 그 감흥을 많이 못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라고 한마디 해주고 싶다.
"도대체 그 애는 어디서 났소?"
"뭐라고 하셨죠?"
"날씨가 좋아지지 않았느냐고 했소."
"그런 것 같군요."
"꼬마 아가씨는 누구요?"
"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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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마시지, 아닐걸." - 롤리타(Loli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