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18일,
결혼하고 처음으로 아이도 남편도 없이 떠나는 여행이었다. 묘하게 홀가분하고 설렜다. 오늘은 행여 아이 손을 놓칠까 봐 불안해할 필요도, 언제 가냐는 칭얼거림에 일일이 응답할 필요도 없었다. 오롯이 나만 챙기면 되는 여행이라니!
친구를 만나 두꺼운 패딩을 의류보관 업체에 맡겼다. 세상에나 이렇게 편리할 수가! 겨울에 따뜻한 나라로 여행을 갈 때면 두꺼운 외투가 골칫거리였는데, 한진택배에서 대한항공 승객들의 외투로 무료로 보관해 주는 덕분에 몸도 비로소 가벼워졌다.
여행의 설렘은 면세점에서 선글라스 가격을 확인하는 순간 금이 가기 시작했다. 신혼여행 갈 때 산 선글라스가 전부라 이번 여행의 숨겨진 목적 중 하나는 바로 신상 선글라스였다. 그때 그 시절, 그러니까 아직 내가 젊고 빛나던 시절 30만 원대에 명품 선글라스를 살 수 있었다. 세월이 흘러, 택시비, 버스비, 라면값만 오른 게 아니었다. 명품 선글라스는 헉! 소리가 나게 올라있었다. 선글라스가 60만 원대라니…
님편에게 먼저 비보를 알렸다.
“오빠, 선글라스가 너무 비싸다. 어떡하지?”
‘어떡하지’라는 말은 비싸긴 하지만 나는 사고 싶다는 함축적인 표현이다. 남편은 찰떡같이 행간을 읽었다.
“괜찮아. 그냥 사.”
이때까지도 남편은 알지 못했다. 대체 그 선글라스가 비싸 봤자 얼마나 비싸다는 건지.
“고마워. 선글라스가 65만 원인데 할인받아서 55만 원에 샀어.”
남편은 그제야 현실을 깨달았다.
“아니, 55만 원이라고?”
“응. S는 65만 원에 샀대. 난 할인받아서 이 정도야.”
“몇 년간 선글라스는 이제 사지 말자. 망가뜨리지 말고 아껴 써.”
끝까지 쿨한 모습을 보이는 데 실패한 남편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내 옆에는 이번 여행을 함께 따라온 S가 말 그대로 벌레 씹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렇다. S는 자기가 산 선글라스가, 색상이 다른, 무려 10만 원이나 싸게 팔리는 걸 목격했다. 올해 3월부터 아이를 영유에 보내야 해서 빤스 사입을 돈도 없다던 S는 에스티로더 매장에서 20만 원어치를 샀다. 아이와 공항에 오면 의자를 찾아가 앉기가 바빠서 잊고 있었는데, 면세점은 이렇게 무서운 곳이었다.
7시간 넘는 비행 끝에 웅우라이 공항에 도착했다.
짐도 기내용으로 가져오고, 도착비자도 전자비자로 발급받고, 세관 신고도 이미 공항에서 했던 우리는 초고속으로 공항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내가 예약한 클룩 픽업 기사님은 우리가 그렇게 빠른 속도로 나올 줄 몰랐나 보다. 클룩 라운지에서 20여분 기다린 끝에 기사님을 만났다. 밤 10시가 넘어서 도착하는 일정이라 최대한 빨리 숙소에 가려고 완벽한 탈출 플랜을 계획해 두었건만 그렇게 구멍이 뚫릴 줄이야. 그래도 무사히 숙소에 왔으니 그걸로 됐다, 잠이나 자자. 계획은 틀어지라고 있는 게 계획이다. 계획한 대로 되는 건, 운명이거나 신의 계시쯤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