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클럽 이야기
육아휴직 1년차.
출산 후에도 2년이나 육아휴직을 했었는데
내 삶은 그 때와 사뭇 다르다.
일주일에 세 번 수영을 배우고 있고
아이가 다니는 동네 책방 사장님의 권유로 독서클럽에 들어가 한 달에 두 세권씩 책을 읽는다.
요즘은 사는 게 재밌다.
아이 하교 시간에 맞춰 학교 앞으로 걸어가다
바람에 흩날리는 벛꽃을 보며 생각했다.
‘나 왜 이렇게 행복하지?’
그런 순간들이 꽤 자주 찾아왔다.
늘 반복되는 일상의 어느 한 순간인데
스냅사진처럼 찰칵!
마음에 새겨지는 일이.
그럴때 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행복이
가슴 가득 퍼졌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은 ‘음악 소설집’이다.
음악을 주제로 한 다섯 작가의 단편 모음집이다.
첫 번째 작품부터 전율을 느꼈다.
김애란 작가의 ‘안녕이라 그랬어.’
이 글은 ‘Love Hurts’라는 음악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노래의 ’I am young.’이라는 가사를 주인공이 ’안녕‘이라고 듣게 된다. 그리고 ’안녕‘이라는 단어의 다양한 의미를 통해 인물들을 연결하고 그들의 사정과 감정을 섬세한 언어로 풀어놓는다. 너무 자주 쓰다보니 익숙해서 아무 생각 없이 튀어나오는 ‘안녕’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다채롭고 미묘할 줄이야.
잠시 후 노래가 끝나자 헌수는 “왠지 ‘가지 말라’는 청보다, ‘보고 싶다’는 말보다 ‘너한테 배웠어, 정말 많이 배웠어’라는 가사가 더 슬프게 다가온다”고 했다.
둘은 결국 노래 가사처럼, 그리고 ‘안녕’이라는 말 그대로 헤어진다. 어느 날 술에 취해 전화를 건 남자는 주인공이 ’안녕‘처럼 들린다고 말했을 때 ‘암 영’이라고 고쳐주지 말 걸 그랬다고 마음을 전한다.
보다 정확히는 네가 아닌 너의 부재로부터 무언가 배웠다고. 그런데 여전히 그게
뭔지 모르겠어서 지금은 그저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내 쪽에서 먼저 원곡 위에 ‘안녕’이란 한국어를 덧씌워 부른다고. 우리 삶에는 그렇게 틀린 방식으로 맞을 수 밖에 없는 순간이
있고 나는 아마 그걸 네게서 배운 것 같다고.
주인공이 ‘안녕’이라고 들었던 건 분명 잘 못 들은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노래는 물론 그들의 삶과도 맞닿아 있다. 이런 구성을 생각해 내는 작가의 능력에 감탄할 수밖에!
그래서 나는 오래전 들은 팝송에 한국어로 된 새 가사를 덧씌우듯 내가 듣지 못한 말을 스스로 중얼거렸다. 몇 해 전 헌수가 끄덕여준 대로 ‘안녕’이라고. 부디 평안하라고.
안녕의 마지막 의미, ‘평안하시라’ 혹은 ‘평안하시냐.’
반갑다는 의미인 동시에 잘가라는 뜻이 담긴 단어.
그리고 잘 가라는 인사 뒤에 따르붙는 평안하시라.
만남이 있으면 결국 헤어짐도 있다.
궁극적으로 그렇다.
짧은 이별일 수도 있고, 영원한 작별이 될 수 도 있다.
떠나는 사람이 남겨진 사람에게 바라는 건 어쩌면 단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그대의 평안.
내가 없는 그 곳에서도 평안하시길.
저 마지막 문장을 읽자마자 머릿 속에 떠오른 오래 된 노래가 하나 있다.
김광진의 ‘편지.’
책을 덮자 마자 가사를 찾아 보고
블루투스 스피커로 노래를 재생했다.
이 노래 어디에도 ‘평안‘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내 귀엔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의 평안을 걱정하고 바라는 노래로 들렸다.
담담하게 돌아서는 뒷모습이 그 어떤 절규보다 더 애절하다. 온 몸으로 제발 나를 붙잡아 달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문득 궁금해졌다.
이 편지는 과연 부쳐졌을까?
어쩐지 차마 건네지도 못하고 끝나버렸을 것만 같다.
노래가 흘러나오는 동안은 나 혼자 이 공간에 존재하는느낌이었다. 한자 문제 어떻게 푸냐고 자꾸 질문하는
아들이 옆에 있었음에도.
한참동안 글의 여운과 이 노래를 자주 듣던 그 시간 속에 빨려 들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