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15만 7천 원 벌었어. 대단하지?!“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아들이 나에게 다가왔다.
외할머니댁에 내려가 있던 2주 동안 아이가 벌어들인(?) 돈이다. 시골 동네라 혈연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친척은 물론 사돈의 팔촌까지 모여 살다 보니, 할머니들이 놀러 왔다가 쌈짓돈을 꺼내 아이에게 주신 모양이다.
“그건 네가 일을 해서 번 돈이 아니라 그냥 할머니들이 예쁘다고 주신거잖아.”
분명 10년 전쯤 내 MBTI는 ISFJ였음에도, 나이가 들수록 대문자 T 아니냐는 말을 종종 듣는다. 아이가 발끈해서 말했다.
“만 오천 원은 내가 번 거 맞거든! 저번에 깻잎 정리해서 오천 원 벌고, 엄마랑 상추 따서 삼천 원, 그리고 뭐더라….. 고구마 밭 가서 풀도 뽑았잖아. “
그러고 보니 이번 여름에 시골에 내려가서 아이에게 다양한 알바를 시키긴 했다. 직접 일을 해서 돈을 벌어봄으로써 노동과 돈의 소중한 가치를 깨달아보라는 큰 뜻으로. 중간에 부작용도 발생했다. 한 번 돈 맛을 보더니 또 아르바이트할 거 없냐고 하이에나처럼 어슬렁거렸다. 작은 심부름을 시키거나 함께 집안 청소를 하자고 할 때도 아르바이트비 얼마 줄 거냐고 대뜸 물었다. 이미 예상한 바였기 때문에 아이에게 차분하게 설명했다.
“기본적인 집안일은 가족 구성원으로서 당연히 함께 해야 하는 거야. 그리고 가족끼리 서로 부탁하고 도와주는 것도 알바에는 해당되지 않아. 특별히 일손이 필요한 경우에만 아르바이트비를 받고 일을 하는 거야.“
집안일을 시키는 것이 아이의 경제교육에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는 여러 경제교육 책에도 나와있다. 집안일을 하고 용돈을 보상으로 받을 경우, 노동의 가치와 돈의 개념을 배우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돈이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라 노력의 대가임을 직접 체험함으로써 부모가 제공하는 물질적 풍요를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집안일과 심부름을 모두 금전적 보상과 연결시키면 아이가 모든 일에 대가를 기대할 수 있다. 가족 구성원 간에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협동해서 해야 하는 일마저도 돈으로 환산하고 자기에게 보상이 따르지 않으면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경제관념을 심어주려다 집안일을 통해 배울 수 있는 배려와 협동, 책임감 같은 소중한 가치를 놓칠 수 있다. 그래서 선을 명확하게 그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금전적인 보상과 무관하게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잘 유지되기 위해서는 구성원 각자의 노력과 책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설명해주어야 한다. 대게 경제 교육 관련 서적에서 제시하는 기준은 다음과 같다.
예를 들어, 자신의 방 정리, 식사 후 그릇 치우기, 빨래 개기와 같은 일상적인 집안일은 가족 구성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책임으로 두고, 금전적 보상과는 연결하지 않는다.
반면, 일회성으로 시간이 많이 걸리거나 특별히 수고가 필요한 일(예: 대청소, 무거운 물건 옮기기, 마당 정리 등)에 대해서는 소정의 용돈이나 특별한 보상을 제공할 수 있다.
이렇게 기본적인 책임과 추가적인 수고를 구분해 주면, 아이는 “공동체 일원으로서의 의무”와 “노력에 대한 합리적 보상”을 동시에 배울 수 있다. 일상적인 집안일을 수행한 후에 보상 여부와 상관없이 아이의 수고를 말로 인정하고 칭찬해 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실제로 아이에게 함께 청소를 하자고 했을 때 처음에는 아르바이트비를 주지 않는다는 걸 알고 떨떠름해했지만, 물걸레로 바닥을 깨끗하게 닦는 모습을 보고 생각보다 너무 잘해서 놀랬다고 폭풍 칭찬을 해주었더니 뿌듯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내가 그렇게 잘했어? 난 그냥 색칠한다고 생각하고 한건데?!”
“맞아. 네가 색칠을 엄청 꼼꼼하게 잘하지. 학교에서 선생님께도 칭찬받았었다며. 그래서 이렇게 걸레질을 잘하는구나.”
“엄마는 내가 뭐 이런 것도 못할 줄 알았어?! 난 꼼꼼하게 잘하거든!“
사실 집안일은 경제교육 측면뿐만 아니라 아이의 장기적인 성장에 많은 도움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 아이의 연령에 맞게 아이가 해낼 수 있는 집안일을 부여하면, 아이는 일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성취감을 느낄 뿐만 아니라 가족의 중요한 일원이라는 소속감을 느낄 수 있다. 이는 자존감을 높여주고 스스로의 역할에 대한 책임을 강화시킨다. 또한, 부모가 서로 돕는 모습을 보여주고 아이도 거기에 동참하게 되면, 가정은 자연스럽게 협력과 존중이 살아 있는 작은 사회로 기능하게 된다. 이런 경험은 훗날 학교생활이나 또래 관계 속에서도 협동심과 배려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토록 유익한 집안일을 아이에게 안 시킬 이유가 없다! 지금이야 집안일 시켜 놓으면 내 손이 더 가서, 애가 시켜달라고 해도 핑계 대고 미루고 망설여지는 게 사실이지만, 한 번 제대로 가르쳐놓으면 내 일손을 줄여줄 거라 믿으며 오늘 다이소에서 어린이용 고무장갑을 구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