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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지각이야!

완벽한 엄마 vs. 실수투성이 엄마

by Jade

“엄마, 8시 30분이야.”


순간 토요일 아침이라 생각했다. 9시에 깨우기로 해놓고는 이 녀석이 왜 이렇게 일찍 깨우지?라는 생각이 스칠 때 아이가 다시 말했다.


“엄마, 지각하겠어.”


뭐? 지각? 황급히 눈을 뜨고 휴대폰 화면을 봤다.

8시 30분.

뇌세포를 있는 힘껏 쥐어짜서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떠올렸다. 이럴 수가, 화요일이 자나!

어제 알람 맞추는 걸 깜빡하고 잠이 들었나 보다.

하필 남편은 오늘 출장 간다고 새벽에 나가고 없었다.

나를 멀뚱멀뚱 바라보는 아이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순식간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급하게 냉장고에서 커스터드 과자 하나를 꺼내 아이에게 먹으라고 주고, 아이방으로 달려가 옷을 꺼냈다.

과자를 다 먹은 아이를 화장실로 데리고 가 초고속으로 양치와 세수를 끝냈다.

원래 아이 스스로 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아이는 아빠를 닮아 느려도 너무 느리다. 그래서 아침에 충분히 여유를 두고 깨우는데도, 느긋하게 여유 부리며 준비하다가 몇 분씩 지각해서 호되게 혼나곤 했다. 시간이 촉박하면 그에 맞게 빠르게 준비해야는데 우리 집에서는 언제나 나 혼자만 마음이 급하다. 내가 아빠의 유전자 탓을 하는 이유는 지난 10년간 남편에게 했던 잔소리를 고대로 아들에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고질병이다.


오늘은 늦잠을 잔 내 실수가 컸기 때문에 군말 없이 아들의 등교 준비를 처음부터 끝까지 해주었다. 그리고 정확하게 8시 38분에 집 현관문을 열고 나섰다. 휴, 지각은 면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아들에게 손가락 하트를 날렸다.

“오늘은 엄마가 늦잠 자서 큰일 날 뻔했다. 네가 8시 30분에 엄마 깨워서 진짜 다행이야. 준비도 빨리하고. 잘했어. “

아들은 손하트와 의기양양한 미소를 날리며 엘리베이터 안으로 사라졌다.

‘거봐, 엄마도 실수하잖아~’ 그런 의미 같기도 했고, ‘내 덕분에 오늘 지각 안 한 거야~’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것 같기도 했다.

하긴, 달팽이같이 느려터져서 지각한다고 구박을 받다가, 엄마가 늦잠을 자서 화들짝 놀란 모습을 보니 통쾌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게다가 우리 집 아들 녀석은 엄마가 실수하거나 뭘 잘 못하면 그렇게 좋아한다. 그걸 알기 때문에 내가 실수한 일이나 잘 못하는 것에 대해 아이에게 솔직하게 털어놓는 편이다. 경험상 그런 이야기를 하며 아이에게 조언을 해주었을 때 더 마음을 여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엄마도 불완전하고 실수하는 존재라는 걸 알기 때문에 자신에게도 좀 더 관대한 게 아닐까. 자신의 잘못에 대해 쉽게 눈감아 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어떤 실수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지적을 받았을 때 금세 털고 일어날 수 있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맘처럼 잘 되지 않을 때도 끈기 있게 해 나갈 수 있는 힘이 있다는 뜻이다.


한 달 전쯤, 아이가 수학 문제집에서 어려운 문제를 풀다가 잘 모르겠다며 눈물을 쏟았다. 한 번 설명해 주고 다시 혼자 힘으로 풀어보라고 문제를 백지에 다시 적어주었다. 또 안 풀리니까 아이는 다시 울상이 되었다. 얼굴이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채로 네 번째 만에 나에게 어떻게 풀었는지 설명을 할 수 있었다.

그 문제를 성공하자 갑자기 태도가 돌변한 아들 녀석이 이렇게 말했다.

“내가 뭐 이것도 못 풀 줄 알았어? 더 어려운 것도 풀 수 있어. 지금 한 번 내 봐.”

하…. 말이라도 못 하면.

몇 분 전까지 이해가 안 되는 걸 어떻게 하냐며 쌩 난리를 피우던 것이.

아이의 흥분을 가라앉히며 왜 같은 문제를 완벽하게 이해할 때까지 풀 게 했는지 운을 뗐다.

“엄마 어렸을 때 공부 잘한 거 알지? 암기도 잘하고 이해력도 좋아서 엄청 잘했어. “

“뭐야. 엄마는 좀 겸손함이 필요해.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몰라?“

“사실이니까. 근데 엄마는 수학은 별로 못했어. 왜 그런지 알아?”

엄마가 또 자기 자랑하나 싶어 베알이 꼻리던 찰나, 수학을 못했다고 하니까 갑자기 아이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엄마는 어려운 문제가 나오면 풀다가 바로 해답지를 봤어. 그러면 바로 이해가 되니까 내가 다 알고 있다고 착각을 한 거야. 그렇게 공부하니까 수학 실력이 안 늘더라고. 그래서 엄마처럼 하지 말라고 끝까지, 이해가 될 때까지 풀라고 한 거야.”

“나는 해답지 안 보고 다 풀 수 있거든. 내가 엄마보다 수학 잘하면 어떻게 할 거야?”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볼에다가 마구마구 뽀뽀를 해주지.”


종종 내가 자랑질을 좀 하면 바로 “엄마는 수학은 못하면서.”라고 깐족대는 게 꼴 보기 싫을 때도 있다. 하지만 부족한 모습을 드러내고 진솔하게 대화하는 게 아이에게 더 큰 자극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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