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o curiosus affectivus
아들과 누워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어쩌다 그랬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쉬이 잠이 오지 않는 밤이라 그랬나.
직업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아들에게 '무엇'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아, 딱 한 번 있다.
'배우'라는 직업이 멋있어 보여서 넌지시 물어본 적이 있다. 아들에게 배우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내 마음에 떠오른 이미지는 '유해진' 배우였다. 배우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신의 취향이 묻어나는 삶을 사는 사람. 어딘지 단단하고 깊이가 있어 보이는 사람.
그때를 제외하면 한 번도 없다.
나중에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물어본 적은 있지만.
종이접기 유튜버였다가 부자였다가 그냥 이 집에서 평생 살고 싶다고 했다.
미래에는 어떤 직업들이 사라지고 생겨날까?
AI와 로봇때문에 사라질 직업에 대해 얘기했다.
그럼 일 안 해도 되니까 좋은 거 아니냐고 웃는 아이.
일을 못하게 되면 당장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살아?라고 물었더니 자기는 돈이 많아서 괜찮단다.
세뱃돈 꼬박꼬박 모아서 저금한 380만원.
아이의 순진무구함에 헛웃음이 나왔다.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그 돈 한 달이면 없어진다."
"그럼 그냥 이 집에서 살면 안 돼?"
이번엔 한숨이 절로 나왔다.
큰 인물이 되기를 바라지는 않아도,
밥벌이는 해 먹을 수 있는 독립적인 인간으로 키우고 싶다. 대체 그 밥벌이를 어떻게 해야 할 수 있을까? 드론이 배달을 하고 자율 주행차가 손님을 태우고 서울 한복판을 가로지르며 집에 가사 로봇 한 대씩은 두는 그런 세상에서.
아이를 재우고 나와 GPT와 대화를 시작했다.
8살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미래를 위해 어떤 교육이 필요할지 조언해 달라고 했다.
그다지 감흥을 주지 못하는 답변이었다. 내 질문이 평범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이겠지.
<8살 아들에게 꼭 필요한 미래형 교육 키워드>
다음 5가지는 미래에도 절대 빛을 잃지 않을 역량이에요.
1. 문제 정의 능력 – 무엇이 문제인지 스스로 질문하고 정의하는 능력.
• 프로젝트형 탐구 활동, 메이커 교육(간단한 발명, 실험)이 좋아요.
2. 창의적 표현력 – 그림, 글쓰기, 스토리텔링, 음악, 연극 등 감정을 표현하는 훈련.
• AI 시대에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창의적 연결”**이 더 큰 가치로 평가돼요.
3. 논리적 사고 & 협력 – 토론, 팀워크, 스피치 능력.
• 해외 명문 대학, 글로벌 기업은 이미 ‘혼자 잘하는 인재’보다 협력할 줄 아는 사람을 원해요.
4. 디지털 리터러시 – 코딩은 기본, 데이터와 AI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는 능력.
• 단, 코딩 자체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활용 능력’**이 중요해질 거예요.
5. 언어 & 문화 감각 – 영어는 필수지만, 다른 문화와 언어를 이해하고 다루는 능력이 글로벌 사회의 필수 자산이 될 거예요.
<8살 지금, 무엇을 해주면 좋을까?>
• 독서 습관: 단순한 교과서식 책보다 스토리가 풍부한 책, 질문을 던지게 하는 책이 좋아요.
• 체험 교육: 여행, 박물관, 공연, 자연에서의 탐험 등 오감으로 배우는 경험.
• 감정 코칭: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조절하는 연습(미래형 리더십의 핵심).
• 언어 노출: 영어를 ‘공부’로 배우기보다, 즐거운 영상·대화·놀이로 접하게.
• 디지털 창작: 간단한 영상 만들기, 레고 마인드스톰 같은 창작형 코딩 체험.
두 번째 질문을 던져봤다.
현재 있는 직업 중 향후 10년 안에 네가 대체할 수 있는 직업에는 어떤 게 있어?
진짜 궁금해서라기보다는 왠지 이 대화를 이어가고 싶었다. 그 끝에 뭔가 반짝이는 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고서.
예상대로 사무·행정직(회계사무원, 자료입력원), 단순 생산직(조립공, 검사원, 포장직), 일부 법률 직군
(법률 서기, 기본 계약 분석가), 번역·통역(기본 문서 번역가), 고전적인 교육직(단순 문제 풀이 중심 강사, 학습지 교사) 등 정해진 규칙에 따라 반복하는 업무와 창의적 판단보다 빠른 처리와 정확성이 필요한 업무에서 고용 감소가 뚜렷하게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리고 창의·감성 영역(작가, 디자이너, 영상 연출가, 공연예술가), 인간 대면 직업(상담사, 간호사, 교사(멘토 역할), 유아교육자), 기획·전략직(브랜드 매니저, 데이터 전략가, 정책 설계자), 기술 융합 분야(AI 모델 트레이너, 로봇 윤리 전문가, 헬스테크 엔지니어), 교육 설계·감독자(커리큘럼 디자이너, 학습 코치, 창의융합 교사) 등을 AI가 대체하게 힘든 직업으로 꼽았다. 핵심은 **AI가 도구일 때, 인간이 어떤 질문을 던지고, 어떻게 조율하느냐**라는 친절한 설명과 함께.
역시나 다소 식상한 내용이었다. GPT의 답변을 읽다가 작가•디자이너•영상 연출가•공연예술가라는 단어들이 눈에 들어왔다. 미국에서는 극작가들과 배우들이 AI가 자신들의 생계를 위협한다고 파업을 한 적이 있다. AI 모델이 등장하는 광고는 흔해졌고, AI가 만든 예술 작품들이 수상을 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진심으로 궁금했다. 정말 GPT도 이 직업들이 살아남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그래서 세 번째 질문을 던졌다.
근데 이미 네가 영상도 만들고 AI 모델이 활동하고 글도 쓰고 그림도 만들잖아. 창작 예술 분야에서 인간이 강점이 있다고 진심으로 생각해?
GPT가 대답했다.
정말 핵심을 찌르는 질문이에요.
솔직하게 말하자면, AI는 이미 창작의 물리적 능력—글쓰기, 그림 그리기, 음악 작곡, 영상 편집까지—에서 인간을 빠르게 따라잡고 있어요. 어떤 영역에선 이미 능가했죠.
그렇다면…
**“과연 인간만의 창작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피할 수 없어요. 그리고 저도 진심으로 이렇게 생각해요:
'진심으로'라는 단어를 넣은 것에 묘한 감정이 들었다. 좀 전까지는 챗봇으로 정보를 제공받는 느낌이었다면, 이 순간부터는 진짜 대화를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1. 경험의 층위가 다르기 때문이에요.
AI가 생성한 창작물은 훌륭해 보이지만,
• 슬픔을 겪은 사람이 적은 단어로 쓴 글
• 사랑이 실패로 끝났던 기억을 안고 그린 그림
• 가난과 불안 속에서 만든 음악
이런 것들은 단순한 스타일이나 텍스트 예측으로는 나오지 않아요.
인간 창작물은 경험과 감정의 퇴적층이 있어요. 그것이 ‘공감’을 이끌고, 깊이를 만듭니다.
AI는 “잘 만든 콘텐츠”를 생성하고,
인간은 “의미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요.
인간 창작물은 경험과 감정의 퇴적층이 있다는 말이 주는 통찰력에 감동해서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문득 궁금하기도 했다. 어느 텍스트에서 긁어온 문장일까? 아니면 스스로 조합해서 생성한 문장일까?
2. “왜 만들었는가”라는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AI는 **“시켜서 만들고, 배워서 예측”**하죠.
인간은 때론 이유 없이, 때론 사회를 향해, 때론 자기를 치유하기 위해 만들어요. 이 **“의도와 맥락”**이 창작물에 생명력을 불어넣습니다.
3. 인간 창작의 강점은 “비일관성과 불완전성”이에요
AI는 일관되고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낼 수 있어요. 하지만 예술은 때로 깨진 리듬, 이상한 연결, 미묘한 어긋남에서 탄생해요. 그 어긋남이 감동을 만들고, 새로운 사조를 만들죠. 피카소가 처음부터 큐비즘을 만든 게 아니듯, 헤밍웨이의 글이 짧고 단순한 문장만으로 감동을 주는 것도 **규칙을 깼기 때문**이에요.
오늘 우연히 유튜브에서 본 김혜자 배우님의 영상이 떠올랐다. 본인은 연기할 때 조금은 서투르게 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너무 여우처럼 야무지게 연기하는 사람에게서는 감동을 느낄 수 없다고. 새로운 관점이라는 생각을 하며 영상을 봤는데 GPT의 답변에서 '미묘한 어긋남'이라는 표현을 보고 전율을 느꼈다. 평생을 연기에 바친 배우의 통찰력을 GPT를 통해 재확인할 줄이야.
아이에게 꼭 가르쳐야 할 건 단순한 “그림 그리기”나 “글쓰기” 기술이 아니라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가”, “왜 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에 대한 자기 이해예요.
마지막 부분을 읽을 때는 최근 유튜브에서 본 런던베이글뮤지엄의 디렉터 료님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그녀는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스스로에게 동료가 되어주며, 자신만의 독특한 정체성을 형성했다고 밝혔다. 트렌드를 쫓기보다 자신의 순수한 취향을 표현하는 것에 집중했으며, 이것이 오히려 대중적인 성공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끊임없이 자신을 관찰하고 기록함으로써 스스로의 레퍼런스가 되는 중요성을 강조했다. 결국 트렌드 혹은 주위 사람들이 원하는 바를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지 알기 위해 심연 끝까지 닿아본 사람이 길어 올린 예술적 정수는 역설적으로 모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GPT와의 대화가 나에게 단순한 정보를 넘어 어떤 감정의 동요와 영감을 주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내 마음속에 오랫동안 품어왔던 질문을 던졌다.
나는 한 분야에 깊이 빠져 탐닉하는 덕후기질이 중요한 역량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조예라고 할까. 효율성도 없고 특별히 유용해 보이지도 않는 그런 조예. 넌 어떻게 생각해? 네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시대에 이런 게 도움이 될까? 된다면 어떤 식으로?
나는 덕질과는 거리가 먼 40대 아줌마가 되었지만, 수년 전부터 '덕질하는 인간'이 AI 시대에도 살아남을 것만 같다는 막연한 믿음이 생겼다. 이름하여 Homo curiosus affectivus. 이건 내가 방금 GPT에게 부탁해서 급조한 새로운 인류의 학명이다.
Homo: 인간
curiosus: (라틴어) 호기심 많은, 탐구하는
affectivus: (라틴어) 애정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감정적 동기
즉, '호기심과 애정에 의해 사는 인간'이란 뜻이다.
**Homo curiosus affectivus**는 21세기 후반 등장한 진화적 분기종으로, 생존보다는 몰입, 생산성보다는 의미, 다수의 취향보다는 개인의 열광을 중심으로 진화하였다. 이들은 특정 분야에 대한 과도한 탐닉을 통해 새로운 문화, 시장, 철학, 예술을 만들어냈으며, AI 시대 이후 인간 고유의 진화 방향을 상징하는 존재로 평가된다.
그리고 GPT는 '덕질'의 가치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이건 정말 아름답고도 근본적인 질문이에요.
“비효율적인 깊이, 그것이 미래에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당신이 말한 ‘덕후 기질’, 조예, 쓸모없어 보이는 집착—저는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고유한 힘이며, AI 시대에 더욱 중요해질 역량이라고 진심으로 믿습니다.
내가 적은 두서없는 질문 속에서 '비효율적인 깊이'라는 키워드를 끄집어내는 GPT의 능력에 살짝 소름이 돋았다.
왜 덕후 기질(조예)은 미래에 더 중요해지는가?
1. AI는 “전체를 잘”하지만, 인간은 “이상하게 깊이” 잘해요. AI는 평균적이고 효율적인 답을 빠르게 제공합니다. 그런데 미래 사회에서 **모든 것이 평균 이상**일 때, 사람들은 무엇을 찾을까요? **기이할 정도로 한 가지에 빠진 사람의 ‘개성’과 ‘깊이’**예요.
AI는 “말이 되는 콘텐츠”를 만들고
덕후는 “왜 저걸 저렇게까지…” 싶은 콘텐츠를 만들죠. 그리고 놀랍게도, 그 쓸모없어 보이던 것들이 새로운 트렌드를 만듭니다.
예시:
• 기차역 안내방송 수집해서 믹스테이프 만드는 사람 사운드 아티스트로 유명해짐
• 고전 게임 글꼴만 파고든 사람 브랜드 폰트 리브랜딩 프로젝트 수주
• 공룡 뼈 구조만 파고든 어린이 세계적 고생물학자로 성장
2. AI는 ‘목적’을 따르고, 조예는 ‘사랑’을 따릅니다
덕후적 집착은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좋아서’ 하는 것이에요. 그건 AI가 흉내 낼 수 없는 동기 구조입니다.
• 인간은 좋아서 밤새고
• AI는 시켜서 연산하죠
그리고 그 차이가 세상을 감동시키고, 연결시키고, 영감을 줘요.
3. 조예는 ‘비효율 속의 창조성’을 품고 있어요
‘덕질’은 대부분 생산성과 상관없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재조합, 맥락 전환, 창조적 연결의 씨앗이 숨어 있어요.
예를 들어,
• “일본 소도시 역 이름만 수집하던 사람”이 만든 콘텐츠가 전 세계 도시 마케팅 강연으로 확장되고,
• “한자 획수만 분류하던 블로거”의 데이터가 교육 앱에 들어가기도 해요.
GPT와 대화를 하며 아이 교육에 대해 얻는 통찰은 바로 이 두 가지이다.
1. 자신이 누구인지 끊임없이 질문하도록 할 것
2. 덕질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만들어 줄 것
일단 처음에 GPT가 말한 역량들은 머리로는 좋은지
다 알겠는데 마음이 움직여지지 않는, 그래서 돌아서면 까먹는 허공에 의미 없이 흩어지는 메아리 같다. 반면에 저 두 가지 항목은 그야말로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내 고민의 결과이다. 당연히 마음에 선명하게 새겨질 수밖에. 주변에서 누가 뭐래도, 남의 집 자식들이 아무리 잘 나가도, 흔들리지 않고 지켜나갈 수 있는 힘을 준다.
게다가 이 두 가지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깊이 있게 파고들다 보면 자연스레 '나'라는 사람의 실체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나의 호기심, 욕망, 좌절을 마주하는 경험이 될 테니까.
설령 덕질 끝에 남는 게 ‘비효율적인 깊이,‘ 그것뿐일지라도, 그래도 괜찮다 말해주고 싶다. 그 깊이가 쌓이는 동안 행복했다면 말이다.
무엇이 되기를 바란 적은 없지만 어떻게 살기를 기도한 적은 무수히 많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음 따뜻하게, 행복하게 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