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나 이제 5급 4과정!!”
출장 갔다가 일주일만에 집에 들어온 아빠를 보자마자 아들이 외친 말이다.
이젠 별로 놀랍지도 않다.
하루 중 가장 많이 하는 얘기가 ‘한자’니까.
“엄마, OO는 벌써 4급 3과정이래. 진짜 대단하지 않아?”
“엄마, 나 오늘은 80페이지까지 꼭 풀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고, 팔 아프다. 그래도 3주 차까지 다 했어!”
“엄마, 맺을 결 쓸 수 있어?”
엄마 한자 잘 모른다고 수십 번을 말해도 이건 무슨 한자냐고 들이민다.
외할아버지만 만났다 하면 다짜고짜 한자 대결을 신청한다.
이미 아빠와 외할머니는 한 수 아래로 보고 있다.
나는 15년도 더 전에 한자 3급 시험을 한 달 만에 벼락치기로 공부해서 합격한 전적이 있다. 그래서 나를 우러러본다. 15년 전이란 말이다, 아들아! 3급 합격을 확인한 순간부터 썰물에 모래성이 무너지듯 한자는 내 머릿속에서 급속히 빠져나갔다. 딱 7급까지다. 아들이 6급 책으로 넘어간 후부턴 이게 그거 같고 그게 저거 같다. 아무리 다 까먹었어도 3급을 땄다는 자체로 아들에게는 선망을 대상이다.
자랑스럽게 5급 4과정을 외치는 아들의 공식 급수는 고작 7급이다. 올해 3월부터 방과 후 한자반에 들어가 공부하기 시작해서 지난 6월에 7급 인증 시험에 합격했다. 방과 후 한자반 선생님의 계획서에 따르면 여름 방학 전에 6급 1과정 교재를 끝내는 걸로 되어 있었다. 2학기에 6급 나머지 과정을 마무리하며 11월쯤 6급 시험에 응시하면 되는, 완벽한 계획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몇몇 아이들 사이에 경쟁이 불붙은 것이다. 매주 누가 몇 급 몇 과정 교재를 들어갔는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중 아이의 땡땡이 메이트도 있다. 그 친구가 선두로 치고 나가고 우리 집 아들과 다른 친구 하나가 맹렬하게 뒤따르고 있다. 일주일에 문제집을 한 권씩 풀어내야 하는 그들만의 레이스가 시작됐다. 5급 문제집을 풀었다고 5급이 되는 건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다. 진도를 천천히 나가라고 말하는 순간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제발 다음 문제집 사달라고 세상 간절한 표정으로 애원한다. 문제집을 다 풀고 나면 단어시험에 통과해야 다음 문제집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규칙을 정했다. 언뜻 봐도 헷갈리고 뜻도 어려운 한자어를 술술 외우는 걸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한편으로는 괘씸할 때도 있다.
‘can, eat, has, we’ 이런 기본적인 영단어는 외우기 어렵다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하기 싫은 티를 팍팍 내는 녀석이 말도 어려운 ’요긴할 요, 뭍 륙, 하여금 령, 어질 량‘은 군말 없이 척척 외우니 말이다. 아이 말에 따르면 영어는 ’멋‘이 없단다. 그래서 재미가 없다고.
’공부를 재미로 하냐?‘라고 꿀밤을 한 대 먹이고 싶었지만 사실 나도 그랬다. 내가 살던 군 소재지에서 단 두 명이 윤선생 영어교실을 했는 데 그중 한 명이 나였다. 할 일 없이 마루에 누워 흘러가는 구름만 쳐다보던 어린 산골 소녀는 ’영어‘라는 신문물을 접하고 흠뻑 빠져들었다. 그때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나. 매일 카세트테이프를 두 번 세 번 들었다. 아침마다 걸려오는 선생님의 전화를 놓칠세라 번개보다 빠른 속도로 전화를 받았다. 영어 발음이 예뻤다. 이른 아침 이슬방울이 매끈한 토란 잎 위를 또르르 굴러가는 것 같았다. 알파벳 모양도 앙증맞고 예뻤다. 내가 누굴 탓하리!
한자 공부에 심취해 있는 아들을 보면 대게는 대견한 마음이 든다. 요즘은 TV도 거부하고 틈만 나면 한자를 쓴다. 자유 시간이라고 놀라고 해도 한자를 쓴다. 아침에 먼저 깬 날에는 슬며시 거실로 나가 한자를 쓴다. 사실 4월까지만 해도 한자에 이 정도로 진심이진 않았다. 3D펜, 수영, 줄넘기 등 아들이 좋아하는 다른 활동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좋아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런데 6월 한자 인증 시험을 보고 난 후 갑자기 불이 붙었다. 7급 시험을 100점으로 통과한 것이다. 이 사건이 아이에게 도화선이 된 게 분명하다. 자기가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 게 틀림없다. 아이의 머릿속에 ’ 나는 한자를 잘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생겨났다. 그 이후 아이가 “나 한자 잘하잖아.”라는 말을 자주 했던 걸 보면 알 수 있다.
‘몰입’으로 유명한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몰입은 쉽지는 않지만 아주 버겁지도 않은 과제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실력을 온전히 쏟아부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한 번의 성공 경험이 아이에게는 몰입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준 건 아니었을까.
거기에 더불어 아이에게는 넘쳐흐르는 시간이 있었다. 아이의 한자 라이벌이자 동경의 대상이 된 땡땡이 메이트 역시 시간이 많다. 빈둥거리다가 심심하면 이것저것 해보기도 하고 그러다가 꽂히는 게 있으면 제대로 각 잡고 해 볼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
동갑내기 딸을 키우는 내 친구는 자기 딸이 주어진 일은 성실하게 다 해내긴 하는 데 자기가 좋아서 하는 게 없어서 걱정이라고 했다. 사실 아들에게 숙제하라고 잔소리를 해대야 하는 엄마 입장에서 자기 할 일 똑 부러지게 하는 딸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하지만 그 친구의 고민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몰입해서 즐거움과 성취를 얻는 ’덕후‘가 추구미인 사람이지 않은가. 친구 말을 들으며 부러움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내 아들에 대한 자부심도 있었다. 엄마의 추구미에 걸맞게 덕후 기질이 농후한 아들 녀석. 물론 그 반작용으로 엄마가 시키는 공부는 재미가 없다며 하루가 멀다 하고 화를 돋우지만 말이다. 사실 아이들의 성향에 따라 한 가지에 푹 빠지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나는 뭔가에 꽂히면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었다. 위대한 클럽 H.O.T였으며 봉사활동에 빠져 고등학교 2년 동안 200시간 넘게 봉사활동을 다녔다. 전라북도의 봉사활동 대회 수상식을 휩쓸었다. 영어로 꿈을 꾸는 경지에 이를 때까지 영어에 심취해 있던 적도 있었다. 반면에 최측근인 남편은 한 번도 그랬던 적이 없다고 했다. 그저 학교 끝나면 학원에 가는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했다. 특별히 뭔가를 엄청 좋아해 본 적도 없고 대단히 하고 싶어 한 것도 없었다고. 성향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굳이 하나를 더 꼽자면 시간의 차이도 있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도시로 유학을 가서 큰아버지 댁에 살았다. 농사꾼이었던 아버지는 군 소재지에서도 차 타고 10여분 더 들어가는 산골마을로 윤선생 영어교실 선생님을 불러드릴만큼 내 학업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물리적 거리 때문에 사사건건 통제하는 게 불가능했다. 아버지에게 거짓말하고 봉사활동도 다니고 클럽 H.O.T활동도 했다. 이 모든 걸 비밀리에 유지하기 위해선 아버지 보시기에 만족스러운 성적표는 필수였다. 심지어 그 당시에 교회 활동에도 미쳐서 봉사활동 가는 시간 빼고는 주말 내내 교회에 살았다. 고1부터 대학생 때까지는 그야말로 늘 어딘가에 미쳐있었다. 열정의 불꽃이 쉼 없이 활활 타올랐다(그때 다 써버려서 요즘 이 모양인가 싶기도 함). 남편은 상황이 달랐다. 수재 중에 수재인 형이 있었고 기대가 한껏 높아진 부모님의 감시는 삼엄했다. 대치동으로 학원을 다니는 서울 도련님이었다. 전주 바닥을 휩쓸고 다녔던 나와 달리 남편에겐 자유 시간이 없었다. 공부한다고 방에 틀어박혀 딴짓을 했을 수는 있지만 나처럼 대범하게 하고 싶은 걸 찾아다니지는 못했다. 다시 아이들 얘기로 돌아와서, 우리 아들에겐 시간이 아주 많다. 마음껏 빈둥거리다 보면 심심해진다. 그럼 찾기 시작한다. 뭐 재밌는 거 없을까? 하고. 그러다가 훅 빠져드는 게 하나씩 생긴다. 처음엔 그게 종이 접기였다가 지금은 한자가 됐다. 반면에 친구 딸은 몹시 바쁘다. 이 시기에 바쁜 아이들은 공통적으로 영어학원에 다닌다. 그리고 영어 학원에는 과제가 많다. 구몬 학습지도 4과목을 하고 있어서 매일 풀어야 할 과제가 꽤 된다. 거기다 예체능 학원 한 두 개 다니면 사실 빈둥거릴 시간이 없다. 그 말은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생각해 보고 시도해 볼 시간이 부족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친구의 고민을 듣고 목구멍까지 넘어온 말을 다시 꿀꺽 삼켰다.
”OO가 시간이 없어서 그래. 학원 줄이고 놀려봐. 그럼 자기가 좋아서 하는 게 생길걸?“
오지랖이다. 결국 부모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아이를 키운다. 그렇게 단도직입적인 조언을 할 자격이 나에게 있을까? 에둘러 초등학교 교사인 친구 얘기를 들려줬다. 작년 반 아이들과 올해 반 아이들이 정말 다르다는 이야기를 했다. 작년 아이들은 개성이 강하고 좋아하는 게 한 두씩은 있었다. 수업 시간에 아이들이 집중도 잘하고 다채로운 생각을 말해서 수업이 즐거웠다고 했다. 문제는 방과 후에 아이들이 서로 다투는 일이 잦아 그 일을 해결하는 데 에너지가 많이 들었다는 것. 그 해 아이들은 공교롭게도 절반 이상이 학원을 많이 다니지 않은 아이들이었다. 올해는 반대로 대부분의 아이들이 하교하자마자 학원에 가기 바쁘다고 했다. 쉬는 시간에는 숙제를 하느라 정신이 없는 아이들이었다. 덕분에(?) 학교에서 다투는 일도 없었다. 담임 입장에서 편하긴 하지만 수업은 재미가 없다고 했다. 모두 학원에서 배운 내용이다 보니 아이들이 수업 수업시간에 적극적이지도 않고 아이들이 내놓는 답도 대부분 비슷했으니까. 나는 그 친구 얘기를 들으며 학원을 최소한으로 보내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사람‘ 그게 내 추구미니까 어쩌면 당연한 결론이지 않을까. 친구는 아마도 학원을 줄이지 못할 것이다. 내가 가던 길에서 이탈하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그 길이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는 길이라면 더욱 그렇다. 나도 강하게 말할 수는 없었다. 학원을 안 보낸다고 아이가 갑자기 ’엄마, 나 좋아하는 것을 찾았어요!‘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는 일이고,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추구미가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