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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자라는 놀이터

by Jade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 내가 퇴근을 하고 집에 도착하는 오후 6시가 돼서야 하원을 했다. 친구들이 놀이터에서 놀기로 했다며 유치원 뒤편 놀이터 방향으로 내 손을 잡아끌었다. 친구들 집에 다 가고 없을 거라는 내 말이 들리지도 않는 듯 아이는 저만치 놀이터로 달려가고 있었다. 아이가 말한 친구들이 있던 적은 별로 없었다. 대게 텅 비어있거나 잘 모르는 아이들이 몇 명 있을 뿐이었다. 십여분 정도 놀다가 아쉬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주말에 친구들과 만나서 놀고 싶다거나 누구를 집에 초대하고 싶다고 말한 적도 없었다. 집에서 하루 종일 종이 접기만 해도 행복한 아이라, 정적인 아이라고 생각했다.


초등학생이 되고 아이의 새로운 면이 드러났다.

여름방학이 채 일주일도 남지 않은 7월 중순, 아이 친구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그 집 아들과 우리 아들이 땡볕 속에서 놀이터를 배회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시간이면, 멤버십 비용을 내고 이용하는 학교 정문 앞 상가 책방에 가 있어야 할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말도 없이 땡땡이를 쳤다는 사실에 기가 막혔다. 당장 집으로 불러들여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을 냈다. 엄마와의 약속을 어긴 죄, 말도 없이 위험하게 돌아다닌 죄를 엄히 물었다. 7년 인생 중 처음으로 눈물 젖은 반성문도 썼다. 또다시 이런 일이 생길 경우 한 달간 친구들과 밖에서 놀지 못한다는 것을 못 박았다. 다음 날 아이가 신나게 웃으며 전한 소식에 따르면, 우리 아들의 첫 땡땡이 메이트 역시 집에서 제대로 혼쭐이 났으며 똑같은 일을 저지를 경우 한 달간 축구 금지라는 벌을 받기로 했단다. 그 친구에 비하면 자기가 낫다며 헤벌쭉 웃는 아이를 보자 갑자기 나도 축구 금지령은 물론 TV금지령까지 내리고 싶은 충동이 솟구쳤다. 그런데 또 한편으론 같이 땡땡이를 칠 친구가 있어서 다행인 건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날 이후 아들은 처음으로 집에 친구들을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그 땡땡이 메이트와 같은 반 친구 한 명. 셋 다 같은 반이었고, 방과 후 한자반에서 누가 누가 더 한자덕후인지 경쟁이 붙어 쉬는 시간에도 함께 한자 문제집을 푸는 그런 아이들이었다. 처음으로 친구를 초대하는 거라 내가 더 떨려서 전날 잠도 설쳤다. 독박 투어에서 재밌게 봤던 게임 아이템도 준비하고 간식거리도 사놓았다. 땡땡이 사건 이후 내적 친밀감을 형성한 그 집 엄마가 아들 셋은 쉽지 않을 거라며 미리 위로를 건넸다. 그리고 그날 나는 지옥을 맛보았다. 외동아들을 키우는 삶은 나름 우아한 것이었구나! 말 안 듣는 녀석들과 그중 제일 말 안 듣는 내 아들 녀석의 대환장 파티 속에 겨우 정신줄을 부여잡고 오후 6시가 되자마자 놀이터로 데리고 나가 방생을 했다. 아이들은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처럼 신나게 뛰어다녔다. 좁은 아파트 따위가 품을 수 있는 녀석들이 아니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혼자 피식 웃었다. 그리고 가로등 켜진 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오며 아이에게 단단히 일러두었다. 우리 집에 다시는 친구를 초대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친구를 집에 초대하는 게 불가능해져서 그랬는지, 2학기 개학과 동시에 아들이 저녁 약속을 잡아오기 시작했다. 멤버는 늘 똑같았다. 함께 대환장 파티를 벌이던 그 주역들이다. 저녁 7시 또는 저녁 7시 30분, 시간은 각자의 스케줄에 따라 조금씩 달라졌지만 장소는 언제나 아파트 단지 중앙에 있는 놀이터였다. 하교 전 교문 앞에서 약속 시간을 잡는 초1 꼬맹이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며 웃음이 났다. 귀여운 것들, 다 컸네! 물론 여전히 무더운 8월의 저녁 공기에 몸이 끈적끈적해지는 것을 인내하는 건 내 몫이었다. 아이들은 물에 빠진 생쥐처럼 땀에 흠뻑 젖어도 개의치 않았다. 뛰고 또 뛰었다. 자기들끼리 뛰는 게 지루해지면 자전거 무리를 따라 뛰었다. 그마저도 심심해지면 시소 양쪽에 여러 명씩 매달려 어느 쪽이 더 많이 내려가는지 무게 실험을 했다. 그러다가 또 어느새 미끄럼틀 위로 우르르 올라가서 술래잡기를 하며 싸워댔다. 네가 술래다, 내가 왜 술래냐, 쟤도 술래 안 했다, 아니다 네가 맞다, 그럴 거면 빠져라 고성이 오갔다. 저러다 싸우는 거 아닌가 싶어 몸을 움찔하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놀이가 시작됐다. 그러다가 또 싸우고 다시 놀기를 반복했다. 혼돈 속에 질서를 찾아갔다. 우리 아들 녀석 목소리도 심심치 않게 들렸다. 주로 “내가 왜 술래야. 나 아니야.”라고 외치는 쪽이었다. 아이의 이의가 받아들여지기도 했지만 대부분 가차 없이 묵살됐다. 몇 번 더 목소리를 높여가며 항의를 해보기도 했지만 결국엔 군말 없이 다수의 룰에 굴복했다. 남자아이들의 세계는 거칠지만 뒤끝이 없었다. 싸울 듯이 따지고 들다가도 금세 잊고 함께 달렸다. 왜 달리는지는 모르면서 함께 뛰며 웃었다. 아들 녀석은 3주 연속 일주일에 두세 번은 놀이터로 나갔다. 정신없이 뛰어가는 아들 뒤를 터벅터벅 따라가며 생각했다. 놀이터라는 공간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귀중한 배움의 장소인지.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사회적 동물로 살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자질을 이곳에서 훈련한다. 무리에 끼어드는 법, 내 의견을 관철시키는 법, 아니다 싶으면 꼬리를 내리고 일보 후퇴하는 법, 상대의 잘못을 따지는 법, 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법 등등.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앞의 상황은 미처 보지 못해서 잘 모르지만, A라는 아이가 B에게 사과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B라는 아이가 A에게 이렇게 소리쳤다.

“미안하다고 하면 다야? 다냐고!“

A는 아무 말 못 하고 미끄럼틀에서 나와 혼자 어디론가 걸어갔다. A의 할아버지가 무슨 일이냐고 물으며 뒤따라갔지만 A는 아무 말이 없었다. 울음을 참는 듯했다. 얼마 후 A가 돌아오긴 했지만, 선뜻 그 무리에 끼어서 놀자 못하고 주변을 맴돌다 들어갔다. 아이들은 잘못을 하면 “미안해.”라고 사과해야 한다고 배운다. 그러면 상대방은 “괜찮아.”라고 포용해 주는 게 기본 설정값이다. 그렇기에, “미안하다면 다야?”라는 말이 돌아올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고 각본대로 움직여주질 않는다. 그래서 여기저기 부딪혀보며 훈련이 필요하다. 다행히 남자아이들의 세계는 단순해서, A는 며칠 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무리에 섞여 뛰어다녔다. 함께 어울리며 상처 주고 상처받고 그 과정에서 좌절도 하고 다시 일어서기도 하는 법을 배운다. 이런 것들이야말로 어린이들의 가장 중요한 과업은 아닐까, 학원으로만 돌리다가 정작 중요한 것들을 배울 기회를 놓치는 건 아닐까, 후텁지근한 여름밤 매미 소리보다 더 시끄러운 아이들의 고함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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