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5일, 우리 가족은 겨울 휴가를 맞아 푸켓에 도착했다.
그런데 푸켓에 온 지 하루 만에 나는 심한 배탈이 났다. 새벽 네 시쯤, 속이 더부룩해지더니 구토와 설사, 복통과 오한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창자가 쏟아질 듯 토해내고 나서야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병원 문이 열리는 시간에 맞춰 혼자 택시를 타고 갔다. 수액을 맞고 약을 한 봉지 가득 받아 나왔다. 비용은 무려 30만 원. 이게 맞아? 싶지만 여행자보험 하나 믿고 카드를 긁었다.
그날 오후에는 피피섬으로 들어가는 배를 타야 했다. 병원에서 수액을 맞고 나니 메스꺼움은 조금 가라앉았고, 배에 오르자 거의 실신하듯 잠들어 두 시간 동안은 큰 탈 없이 버틸 수 있었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오늘의 첫 끼를 먹었다. 매운 것, 기름진 것, 해산물까지—피해야 할 음식 투성이였다. 결국 가장 기본적인 달걀볶음밥을 시켜 한 주먹만큼 먹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전날 저녁 푸짐하게 먹었던 팟타이, 무삥, 쌀국수보다 훨씬 맛있었다.
혼자 팟타이를 맛있게 먹는 남편은 하나도 부럽지 않았다. 다만 옆에서 잘 튀긴 치킨과 밥을 먹는 아들은 조금 부러웠다.
“다 나으면 똠얌꿍 한 번 도전해보고 싶다.”
내 말에 남편은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고수도 못 먹고 레몬그라스 냄새도 싫어하는 사람이 가능하겠냐고. 그래서 ‘도전’이라고 한 거 아니냐고 이 양반아! 남편의 비웃음에도 꿋꿋하게 하고 싶은 말을 이어나갔다.
“그거 알아? 내 여행 추구미는 세계 테마 기행이야.”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현지의 음식과 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즐기는 여행자에 가깝다.
그 말을 듣던 남편이 폭주기관차처럼 팩폭을 날렸다.
“포기해. 너 향신료 때문에 현지 음식도 잘 못 먹고, 금방 배탈 나고, 숙소 더러우면 싫어하잖아. 너는 따지는 게 많아서 안 돼.”
빈정이 상했지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특히 음식에 관해서는 거의 맞는 말이었다. 발리에서도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식욕을 잃었고, 일주일 만에 탈이 났다. 모두가 극찬하는 나시고랭도 내게는 너무 달고 짜기만 했다. 이번 태국도 다르지 않았다. 여행자들의 소울푸드라는 팟타이가 입에 맞지 않는 정도면 말 다 한 셈이다. 게다가 이번엔 하루 만에 탈이 났다.
숙소에 관해서는 조금 억울한 면도 있다.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이 되면서 기준이 자연스럽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혼자 여행하던 시절의 나는 늘 도미토리를 이용했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다니다 보니 침대 크기나 위생에 대한 후기를 더 꼼꼼히 보게 됐다. 아이와 단둘이 여행할 때는 오히려 호텔을 더 선호하게 됐다. 아이가 나보다 현지 음식을 잘 먹어 굳이 요리를 할 필요도 없었고, 위급한 상황에서 도움을 받기 쉬울 것 같아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배낭여행에 대한 로망이 있다. 청춘이었을 때도, 중년이 된 지금도, 어쩌면 더 나이가 들어서도.
10년 전, 친구와 서른 살 기념으로 베트남·캄보디아·태국 국경을 육로로 넘는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공항에서 서로를 발견하고 우리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작은 키에 등치만 한 배낭을 멘 나와, 신발만 여섯 켤레가 들어 있는 대형 캐리어를 끌고 온 그녀. 같은 ‘동남아 여행’이라는 말이 나에게는 배낭여행을, 그녀에게는 휴양지를 의미하고 있었다.
그 차이 때문에 초반엔 꽤 많이 싸웠지만, 지금도 깔깔 웃으며 꺼낼 수 있는 헤프닝도 생겼다. 호치민에서 무이네로 이동하기 위해 밤에 출발하는 슬리핑버스를 탔을 때였다. 전 세계에서 온 배낭들 사이로 그녀의 캐리어가 유독 눈에 띄었다. 새벽에 도착해 숙소로 이동해야 했는데, 잠이 덜 깬 친구가 우리를 따라오던 오토바이 호객꾼과 흥정을 하려 했다. 나는 친구와 그녀의 대형 캐리어를 번갈아 보며 소리쳤다.
“미쳤어? 그걸 들고 오토바이를 어떻게 타!”
친구를 잡아끌고 호객꾼들을 뿌리치며 불이 켜진 가게 앞으로 갔다. 택시가 우연히 왔던 건지, 내가 가게 사장님께 부탁한 건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는 결국 무사히 숙소에 도착했다. 그녀의 캐리어도 함께.
그 시절, 친구가 여섯 켤레의 신발을 갈아 신는 동안 나는 샌들 하나로 버텼고, 배낭을 멘 등은 늘 땀에 젖어 있었다. 그럼에도 그런 내 모습이 꽤 마음에 들었다. ‘배낭여행을 하는 나’라는 이미지에 스스로 취해 있었던 것 같다. 자유, 청춘, 낭만 같은 단어들을 떠올리며 정신승리를 하고 있었을지도.
지금도 나는 여전히 향신료가 강한 음식을 잘 먹지 못하고, 나이까지 들어 육체적으로도 예전 같지 않다. 배낭 대신 캐리어를 끌고, 도미토리 대신 호텔을 찾는다. 이런 내가 세계 테마 기행이나 배낭여행을 꿈꾸는 것이 사치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저 젊었던 시절에 대한 향수때문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어쩌면 다시 이전의 상태로는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 얼마 전에 읽은 하루키의 책에서 본 표현처럼 ‘세월이란 앞으로만 나아가는 톱니바퀴‘같은 것이니까.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다시 젊어지지 않아도,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세월의 방향은 정해져 있어도
그 안에서 어떤 속도로, 어떤 방식으로 걷는지는
아직 내가 정할 수 있는 일일 테니까.
배낭이 아니라 캐리어를 끌고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