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커뮤니티를 보다 보면 '한국인이 별로 없는 리조트'를 추천해달라는 글을 종종 마주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낯선 타국에서 동포를 만나면 "안녕하세요?"라는 짧은 인사만으로도 반가움이 앞서기 마련인데, 왜 우리는 때때로 같은 한국인을 피해 다니고 싶어 할까? 게다가 우리는 환란의 IMF 시절에도 금을 모아 위기를 극복했던, 유구한 역사를 지닌 단일민족 아니었던가!
리조트 선베드에 누워 느긋하게 책을 읽다 보니, 문득 이 역설적인 심리에 대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마침 책을 덮기에 기막힌 타이밍이자 꽤 근사한 핑곗거리다. 서둘러 메모장을 열고 머릿속에 떠오른 단상들을 적어 내려갔다.
지금 이곳에서 한국인은 우리뿐이다. 주변은 러시아, 인도, 영국, 이탈리아 등 각지에서 휴가를 즐기러 온 이들로 북적 인다. 머리카락과 눈동자 색은 물론 체형도 제각각이지만, 뜨거운 햇볕에 구릿빛으로 그을린 피부만큼은 인종을 초월한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이방인들 사이에 섞여 있는 동안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는 사실이다. 갖가지 언어가 수영장의 물소리와 뒤섞여 완벽한 '백색 소음'이 되어주었다. 덕분에 오랜만에 책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물속에서 자지러지게 웃는 소리도, 옆 선베드에서 들려오는 대화 소리도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다.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는 그저 환경의 일부일 뿐이었다.
만약 주변에 한국인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의도치 않아도 귀에 꽂히는 한국어 문장에 자꾸만 마음을 빼앗겼을 것이다. 정신을 다잡고 다시 활자를 쫓아보지만, 이미 몇 분째 같은 페이지에 머물며 눈동자만 굴리고 있는 내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
어쩌면 애당초 비키니를 입고 누워있는 것 자체가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가시방석이었을지도 모른다. 래시가드로 무장한 사람들 사이에서 비키니라니. 래시가드의 실용성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나는 비키니가 주는 특유의 휴양지 분위기를 사랑한다. 비록 군데군데 살이 튀어나오고 햇볕에 빨갛게 익어 볼품없을지라도 말이다. 이는 순전히 개인의 취향일 뿐, 래시가드를 선택한 이들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다만 '래시가드족' 사이에 끼어있는 '비키니족'으로서 느끼는 미묘한 이질감이 마음의 불편함을 자극했을 뿐이다. 거꾸로 모두가 비키니를 입은 곳에서 혼자 래쉬가드를 입어 어색했다는 누군가의 후기처럼, 우리는 집단 속에서 튀지 않아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압박을 느끼곤 하니까.
모든 상황을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나는 이 두 가지 이유—언어적 고요함과 시선으로부터의 자유—때문에 다양한 인종이 섞인 휴양지를 선호하게 된다.
타인의 시선과 익숙한 언어로부터 멀어질 때, 비로소 나의 휴식은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