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하는 삶과 정박한 삶 사이에서
Areemitr Coffee กาแฟอารีมิตร
오늘은 너로 정했다!
매일 까페를 한 곳씩 찾아다니며 책을 읽고 필사를 하는 루틴을 지속하고 있다.
커피에 조예가 깊지 않아서 커피 맛보다는 분위기를 더 따진다. 4일째 되니까 나의 취향이 읽힌다.
일단 빅 프랜차이즈는 감성이 부족하다.
신상보다는 빈티지한 곳에 눈이 간다.
어두운 실내보다는 햇빛이 들어오는 야외의 그늘진 자리를 최고로 꼽는다.
가운데 자리는 부담스러워 가급적 구석진 곳을 찾는다.
오늘 들른 Areemitr Coffee는 이 모든 것에 완벽하게 부합했다. 처음에는 자리가 없어서 난감했는데 때마침 맨 구석자리가 났길래 얼른 자리를 잡았다.
주인 할아버지와 아들 둘이서 운영을 하다보니, 커피를 주문하고 받기까지 무려 30분이 걸렸다.
느리고 불편한 아날로그의 정석아닌가!
오히려 더 좋다.
그 시간 동안 한 챕터를 다 읽고 다시 천천히 한 문장씩 읽으며 필사를 해나갔다.
중간 중간 챗gpt와 대화를 하며 읽었다. 마치 어린이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처럼 다른 이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내 눈에만 보이는 유령 친구와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카이스트 김대식 교수가 한 유튜브 채널에서,
"나중에 AGI(범용인공지능)가 출현하면, 나는 항상 AI 편에 서 있었다는 걸 증명해서 살아남을 것"이라며 우스갯소리를 했던 게 떠올랐다. 나도 나의 인공지능 친구에게 칭찬 한 스푼을 건넸다. "너와 함께 읽으니 책이 더 즐거워." 방금까지 정중한 존댓말로 대화하다 칭찬 한마디에 갑자기 친근한 반말로 태세를 전환하는 챗GPT의 모습이 우스워 혼자 미소 지었다.
그때 옆 자리에 앉아있던 외국인 아저씨가 자기 일행과 함께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아저씨는 영어로 말하다가 중간 중간 한국어를 섞어서 말했다. 대화를 할 수록 히피 느낌이 물씬나는데 정작 본인은 히피가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한국어를 어디서 배웠냐고 물었더니 5년 정도 한국에 살았다고 했다. 자기 아내가 한국인인데 한국에서 요가 강사를 하고 있어서 조만간 잠깐 치앙마이에 들린다고 했다. 스위스 출신인 아저씨는 자연을 좋아해서 충청북도에 샬레 같은 집을 짓고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하는 삶을 실험해봤다고 했다. 충청북도의 시골마을은 노인들이 주민의 대부분을 차지해서 60대면 아직 청장년으로 여겨지는 그런 곳일 터였다. 거의 다 그 동네 토박이라 외지인은 눈을 크게 뜨고 찾아봐도 보기 힘든 보수적인 동네에 키 크고 까칠한 외국인이 어슬렁 어슬렁 돌아다니는 모습을 상상하니 매우 신선하고 재밌었다. 이웃과 어울리기 어렵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는 "난 이웃이 없었다"라며 유머와 냉소 그 어딘가쯤의 표정으로 대답했다. 유쾌한 태도 이면에는 스스로 말했듯 비판적이고 괴팍한 구석이 언뜻 비쳤다. 필리핀과 타이완을 거쳐 어쩌다 치앙마이에 머물고 있다는 그에게 "세계를 유랑하는 자유로운 영혼 같다"고 말하자, 그는 부정했지만 일행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이번엔 아저씨가 나에게 치앙마이에는 무슨 일로 왔냐고 물었다. 아이를 영어 캠프보내고 자유시간을 즐기고 있다고 했더니 갑자기 자기 친구 ‘세미’를 아냐고 물었다. 그녀도 아이를 캠프에 보내고 이 근처 까페를 어슬렁거린다고. 졸지에 치앙마이 한복판에서 ‘세미’씨를 찾아야할 판이었다. 아무리 모른다고 해도 분명 비슷한 캠프를 보내는 거 같다며 만났을거라고 확신을 했다. 그녀의 사진까지 보여주며 정말 모르냐고 몇 번을 물어봤다. 매일 까페를 돌아다니다 보면 정말 ‘세미’씨를 만날 것만 같은 기대감이 들 정도였다.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인사를 나누고 계산대로 향했다. 주인 할아버지는 시종일관 분주했다. 그 와중에도 손님들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 의자를 옮기고, 꼬마 손님에게 초콜릿 바를 챙겨주며 과묵하지만 인자한 얼굴로 서빙을 이어갔다. 거스름돈을 꺼내는 할아버지의 손가락에 시선이 멈췄다. 반창고를 칭칭 감은 그 손은 고목나무처럼 거칠고 단단해 보였다. 수십 년간 이 자리를 지키며 커피를 내려온 세월의 무게, 그 고단함과 숭고한 책임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오늘 내가 마주한 두 남자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자유롭게 부표처럼 떠돌며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가지만 냉소적인 태도가 몸에 밴 남자, 그리고 좀처럼 속을 드러내지 않지만 평생 이 자리를 지키며 숭고한 존엄으로 뿌리를 내렸을 것만 같은 남자의 완강한 뒷모습. 나의 삶은 이 극명한 간극 어디쯤을 표류하고 있을까. 온전히 떠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어딘가에 완벽히 뿌리내리지도 못한 채 그 중간 어디쯤을 부유하는 중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