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de Jan 26. 2024

엄마의 글쓰기

내가 글쓰기를 다시 시작한 건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아이가 낮잠을 자는 사이, 후다닥 설거지를 마치고

무얼 할까 잠시 고민했다. TV를 볼까? 샤워를 할까? 책을 읽을까?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를 집어 들었다. 정치를 그만두고 작가로 돌아온 이야기였다. 갑자기 끄적끄적 뭔가 적어야겠다는 욕망이 일었다. 중학교 때 꿈이 라디오 방송작가였다. 국어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글쓰기 대회에 나가기도 했다. 영국에 1년 나가있을 때 다시 글을 썼다. 외로움이 동력이었다. 그 와중에 영어실력을 늘리고 싶어 영어로 쓰느라 깊은 감정과 사고를 표현하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한국에 가지고 온 거 같긴 한데, 찾아도 오글거려서 읽지는 못할 것 같다. 직장을 갖고 일기를 써보려고 해마다 다이어리를 샀지만 늘 2월까지만 끄적끄적할 뿐이었다. 그래도 미련을 못 버리고 매년 샀다.


아이가 태어나고 처음엔 사진과 동영상만을 남겼다. 산모 수첩에 겨우 몇 자 남길 뿐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카카오스토리에서 지인의 글을 다시 보게 되었다. 몇 년째 육아를 하며 글을 쓰고 있는 게 신기했다.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전쟁 같은 하루인데 왜 그렇게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 걸까? 그녀의 글을 쭉 읽어보면서 어떤 결연함이 느껴졌다. 일도 사회생활도 중단하고 홀로 아이를 키우는 이 시간이 덧없이 흘러가 잊히는 것을 막고자 하는 의지.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런 마음으로 글쓰기를 시작했다. ‘스펙 한 줄 되지 않는’ 육아를 하며 나름의 의미를 찾고 싶었다. 아이가 하루하루 커가는 걸 지켜보는 것은 말할 수 없는 행복이지만 때론 나의 사회적 자아가 점점 위축되고 사라져 가는 듯한 불안함을 느낄 때도 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아쉬움이었다. 아이가 크고 나면 아이도 나도 이 시간을 자세히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아이가 처음 옹알이를 하고, 공을 가지고 놀고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모습, 우리와 나눈 행복한 교감들, 그 순간을 경험하는 내 감정과 생각들. 이 소중한 순간을 영원히 붙잡아 둘 수는 없지만 기록으로 남길 수 있지 않을까. 이 시간이 우리의 인생에서도 중요한 부분이겠지만 무엇보다 아이의 인생에서 소중한 첫 페이지일 것이다. 자신의 유년시절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내 유년시절 역시 조각조각 단편적인 기억들이 엉성하게 얽혀있다. 아이를 키우며 나의 유년시절이 더욱 궁금해졌지만, 기록은 물론이고 사진도 제대로 남아있지 않다. 유일한 목격자인 우리 부모님은 먹고사는 게 바빠 하나뿐인 딸의 얼굴을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못하셨다고 하니 세세한 기억이 남아있을 리 만무하다. 불안과 결핍이 원동력이 되었던 걸까? 아이가 태어난 지 6년째 되는 지금까지도 나는 글을 쓴다. 아이가 하는 모든 것들이 신기하고 새롭던 시절에는 매일매일 아이의 행동과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감동을 주었는지, 때론 얼마나 우리를 불안에 떨게 만들었는지에 대해 구구절절이 기록했다. 불행이 나를 찾아와 행여 아이 곁을 아주 일찍 떠나야 하는 순간이 올까 봐, 괜스레 불안해지면 아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을 적기도 했다. 엄마의 빈자리를 이 글들이 조금이라도 채워줄 수 있기를 바라며…. 요즘은 한 달에 서너 번씩 글을 쓴다. 아이와 함께 한 여행이나 주말에 있었던 일들, 아이가 해준 감동적인 말과 행동들, 아이가 좋아하는 것들, 아이가 성장한 모습들 이 모든 게 나의 글감이 된다. 나의 모든 글들은 아이와 우리의 삶의 기록이자, 우리를 영원히 연결해 주는 다리이다. 언젠가는 홀로 서야 할 아이에게 남겨주는 가장 값진 유산이다. 아이는 힘들 때마다 남겨진 글들을 통해 위로받을 것이다. 그 속에는 우리가 아이에게 준 사랑과 믿음, 그리고 단단한 뿌리가 있으므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