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de Jan 25. 2024

아이가 아프면 벌어지는 일

맞벌이 부부로 육아를 하며 제일 힘든 순간은 바로 아이가 아플 때이다. 아직도 품에 쏙 들어오는 작고 연약한 아이가 밤새 고열로 힘들어하고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기침을 하면 너무 안쓰럽고 속이 상한다.

밤새 아이 곁을 지키며 아이의 이마를 확인하느라 선잠을 자고 아이의 그치지 않는 기침 소리에 놀라 잠이 깨고 우리의 몸도 천근만근 지쳐간다.

하지만 이런 건 사실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정말 우리를 괴롭게 하는 건 따로 있다.

아이가 유치원을 갈 수 없다는 사실.

열이 40도가 넘는 아이를 앞에 두고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내일 아이를 어디다 맡기지?라는 냉혹한 현실이다. 친정 부모님이든 시부모님이든 좋으니 누가 와서 도와줬으며 좋겠지만 시부모님은 연로하시고 친정 부모님은 너무 멀리 있는 데다 아직 경제활동을 하고 계셔서 단숨에 달려올 수가 없다. 다 알면서도 친정아버지에게 제발 와주면 안되냐고 전화를 했다가 퇴짜를 맞을 때면 속상하고 서러운 마음에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시부모님께는 도와달란 말조차 하지 못하는 남편이 괜스레 미워지기도 한다. 결국 남편과 나, 둘만의 눈치싸움이 시작된다. 누가 연차를 쓰고 아이를 볼 것인지.


"내일 연차 쓸 수 있어?"

"나도 연차 쓰기 힘들어."


뒤에 이어지는 침묵 속에 서로에 대한 오해와 서운한 감정이 쌓여간다.

남편은 나보다 상대적으로 연차를 쓰는 게 자유롭다. 코로나 기간에는 재택근무도 자주 했다. 그래서 으레 이런 상황에선 남편이 집에서 아이를 돌보았다. 작년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남편이 팀장이 되면서 들어가야 할 회의도 많고 출장도 많아졌다.

내일 연차를 쓰지 못하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기에 연차를 쓸 수 있는지  묻는 나의 질문을, 남편은 '연차 쓸 수 있으면서 왜 안 쓰는 거야?'라는 비난으로 받아들였다.

자기도 이것저것 눈치 볼 일이 많아 정말 연차를 쓰기 힘들어서 했던 남편의 말과 그 뒤에 이어진 침묵을, 나는 해결해 보려고 노력도 하지 않고 회피한다고 받아들였다. 사실은 남편이 연차를 쓰지 않아서 화가 난 게 아니라, 그럼 어떻게 할 것인지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의견을 내지 않아 마음이 상했다. 그래서 나 역시 침묵을 택했다.  하지만 마냥 손 놓고 침묵할 수만은 없었다. 어쨌든 내일 당장 누군가에게는 아이를 맡겨야 했다. 어쩔 수 없이 가장 근처에 사는 막내 이모에게 연락했더니 아이를 데려오면 사촌 동생들이 집에 있으니까 봐줄 수 있단다. 그 사이 딸이 안쓰러웠는지, 손주가 안쓰러웠는지, 친정 엄마가 외숙모에게도 연락을 해서 사촌 동생이 내일 시간이 되는지 물어보셨단다. 결국 일산에 사는 사촌 동생이 우리 집에 와서 아이를 봐주기로 했다. 일련의 상황들이 몇 번 반복되면서, 아이가 열이 나면 아이에 대한 걱정보다는 내일 당장 어떻게 할지 해결해는 게 급선무가 되었다. 그리고 점점, 소극적으로 보이는 남편에 대한 불만이 쌓여갔다.

남편이 출장을 가고 없을 때였다. 유치원에서 아이가 열이 난다고 연락이 왔다. 그 상황에서 내가 제일 먼저 한 말은,


 "죄송하지만 제가 지금 가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요."


이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자괴감이 몰려왔다. 아이가 아프다는 데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이 이런 거라니.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속상해할 시간도 없었다. 시간을 빼고 조퇴를 할 수 있을지, 당장 내일은 어떻게 할지 알아봐야 했다. 하루는 정말 시간을 뺄 수가 없어 아이를 잠시 직장에 데려오기도 했다. 밤에는 아이 열이 40도를 넘었기 때문에 맘 편히 잘 수가 없었다. 행여 응급실을 가야 하진 않을까 지켜보다 잠들었다. 그러다 화들짝 놀라 선잠에서 깨면 아이 이마부터 만져보았다. 어떻게 며칠이 흘렀는지 기억나지 않을 만큼 마음 졸이고 정신이 없었다. 그 이후, 아이가 아파서 유치원에 갈 수 없는 상황이 생기면 나는 극도의 스트레스 상태가 되었다. 눈앞이 깜깜해질 정도로. 이런 내 눈에 남편은, 나만큼 절박해 보이지 않았다.


"나 연차 못 써."

"나 병원 못 데려가는데?"


그럼 시댁 식구들 누구에게라도 납작 엎드려 부탁이라도 해보던가. 결국 언제나 내가 친정 식구들에게 사정을 해야만 했다. 어쩌면 그래서 내 말투에 가시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서운함이 종종 아이 앞에서 터져 나왔다.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며칠 전에도 결국 아이 앞에서 우린 이 문제로 언성을 높였다.


"좀 더 적극적으로 알아볼 수 없어?"

"너는 연차 안 쓰면서 왜 자꾸 나한테 그래. 진짜 쓰기 힘들다고."

"연차 얘기가 아니잖아. 그럼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봐야지."


결국 또 사촌 동생에게 또 부탁을 하기로 했다.

다음 날에는 병원 문제로 또 언성이 높아졌다.


"연휴 다음이라 접수 빨리 마감돼. 아침에 10시 전에는 가서 접수해야 해."

"점심시간 이후에 가도 돼."

"아니라니까. 금요일에도 11시에 마감됐잖아."


남편은, 내가 내 주장만 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만약 남편 말대로 점심시간 이후에 가서 접수가 마감된다면?

그 이후에 어떻게 할지 방법이 있기는 한 건가?

억울했다. 아이가 아플 때마다 누구보다 고생한 건 난데.... 언제나 사정하고 절박하게 방법을 찾아낸 게 누군데 저 인간은 저렇게 큰소리를 치는 거지?

혼자 방에 들어와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자니 눈물이 쏟아졌다.

얼마 뒤 아이가 자기 그림을 보여준다며 엄마를 불렀다. 내가 대답도 미동도 없자, 내 등 뒤에서 나를 껴안고 한참을 있다가 아이는 잠이 들었다. 아이의 따뜻한 온기 속에서도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속도 없이 자꾸 쏟아졌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우린 계속해서 똑같은 일로 서로 오해하고 상처를 준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의 글쓰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