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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Jan 30. 2024

엄마는 왜 ‘장애인화장실’에 갈까

아이와 산책을 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


“엄마! 나 응아 마려워!”


좀 참아보라고 했으나 1초 뒤에 나올 거 같다는 아이의 말에 서둘러 수목원 방문자센터로 들어갔다. 아직 관람객 몇 명이 앉아있었다. 얼른 제일 입구 쪽에 있는 ‘장애인 화장실’로 들어갔다. 몇 분이 흐르고,


“저기요, 이제 곧 마감할 시간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빨리 하라고 아이를 재촉하고 있는데 몇 분 후 다시 들려오는 목소리,


“6시라 이제 마감해야 해요.”

“네~ 나갈게요.”


아이에게 지금 당장 끊지 않으면 안 된다는 눈빛을 발사하며

“아직이야?”라고 물었다. 아이는 움찔하더니 다 됐다는 신호를 보냈다. 서둘러 뒤처리를 하고, 옷매무새를 다듬어줄 여유도 없이 바로 패딩을 입히고 짐을 챙겨 나왔다. 마감인데 우리 때문에 기다리실까 봐 급하게 나가려는데, 그 직원이 나를 불러 세웠다.


“일반인이 장애인 화장실을 이용하면 안돼요.”


정중하고 정제된 문장, 하지만 적나라한 비난이 담긴 표정이 나를 향해 날아왔다. 아이가 옆에 있어 더 당혹스러웠다. 알겠다며 서둘러 방문자센터를 빠져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계속 그 직원의 말이 웽웽 마음속에 맴돌았다. 체한 듯, 마음 어딘가에 걸려 도무지 빠져나가질 알았다. 그 한마디 말과 표정으로 나는 공중도덕도 모르는 개념 없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변명을 하자면, 나는 혼자 외출할 때 절대 장애인화장실을 이용하지 않는다. 아이와 단둘이 외출해서 아이가 화장실을 가야 하는 경우에만 장애인화장실을 이용한다. 아이를 데리고 장애인화장실을 가는 게 정말 노골적인 비난을 받을 정도로 잘못한 일인가? 분명 시간이 다 되었다고 알려줄 때 우리의 대화를 들었다면, 아니 적어도 유치원생 남자아이와 함께 나오는 모습을 보았다면, 아이 때문에 장애인화장실을 이용한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엄마와 성별이 다른 남자아이를 데리고 들어갈 수 있는 화장실이 있다면, 나는 그 비난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 그런 안락하고 평화로운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많은 경우에는 여자화장실을 이용한다. 남자아이를 데리고 여자화장실에 데려가는 건 합당한 일인가? 내겐 장애인 화장실만큼이나 여자화장실을 데려가는 게 불편하고 신경 쓰인다. 여자화장실에 가면 아이에게 제발 입 다물고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할 정도로 시선이 불편하다. 그렇다고 여자인 내가 아들에게 맞춰 남자화장실을 갈 수도 없지 않은가? 아들을 데리고 나간 엄마도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데 딸을 데리고 혼자 외출하는 아빠는 오죽할까 싶다. 딸을 데리고 남자화장실에 가는 게 맞는 걸까 아니면 장애인화장실에 가는 게 맞는 걸까? 둘 다 옳지 않다고 한다면 대체 어디로 가야 하나?


게다가 여자화장실이든 남자화장실이든 백화점 같은 곳이 아닌 이상 아이를 데리고 들어가기에 너무 좁다. 아이와 외출하면 짐도 많은 데다 겨울에는 두꺼운 패딩까지 입어서 화장실 안이 꽉 찬다. 볼일을 마친 아이를 챙겨 그 좁은 문을 통과해 나오려면 고난도 기술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도대체 왜 아이를 데리고 화장실에 가야 하는 부모와 아이에 대한 배려는 하나도 없는 거지? 당장 지자체에 민원을 제기하고 싶어 사이트에 접속했는데 자꾸 오류메시지만 뜨고 글을 작성할 수가 없었다. 우리도 세금을 적지 않게 내고 있고 이 아이들은 자라서 얼굴도 모르는 수십 명의 노인들을 그들의 세금으로 부양할 텐데 이 정도 건의는 타당하지 않은가! 적어도 공공기관에서는 가족화장실 정도는 마련했으면 한다. 그게 현실적으로 어려우면 장애인화장실을 아이를 동반한 가족이 함께 쓸 수 있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암묵적으로 눈치 보며 쓰는 것 말고(그러다가 이렇게 몰염치한 사람으로 몰려 지탄받을 수 있으므로) 장애인표시 옆에 아이표시도 해주면 어떨까? 작은 변화가, 육아에 지치고 사람들 눈치 보느라 피곤한 부모의 마음을 조금은 다독여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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