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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빛나는

by Jade

책방에서 열리는 4월 슬로우리딩 수업이 끝났다.

3회에 걸쳐 책 한 권을 돌아가며 소리 내어 읽고 생각을 나누는 저학년 독서 프로그램이다.

다른 학원비는 아껴도 책방에는 지갑이 술술 열린다.

나도 책방지기 선생님의 은근한 칭찬과 설득에 넘어가 성인 독서 클럽에 들어갔다.

수업을 마치고 나온 아들 손에 활동지가 들려있었다.

활동지 위쪽 여백에 선생님의 짧은 피드백이 보였다.


‘반짝이는 생각이 멋진 oo이, 칭찬합니다.’


오늘 아침 비도 오는데,

꾸물 꾸물 대다 늦게 등교하는 아들에게

잔소리를 우수수수 쏟아부었다.

혼자 우산 쓰고 등교해 보겠다는 아들을 아파트 현관 앞에서 배웅했다.

“왜 여기까지 나왔어?”

아들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수영강습이 있는 날에는 수영장 가서 씻을 거라

세수도 안 한 후줄근한 차림으로 아들을 배웅한다.

나름 창피함을 아는 인간이라

집 현관문 앞에서 배웅하고 싶은데

아들이 아파트 현관까지 같이 가자며 늘 내 팔을 잡아끌어 엘리베이터에 태웠다. 오늘은 보아하니 엄마의 심기가 불편해 보여 아무 말도 못 했는데, 엄마가 알아서 아파트 현관 앞까지 따라 나오니 이상했던 모양이다.


“너 우산 잘 펴는지 보려고. 물 웅덩이 조심해.”


좀 전까지 잔소리 융단 폭격을 받았던 건 까마득하게 잊은 듯, 엄마를 돌아보며 신난 표정으로 인사하고 총총총 걸어갔다.


한 시간 뒤 추적추적 빗소리를 들으며

수영장으로 걸어가는데

나를 돌아보며 인사하던 아이의 밝은 표정과

어제 선생님이 아이 활동지에 남긴 피드백이 떠올랐다.

그 뒤로 계속 ‘반짝반짝 빛나는’이라는 말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졸업할 때 아인슈타인상을 받았던 게 떠올랐다. 그때도 비슷한 문구가 있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생각 주머니를 가졌다고 했던가? 유치원 때 받은 상장에도 역시 같은 내용이 들어있었다.

시골 마을 회관에 가면 할머니들이 아들을 둘러싸고 앉아 박장대소를 하곤 했다.

저 작은 주둥이에서 못하는 말이 없다며 예뻐 죽겠다고 난리였다.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내 친구가 아들 말을 듣고 웃음이 터졌다. 조사와 부사를 적재적소에 활용하여 말을 맛깔스럽게 한다고 말이다.

새삼스레 아들이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 같이 느껴졌다.

젓가락질 똑바로 못하냐고, 양치질 제대로 안 하냐고, 어제 배운 영어 단어 하나 기억 못 하냐고, 옷도 하나 제대로 못 입냐고 잔소리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아이가 너무 못나 보일 때가 있다. 결점 투성이에 뭐 하나 똑바로 할 줄 모르는 아이가 된다.

자꾸 내가 아이를 그런 식으로 대하고,

그런 식으로 바라보면,

아이는 어느 순간 자신을 부족한 사람이라고,

뭘 해도 안 되는 사람이라고 여기며 자랄 것이다.

배웅하던 나에게 보여주던 아이의 밝은 얼굴이 다시 떠올랐다. 이렇게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인데..


노래 가사처럼,

아이도 나도 언젠가 깨달을지도 모른다.

밝게 빛나는 별이 아니라

한낱 벌레였다는 것을.

그래도 인생의 한 순간이라도

빛나는 별이라 믿으며 살아보았다면

그것으로도 충만한 삶이지 않을까.

밤하늘에는 밝게 빛나는 별보다

빛이 지구에 닿지도 못한 채 사라져 가는 별들이

더 많은 법이니까.

내가, 내 아들이 그저 그런 별 중 하나라고 해서 딱히

서러워할 것도 억울해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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