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강습이 끝나고 샤워를 하다가 문득,
내 인생의 황금기가 지금은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통상적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보통 커리어적으로 최고의 수준에 이르렀을 때
이 표현을 쓰니까.
꿈이 있었고, 그 꿈을 위해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몇 년 동안 매일 14시간씩 공부만 하며 버텼고, 하루가 멀다 하고 밤 10시까지 야근하며 일하던 시절도 있었다. 직업적인 성취가 눈으로 확연히 드러나는 곳이 아니다 보니, 커리어의 정점을 어디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꿈을 향한 열정의 온도가 최고점에 도달했을 그 어느 순간이 황금기였을까?
황금기라는 말에는 가장 찬란한 순간도 내포되어 있지만 그 순간이 지나고 난 후 찾아오는 어둡고 씁쓸한 내리막길도 자연스레 따라붙는다.
그렇긴 해도 더 이상 뜨겁지 않다고 해서 내 인생의 황금기가 이미 끝나버렸다고 말하는 건 조금 서글프다. 이제 겨우 마흔인데.
‘황금기’라는 단어를 입안에 넣고 잘근잘근 곱씹어보았다. 이상하게 아무리 입안에서 돌려보아도 가장 밝고 뜨거운 한낮의 태양과는 괴리감이 있다. 오히려 해가 살짝 기운 오후에 부드러운 햇살을 받으며 반짝이는 호숫가의 윤슬이 떠올랐다. 그 모습이 너무 황홀해 아들을 향해 소리 지르곤 했다.
“저것 봐. 황금색이야. 너무 아름답지 않니?”
호숫가에 반짝이는 윤슬,
지금이 황금기가 아닐까 느끼는 이 감정의 실체가
바로 그것이지 않을까.
직업적으로는 과연 황금기가 있기나 했나 싶을 정도로 내세울 게 없는 사람이지만,
감정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충만하다.
나 왜 이렇게 행복하지?라고 가끔 혼잣말을 할 만큼.
갑자기 로또에 당첨된 것도 아니고
남편 월급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도 아니고
떠들썩하게 자랑할만큼
공부 잘하는 아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늘어난 건 내 나이뿐인데.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온몸이 쑤셔 곡소리가 나고
수모 자국이 이마에 남아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렇게 매일 몸이 늙어갈 뿐인데.
유일한 변화라고 하면, 육아휴직을 한 것 정도.
여전히 살림 솜씨는 고수는커녕 하수인 데다
아들 교육에 엄청난 에너지를 쏟지도 않는다.
황금기라 칭할만한 그럴듯한 성취를 전무하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
아들이 강아지처럼 달려들며,
‘엄마가 제일 좋아’라고 속삭이는 말이 달콤하다.
엄마가 집에 있어서 너무 좋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벅차오른다.
지난 40년을 아등바등 치열하게 살았는데
지금 이 순간이 보상처럼 느껴진다.
나한테는 정말 지금이 황금기일지도 모른다.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그 증거일까.
황금기에 대해 생각하는 내내
슬램덩크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강백호가 안선생님께 던진 바로 그 질문,
“감독님…전성기는 언제였습니까?“
자신의 전성기는 ‘바로 지금‘이라는 강백호.
결국에는 황금기도 전성기도 본인이 규정하기 나름이겠지. 그리고 제2의 전성기라는 말이 있듯, 인생에 그런 순간들이 꼭 한 번만 있으리란 법도 없다.
지금은 여유롭고 충만한 삶을 살며
인생의 절정을 맛보았다면
몇 년 뒤엔 다시 가슴 뛰는 일을 하며
새로운 절정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내가 인생의 황금기를 잘 못 정의하는 건 아닌가 싶어 ChatGPT에게도 물어봤다. 지금이 내 인생의 황금기라고 말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