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입구에는 화려한 원예종 산철쭉이 활짝 피어 흐린 날씨의 저기압을 살짝 끌어올려 줍니다. 어린이날과 석가탄신일이 겹친 긴 연휴라 그런지 탐방객이 많고 어느새 주차장에는 차가 가득합니다.
새로 단장한 탐방 매트는 낡고 헤진 예전 매트와 나란히 있어 매트를 까는 것이 과연 최선인지 다시금 갸우뚱하게 하네요. 돈 들이고 공 들인 새 매트 위를 걷는 것이 오히려 더 편하지만은 않습니다.
지난 모니터링 때 멀쩡했던 경사면의 출입 금지 방지목은 두 달 사이 쓰러지고, 뽑히고, 흩어져 있고, 그 너머로 탐방객이 올라갔던 길이 점점 뚜렷해집니다. "진입 금지" 라 표시했고, 탐방로 밖을 벗어나지 않기를 안내하고 있거늘 사람들의 심보가 참 못됐습니다.
기본적으로 꽃은 곤충, 새, 바람 등의 수분 매개체가 있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지만, 제비꽃을 비롯한 일부 식물은 자가수분을 통해 결실하는 번식 방법을 쓰기도 하는데 이를 "폐쇄화"라 합니다. 이름 그대로 꽃이 닫혀 있다는 것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지요. 그러니 굳이 공들여서 화려한 꽃과 달콤한 꿀을 만들 필요가 없어진답니다. 과감하게 에너지 절약 정책을 단행한 결과이지요. 타가수분과 자가수분을 동시에 적절하게 만들어내는 제비꽃의 경우는 참으로 총명한 생존 전략을 펼치고 있음이 분명해 보입니다.
물론 빛과 온도 등의 환경요인이 나빠져서 꽃이 피지 못하니 자가수분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지만, 자력갱생 비책을 쓰는 폐쇄화는 곤충, 새, 바람 등의 힘을 빌려서 만들어낸 열매에 비해 유전적으로 다양하지도 않고 건강하지 않은 열매가 맺힌다고 합니다. 누군가는 혼자서도 뭐든 척척 잘 해낼 수 있겠지만,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지속 가능한 건강함을 위한 삶의 방법에 대해 생각하게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