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7코스(2025.5.17.)
비바람이 매서웠던 밤을 지난 뒤여서일까요? 아직 여풍이 가라앉지 않았지만 하늘은 상쾌하고 공기가 맑은 것이 걷기에 딱 좋은 날씨입니다. 잠시 해무가 몰려오던 때를 제외하면 어디를 지나도 멀리 한라산이 뚜렷이 눈에 들어왔었네요.
올레 7코스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 함께 걸어보고는 거의 15년 만인 듯합니다. 다른 올레길도 그러하지만, 전과는 달리 코스가 다소 변경되었고(다음 코스인 8코스 시작점과도 이어지지 않고 서건도와 강정천 기슭이 제외되었네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각지고 반듯한 건물들이 즐비해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와 강산이 변한 세월을 여실히 직감하게 해주었답니다.
천지연폭포 상류에서 출발해 총 12.9km인 7코스는 칠십리 시공원과 삼매봉을 지난 약 3km 지점의 동너븐여부터 두머니물공원까지는 갯내음을 따라 해안을 걷는 코스입니다. 가장 먼저 만나는 해안 언덕인 동너븐덕은 ‘남주해금강’이라 불릴 정도로 옥빛 바다와 경탄하지 않을 수 없는 바윗덩어리가 마주하는 곳입니다. 멀리 문섬과 새연교를 비롯해 기차바위, 우둔암, 외돌개 등 파도를 벗 삼아 세월에 깎이며 버티고 있는 바위 절벽에 넋이 나가 배낭에서 커피가 쏟아지는 줄도 모른 채 오랜 시간을 머물렀답니다. 아까운 내 커피.......
코스 중간쯤인 속골 정자에서 점심 도시락을 먹고는 수더분한 이름의 수봉로에 이르렀습니다. 수봉로는 올레지기 김수봉 님이 염소가 다니던 길에 직접 삽과 곡괭이만으로 계단과 길을 만들어서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도록 한 길이라고 하네요. 가지런한 자갈길이 누군가의 한 땀 한 땀의 정성이라 생각하니 길을 벗어날 때까지 자꾸만 돌아온 길을 뒤돌아보게 됩니다.
650여 년 전 포구에 막사를 만들어 군사를 독려하며 목호의 남은 무리를 물리친 ‘막숙’이 있던 곳은 가까이에 용천수가 자리하고 있어, 때 이른 물놀이를 하는 이들로 시끌벅적합니다. 토요일이라 학교에 학생들이 보이지 않았지만, 용천수와 이웃한 곳에 마련된 해녀학교의 분주함을 상상하며 법환포구를 지나 종점을 향합니다.
강정까지 이어지지 않은 아쉬움과 체력이 다해 가는 시점에 약간의 오르막을 오르느라 숨이 거칠어져 중간에 한 템포 숨 고르기를 한 뒤 드디어 종점에 이르렀습니다. 길을 나서며 처음 마주한 칠십리 시공원에서는 마침 故 오승철 시인이 추도식이 진행 중이었는데요, 오늘 걸었던 서홍동과 법환동 마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녹아든 시 한 편을 자꾸만 되뇌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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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
오승철
솥뚜껑 손잡이 같네
오름 위에 돋은 무덤
노루귀 너도바람꽃 얼음새꽃 까치무릇
솥뚜껑 여닫는 사이 쇳물 끓는 봄이 오네
그런 봄 그런 오후 바람 안 나면 사람이랴
장다리꽃 담 넘어 수작하는 어느 올레
지나다 바람결에도 슬쩍 한번 묻는 말
“셔?”
그러네 제주에선 소리보다 바람이 빨라
‘안에 계셔?’ 그 말조차 다 흘리고 지워져
마지막 겨우 당도한
고백 같은
그 말
“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