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복된 경고와 알림이 각양각색인 것은 이곳도 예외가 아니네요. 우리 집 대문에 이렇게 하자고 하면 온 식구들이 뜯어말리지 않을까 싶네요. 말리는 이가 없어서 이러는 건지, 이러는 것이 효과적이라 생각하는 건지 아리송할 뿐입니다. 장전리 마을목장에서 방목한 것으로 보이는 말들에게 아침 문안을 여쭙고 숲으로 향합니다. 오름으로 들어가려는 차량 출입은 막고 사람들의 출입에는 다소 덜 불편하게 하기 위한 임시방편이 투박한듯하면서도 깜찍합니다.
궷물오름은 오름 허리에서 샘물이 솟아나 붙여진 이름으로, 2024년 관광공사에서 조사한 ‘데이터로 보는 제주여행 #두 개의 시선 편’에서 제주 도민이 더 많이 찾는 오름 10곳 중 하나로 선정된 곳이기도 합니다. 이 오름을 대표할 만한 생물종은 무엇일지, 경관적인 가치는 무엇이 있을지 찾는 것이 이번 모니터링의 이유입니다. 물론 한 번의 모니터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앞으로 4차례 더 진행해서 계절별로 대표하는 생물종과 경관 변화를 조사할 예정이지요.
이 오름을 생활처럼 이용했을 법한 장전 마을 어르신을 만나 테우리 막사와 제단에 대해 자세히 들어보고 싶지만, 오늘은 숲길을 걸으면서 테우리가 되고 제사장이 되는 상상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네요. 대신 궷물오름과 큰노꼬메 사이에 위치한 너른 평지에서 목초가 재배되고 있는데, 과거에는 제주 최대(다소 과장일지도 모릅니다만...)의 더덕밭이었으며 이 밭에서 북쪽 급경사를 따라 큰노꼬메를 올랐다는 이야기는 들을 수 있었습니다. 모니터링 팀원 중 산악회 활동을 했던 선돌샘이 들려주신 내용이지요.
“테우리 막사 ; ‘테우리’란 주로 말과 소를 들에 풀어놓아 먹이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 또는 목동을 일컫는 제주말이다. 테우리는 마소를 관리하는 일 외에 특히 조밭을 밟는 일과 바령팟을 만드는 일 등 농사일도 했다. 테우리에게는 소, 말을 잘 몰고 아우르는 것과 함께 방목하는 소, 말을 밧줄로 걸어 묶어 잡아들이는 특수한 기량이 있어야 하고 이 기량의 소유자만이 산림 방목을 할 수 있다. 테우리가 최고 진가를 발휘할 때는 여름 농사철이다. 이때 밭을 갈아 밭 밟기를 하는데 소, 말을 이용한다.
이때 소떼나 말떼를 잘 부리는 노련한 테우리는 발 밟는 소리를 하면서 좁은 밭 안에서도 질서 정연하게 소, 말을 몰아 밭을 잘 밟게 한다. 이러한 테우리들의 거처를 ‘우막(우막)집’이라고 하는데, 도롱담을 쌓아 올린 후 지붕용 나뭇가지를 걸치고 그 위에 새(띠풀)나 어욱(억새)으로 덮어 만들었는데, 테우리들의 쉼터로 비가 오거나 날씨가 추워질 경우 피난처로 이용했다. 그리고 백중제를 지낼 때 비가 올 경우도 우막집을 이용했다고 한다.”
테우리 막사를 전후해서 산쪽풀과 제주조릿대가 하부식생으로 우점하는 혼효림의 하늘이 열리면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정상부에 이릅니다. 실제 최고점은 좀 더 가야 하지만 멀리 제주 북서쪽 바다와 경마장, 이웃한 오름 능선을 조망할 수 있어 정상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곳이지요. 마침 때죽나무 한 그루가 셀 수 없이 많은 꽃을 피운 덕에 정상 일대는 말 그대로 꽃잔치입니다. 때죽나무뿐만이 아닙니다. 가막살나무, 층층나무, 아그배나무, 섬개벚나무, 찔레꽃 등 5월은 흰 꽃이 기를 펴는 시기이지요. 계절 중에는 가을을 좋아하지만 5월만 되면 이 흰 꽃들 때문에 정신을 잃고 한답니다.
하산하는 중에는 차량 통행으로 파여 있는 노두가 몇 군데 확인되었지만, 야자 또는 고무 소재의 매트가 혼용되어 있는 탐방로에는 크게 훼손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남은 조사 일정까지 모두가 무탈해야겠지만......
#제주의오름 #궷물오름 #테우리막사 #때죽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