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랜드 속 그 노래
남들이 떠들 땐 시큰둥했던 영화 <라라랜드> 얘기를 하려 한다. 정확히 말하면 <라라랜드> 속 인물이 처한 어떤 상황과 유사한 내 상황 얘기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땐 '여태까지 나왔던 사랑 영화랑 뭐가 다르지?' 라고 생각했다. 영화가 뒤늦게 마음에 와 닿은 이유는 사랑이 절절해서가 아니다. 극중 미아가 처한 상황 중 한 대목이 너무나 내 이야기 같아서였다.
그 친구, 준비한 지 6개월 만에 합격했다더라.
언젠가부터 시험 준비를 하며 가장 타격을 입는 순간은 내 불합격이 아니고 남의 합격 소식을 들을 때가 됐다. 언시생 3년차에 들어서면서 나는 준비를 꽤 오래 한 축에 속한다. 이제는 합격자가 나보다 준비 기간이 짧은 경우가 많다. 내게는 서류 합격조차도 버거운데 비교적 쉽게 최종합격을 얻어낸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보며 마음이 쓰라렸다. 사실 쓰라린 것 이상이었다. 내 안에 차곡차곡 쌓아온 무언가가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그건 준비기간이 오래될수록 기자라는 직업과 나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믿음이었다. 단숨에 합격한 그들은 오래 준비하지 않아도 잘만 기자가 됐다. (물론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피나는 노력을 했겠지만) 한때는 기자가 내 천직이라고 생각했지만 점점 의구심이 들었다. 이렇게 합격이 늦어지는데도 과연 천직일까? 나와 안 맞는 길일까? 나, 이대로 포기해야 할 만큼 재능이 없는 걸까? 심란해하고 있을 때 라라랜드의 OST <Someone in the crowd>가 귀에 들어왔다. 가사 내용은 완벽히 내 심정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군중 속의 한 사람, 난 그렇게밖에 안 보이는 것이 아닐까? 정신없이 도는 세상을 지켜만 보는.
성대한 파티를 등지고 화장실 거울 앞에 선 미아. 파티에서 배우지망생으로서 자신을 알아볼 사람을 찾았지만 무익한 자리였을 뿐이다. 사람들이 춤을 추는 파티에서 반짝이는 누군가에게 단지 박수를 쳐 주고 쳐다보는 역할에 머물러야 할 때 느끼는 무력감이 있다. 주목을 끌어야 하는 직업, 배우를 꿈꾸는 미아는 그 사실이 특히나 두려웠을 것이다. 그 두려움은 내것과 일치했다. 라라랜드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이유는 단지 사랑 이야기만이 아니었기 때문인 것 같다. 꿈을 이루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는 사람의 이야기였다.
언젠가는 당당히 합격자 명단에 오르고, 000기자라는 명함을 나눠주며 취재를 하고, 선배 기자들과 의견을 주고받으며 일하는 나의 모습을 상상했었다. 그런데 그 꿈은 사실 이룰 수 없는 것이고, 나는 포기하는 게 맞는 게 아닐까? 그리고 뒤에서 다른 합격자들에게 박수를 쳐 주는, 그런 사람으로 남아야 하는 운명인 걸까? 많이 고민했었다. 지난달까지.
다행히 마음을 추스르고 계속 준비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마음 속으로 마지노선을 그었다. 올해까지만 하자고. 올해까지 해서 안 되면 다른 쪽으로 두드려 보자고. 일반기업은 내 길이 아닌 것 같아서 도전해 본 적 없지만 내년부터는 내 길을 따지지 말자고. 서글프지만 그렇다.
얼마 전 스터디를 그만둔 친구는 "이제 더 이상 기자라는 직업을 포기해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사실 나는 아깝다는 생각이 아직까지는 많이 든다. 아쉬운 마음이 거의 다 쓴 로션통 입구에 고인 로션처럼 턱 걸려 있다. 그래서 도전을 이어갈 생각이다. 지긋지긋해도 올해까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올해 안에는 가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다시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