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쇼샤나 Nov 10. 2017

내가 레드오션이라고?

너무 늦게 알게 된 사실

 소설 <표백>의 등장인물 세연은 삼성에 합격한 직후 학교 분수대로 뛰어내려 자살한다. 그녀는 어떻게 하면 자신의 죽음이 오래도록 기억될 수 있을지 고민한다. 미국 최악의 살인범으로 언급되는 찰스 맨슨처럼 말이다. 세연은 '미모의 여대생'이 '힘들었을 때가 아닌 가장 큰 성취를 이룩했을 때' '학교 한복판에서' 자살하는 것이 가장 임팩트 있겠다는 결론을 내린다.


 세연의 생각은 터무니없어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나름 통찰력이 있다. 같은 죽음이라도 죽은 사람이 처한 상황과 조건에 따라 주목도가 다르다. 서울대 출신의 홀어머니와 함께 사는 직장인이 스크린도어에 끼어 숨졌을 때 쏟아진 기사를 기억한다. 언론은 하나같이 '서울대'라는 타이틀을 붙이며 지하철 사고로 죽은 다른 이들보다 그에게 주목했다. 죽음에도 레드오션이 있다. 세연이 삼성 입사에 실패했다면, 명문대 출신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쉽게 잊혔을 거다. 그녀를 추종하는 이들의 연쇄적인 죽음 역시 없었으리라. 자살률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한국에서 자살은 특이해야 주목을 받는다.


 지난 7월, 이 소설을 읽었을 때 나는 세연의 행동이 허세로만 느껴졌다. 자신의 죽음을 모두에게 기억되게 하겠다는 일념 하에 저지른 행동들이 너무 철없어 보였다. 죽으려면 곱게 죽던가 왜 학교 분수대로 뛰어내리나. 이제는 세연이 왜 그랬는지 알 것 같다. 시장 분석을 할 때 쓰는 레드오션이 사람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걸 나는 너무 늦게 깨달았다. 언론인을 지망하는 나는, 내가 노동시장에서 팔리지 않는 상품임을 뼈저리게 느꼈다. 20대 중반에 비스카이 정도의 스펙을 가진 나는 스스로 특별하다고 믿었지만, 현실에서는 나와 비슷한 수백 명의 지원자가 자신의 특별함을 부르짖고 있었다. 미친 척하고 대북 정책을 논하라는 문제에 '김정은 암살'로 답해야 한다던 친구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이미 나 자체가 레드오션인 상황. 블루오션에 진입하려면 아무도 안 쓰는 글을 쓰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세연도 비슷했으리라. 아무도 '죽지 않을 것 같은 상황'에서 죽음을 택함으로써 그녀는 잊히지 않았다.

<한국이 싫어서>, <댓글부대> 등 더 강렬한 제목의 작품은 많지만 나는 <표백>을 감히 장강명의 최고작으로 꼽고 싶다.


 언론사는 내 플랜A였다. 플랜B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언젠가 언론사에 입사하리라는 데 한치의 의심도 없었고, 힘들지만 발로 뛰어 사실을 전달하는 기자라는 직업에 애정도 컸다. 내가 레드오션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의심은 늘었고 애정은 줄었다. 최종합격 가능성을 확신할 수 없게 됐고, 서류전형에서부터 기회를 주지 않고 노골적으로 스카이를 선호하는 언론사가 신물이 났다. 학벌에 콤플렉스를 가져본 적 없었지만 학벌이 내 발목을 잡는다는 걸 요즘 절실히 느끼고 있다.


 그동안 근거 없이 나 자신은 조금 밋밋하더라도 내 글만큼은 특별하다고 믿었다. 둘 다 아니었다. 나는 밋밋할뿐만 아니라 군계일학 중 닭 한마리에 불과한, 평범 오브 평범한 사람이었다. 글도 마찬가지다. 솔직해지자면 잘못은 내 학벌보다는 답보 상태인 내 글에 있다. 내 글이 레드오션인 게 더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려는 노력, 시험 당일 어떤 논제가 나와도 받아칠 수 있는 능력이 아직도 부족하다. 3년이나 했는데 그게 턱없이 모자라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래서 글로 징징대고 있다. 지난 3년, 나름 열심히 뛰었다. 스터디도 거의 빠지지 않았다. 그 세월을 '실력'으로 증명하지 못하는 지금이 어느 때보다도 괴롭다.

작가의 이전글 군중 속의 한 사람이 된 기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