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집에 자리 잡아가는 가족이 새삼 어른 같았다
우리 가족은 얼마 전 25년 동안 살았던 아파트를 떠나 주택으로 이사했다. 서울살이 하는 나만 빼고 세 식구가 같이 사는 집. 넓어진 새 집을 손님처럼 구경했다. 아파트에 살 때는 좁은 거실에 넷이서 옹기종기 모여 TV를 봤다. 소파가 없어 바닥에 이불을 깔고 베개 커버에 이불을 접어 넣어서 등받이를 만들었었다.
그랬던 옛 집을 떠나 마주한 소파 있는 집이 아직 낯설다.
집안 구석구석을 살피고 있는 나에게, 언니는 어디서 꺼냈는지 초코바를 던져줬다. 엄마는 늘 쓰던 부엌인것처럼 뚝딱 밥을 지어 상을 차리셨다. 이사 둘째날이었는데도 마치 수십 년은 이곳에서 살았던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잘 지내는 가족이 새 집만큼 낯설었다. 낯섦은 그들이 새삼 어른이구나 하는 깨달음에서 왔다. 부모님은 물론이고 언니까지도. 성장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달라진 환경에도 익숙하게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 참 안정감 있었고 그게 어른다워 보였다. 울창한 숲에서 둥지를 틀 안락한 장소를 찾아내고 새끼들을 옮겨낸 새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힘들다고 찡찡댈 때가 있다. 마음 한 켠에 담아두면 응어리가 질 것만 같아 털어놓은 고민들은 이내 후회를 부른다. 나에 대한 쓸데없는 정보를 너무 많이 오픈했다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상대는 내 푸념을 듣기만 하느라 힘들었을 거라는 미안함이 밀려온다. 다들 어른인데 나만 아직 철이 덜 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가족은 나와 달리 의연해 보였다. 물론 옛 집보다 새 집이 좋아져서 딱히 불평불만이 없었던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뭐랄까. 살던 집이 바뀌는 거대한 변화에도 끄떡없다는 듯, 하나같이 담담하게 나를 맞이하는 가족 앞에서 나는 내가 너무 아이 같았다. 그래서 그날 본 시험이 힘들었다고, 그냥 요즘 좀 힘들다고, 그런 말을 또 꺼낼 수 없었다. 나는 어른이 되어가는 건지, 아이가 되어가는 건지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