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리들>과 웹툰 <여중생A> 속 아이들
영화 <우리들>은 친구 없는 아이의 '시험대'를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초등학교 4학년인 선이는 반 아이들이 가위바위보로 피구 팀을 나누는 것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홀수-짝수로, 앞번호-뒷번호로 나누는 것도 아니고, 두 명의 주자가 친구를 한 명씩 데려가는 방식은 교우관계의 시험대가 된다. 이름이 늦게 불릴수록 인기 없는 아이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카메라는 끈질기게 선이의 얼굴을 주목하지만 선이의 표정은 밝아지지 못한다. 선이는 끝내 아무에게도 이름이 불리지 않고 인원이 더 적은 팀에 저절로 배정된다.
교우관계의 시험대는 많이 있었다. 예를 들어 짝을 바꾸는 날도 시험대다. 친구가 많은 사람은 짝꿍이 누구건 그럭저럭 잘 지낸다. 하지만 반에서 친구가 없거나 왕따로 낙인이 찍힌 아이는 짝꿍이 될 아이의 반응이 두렵다. 자신과 짝이 된 걸 알자 오만상을 찌푸리는 아이, 다른 친구와 자리를 바꿔달라고 거래하는 아이를 애써 못본 척 해야 한다. 누구도 왕따를 반기지 않는다. 체육시간에 짝을 지을 때, 급식시간에 밥을 먹을 때, 부활동을 정할 때 친구 없는 아이는 시험에 직면한다.
선이가 학교에서 시험대를 마주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학교는 '친구가 곧 계급'이 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어른들 눈에 다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의 세계에도 명실상부한 계급이 있다. 친구가 없는 선이는 가장 아래 계급에 속한다. 아이들은 냉혹하리만치 계급을 나눈다. 낮은 계급의 아이에게는 계급이 낮은 이유를 부여한다. 냄새가 나서, 아버지가 알콜중독자라는 소문이 있어서, 그냥 이상한 애라서. 실제로 그렇건 그렇지 않건, 꼬리표가 붙었기 때문에 친구 없는 아이에게는 친구가 생기기 어렵다. 선이에게 다가와준 유일한 친구 지아도 선이가 자신 말고는 친구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선이를 멀리하기 시작한다.
친구 없는 아이들이 버텨내야 하는 시험대는 가혹하고, 계급의 무게는 무겁다. 한창 뛰어놀아야 하는 시기 치고는 감당해야 할 감정적 타격이 크다. 네이버 웹툰 <여중생A>의 미래는 뒷담화를 들었을 때 대처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화장실 문을 잠그고, 눈물을 떨구되 울음소리가 새어나오지 않게 한다. 창가에 서서 바람을 쐬어 주면 눈물이 마르고 완벽하게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 된다. 인기가 많은 친구와 운동장에 들어갈 때는 일부러 걸음을 느리게 하고 벽 뒤로 숨는다. 반 아이들에게 괜히 주목받고 욕을 들어먹기 싫어서다.
<우리들>과 <여중생A>를 보며 내가 학창시절을 적잖이 미화했었다는 걸 깨달았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을 스칠 때 하는 얄팍한 생각처럼, 내 십대는 마냥 해맑고 단순했었다고만 기억하고 있었다. 점심 메뉴에 고기가 있으면 좋아했고 공부하기 싫다는 말을 반복했다. 하지만 친구와의 관계만큼은 취업 준비하듯 치열하게 고민하고 눈치를 봤다. 친구는 내 학교생활, 내 세계의 전부였다. 친구가 없다는 것은 곧 문제가 있다는 말과 같았다. 나는 친구를 잃지 않으려고 부단히도 노력했다. 정확히는 '내 마음을 알아줄' 친구가 아니라 '내 계급을 유지해줄' 친구를 잃고 싶지 않았다. 나 역시 선이와 미래처럼 공고하게 형성된 계급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아마도 선이와 미래가 성장하는 순간은, 계급화에 동참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을 때가 아닐까. 선이는 피구를 하다가 금을 밟았다는 아이들의 지적에 수비하는 곳으로 밀려난 적이 있다. 지아가 선이와 같은 일을 당했을 때 선이는 가만히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선이는 한 마디 던진다. "한지아 금 안 밟았어. 내가 봤어." 미래는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자신을 괴롭히던 노란 앞에서 당당해진다. 그러나 미래에게 어른스러움을 느꼈던 부분은 노란과의 말싸움에서 지지 않을 때가 아니라, 은연중에 노란을 자신과는 다른 계층으로 구분짓고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였다. 아이들의 계급은 굳건하기도 하지만, 계급 따윈 신경쓰지 않고 친구가 되자며 손을 내밀고 나서 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다. 친구와 놀다가 자주 눈가가 멍드는 동생에게 선이가 너도 때려야지, 라고 쏘아붙이자 동생은 "그럼 언제 놀아?"라고 말한다. 동생의 물음은 계급을 한 순간에 무의미하게 만든다.
계급화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다짐은 곧 내가 소중하다고 여기는 관계에 충실하겠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나는 아이와 어른은 '관계의 소중함을 자존심보다 앞세우는가'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어릴 적에는 자존심과 고집을 내세우다가 소중한 것을 잃기도 한다. 그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자존심을 꺾고 '지키는 법'을 깨닫게 된다. 선이와 미래는 고통스럽지만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지키려고 하는 어른으로. 그래서 앞으로 미래는 노란과 선을 긋지 않고 잘 지내려고 할 것이다. 선이는 친구에게 다시 한 번 손을 내밀고 자신이 소중하다고 느꼈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두 작품은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의 성장을 겨냥한 것일 테다. '아이들이 뭘 알아'라고 치부해버리는 어른들 말이다. 어른은 아이를 단순한 존재로 파악한다. 어른이 되어 살아가는 세계는 더 철저한 계급으로 나뉘어 있다 보니, 우리는 아이들도 계급에 따라 나뉜다는 사실을 잊었다. 두 작품은 어른으로 하여금 어렸을 때 치기 어린 행동으로 친구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또 받기도 하던 시절과 다시 마주하게 한다. 또 중고등학생의 시험대를 상기하게 한다. 계급을 놓고 치열하게 고민했던 것을 생각하면, 결코 그 시절을 단순하다고 규정할 수 없다. 과거 내가 줬던 상처를 반성한다. 자존심 때문에 진심을 감추던 행동을 후회한다. 지금의 아이들도 그때의 나만큼 복잡한 시절을 보내고 있을까 상상해본다. 반성과 후회, 상상으로 어른도 더 어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