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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원하 Aug 27. 2020

무이네  . 못 하이 바 요, 건배할 시간

베트남

혼자만의 여행도 그 나름대로의 의미와 재미가 있다지만,
그래도 그 모든 기쁨과 즐거움은
누군가와 같이 하는 여행에서만 완전해지죠.



바다 풍경을 보면 그 언제라도 마음이 시원해지죠. 베트남의 ‘경제 중심지’ 호찌민시티(Thành phố Hồ Chí Minh)에서 동쪽으로 이백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무이네(Mũi Né)라는 작은 어촌이 있습니다. 해안에 인접한 이 마을에는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다 아는 유명 호텔과 리조트가 있고, 밝은 미소로 온세계에서 온 여행자들을 맞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무이네로 가기 위해서는 호찌민 부이비엔 거리에서 출발하는 슬리핑 버스를 이용하는 편이 좋습니다. 다리를 뻗고 30~40도 각도로 편안히 누울 수 있는 좌석은 슬리핑 버스만의 고유한 매력이죠. 덕분에 일반 버스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편안하게 목적지로 갈 수 있으니까요.

슬링핑 버스 내부

무이네까지의 거리 자체가 그리 멀지는 않지만 베트남 대부분의 도로 사정이 그러하듯이, 속도를 많이 낼 수 없는 현지 도로 여건상, 우리나라에서는 두 시간이면 족히 갈 수 있는 거리도 베트남에서는 4시간 이상 잡아야 합니다. 셀 수 없는 오토바이 행렬이 이어지는 러시아워에라도 걸리게 되면 그 시간은 훨씬 더 가늠할 수 없어집니다.


새벽부터 일찍 서두른 덕분에 점심 나절에 도착한 무이네. 맑은 하늘에서 우수수 쏟아지는 수많은 햇살이 파란 바다에 부딪쳐 저 멀리에서부터 눈부시게 다가옵니다. 한낮의 따가운 햇볕을 피하기에는 파라솔 만한 것이 없죠. 파라솔 아래에서 시원한 망고주스를 마시며 바로 앞 수영장과 저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니 낙원에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얼마나 오랜만에 감각하는 심신의 평화로움인가, 내 속의 고요함인가.’ 망고주스의 달달함과 함께 전해지는 나른한 느낌이 좋습니다. 그리고 이어폰에서 들려오는, 오늘따라 더할 나위 없이 감성적으로 다가오는 에피톤 프로젝트의 <미뉴에트>가 너무나 좋습니다.

수영장 풍경

날이 저물 무렵,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무이네 중심가로 나가봅니다. 무이네는 어촌 마을답게 싱싱한 해산물이 넘쳐 나고, 식당거리 곳곳의 가게 앞에는 다채로운 물고기, 오징어, 조개 등이 지나가는 여행자를 유혹합니다. 단순히 바라만 보는 것으로는 그 유혹을 떨쳐낼 수도 있겠지만 숯불 위에서 맛있게 익어가는 냄새라도 맡게 된다면 도저히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저 그 냄새에 이끌려 자연스럽게 식당으로 들어간다, 빈 테이블에 재빨리 자리를 잡는다, 시원한 맥주를 먼저 달라고 한다, 그러고 나서 이런저런 메뉴를 바삐 찾아 주문한다, 기다린다.


오늘의 입맛을 책임질 음식을 다 주문하고 그제야 주위 사람들을 둘러보는데. 주변이 온통 서양인들입니다. 아빠와 엄마를 따라온 어린아이들도 보이고, 연인들도 보이고, 노년의 부부도 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무이네는 베트남 중부의 또 다른 해변 도시인 나짱(Nha Trang)과 함께 러시아 사람들이 자주 찾는 휴양지라는 것입니다. 음식점 간판과 메뉴판에 생경한 키릴 문자(러시아어 문자)가 쓰여 있던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방금 전만 해도 거리에서 매혹적인 자태로 관광객을 유혹했을 해산물들이 이제는 숯불 위에서 잘 구워진 채로 식탁 위로 올라와 있습니다. 후텁지근한 밤공기, 그 사이로 다가오는 선풍기 바람, 저 멀리서 들려오는 라이브 가수의 올드팝, 그리고 빠질 수 없는 베트남의 시원한 맥주. 이들 서로서로가 잘 어우러져 열대지방 고유의 매력을 발산합니다.

사이공 엑스포트와 오징어 구이

혼자만의 여행도 그 나름대로의 의미와 재미가 있다지만, 그래도 그 모든 기쁨과 즐거움은 누군가와 같이 하는 여행에서만 완전해지죠. 한 여행을 한 친구와 같이하면 한 두세 배쯤 많은 즐거움과 소중한 추억이 내게 쌓이는 느낌입니다.


지금 바로 앞에는 같이 잔을 부딪히며, ‘못 하이 바 요(một hai ba yo, 하나 둘 셋 건배)’를 외쳐주는 정겨운 친구가 있습니다. 이 친구와의 변치 않을 우정을 위하여, 또한 우리들의 더 멋진 내일을 위하여, 오늘도 건배!



♫ 에피소드 주제곡 ♫    

▶︎ 미뉴에트 // 에피톤 프로젝트
▶︎ https://youtu.be/MoQ1QHgNEVU
▶︎ 계속 반복해서 들어도 질리지 않는 노래들이 있습니다. 어떤 날은 그 곡을 여러 번 돌려 들으면서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얽혀있는 생각의 타래를 풀어보기도 합니다. <미뉴에트>가 내게는,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을 먹어도 물리지 않는 만둣국 같은 존재인 것 같습니다.

홈페이지의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2012년)' 앨범 소개란을 보면 다음과 같은 설명이 적혀 있습니다.

여러 여행기를 읽다가 마지막 장을 덮은 그 순간, '떠나고 싶다'는 이내 '떠나자'가 되었고 여권과 티켓, 몇 벌의 옷가지들과 카메라, 노트북 등을 챙겨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하벨 시장에서 과일을 사고, 케렌트너 거리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새로운 풍경, 사람을 만나고. 오랜 시간, 기억들과도 마주하고. 소리를 듣고, 걷고, 사진을 찍으며 떠오르는 낱말들을 적고, 멜로디를 녹음하고... 그 시간, 그 공간에서의 기록들과 함께 내 안의 감정, 느낌들을 빼곡히 담으려 했습니다.

이 설명을 듣고 나니 작곡자 차세정의 느낌과 감정이 더더욱 고스란히 전달되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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