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긴 여정 끝에 지구라는 별에 도착한 어느 행성의 별빛을
따뜻하게 토닥토닥 해주고 싶은 밤입니다.
겨울철 몽골, 영하 30~40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가 맹위를 떨치는 곳이지만 여름철 몽골의 한낮은 생각보다 뜨겁습니다. 그 여름 몇 개월 동안 세계 각지에서 많은 여행자들이 몽골의 드넓은 초원을 경험하기 위해 모여듭니다.
늦은 8월, 몽골 여름의 끝자락에 수도 울란바토르(Улаанбаатар, Ulaanbaatar)에서 2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테를지(Terelj)국립공원으로 출발합니다. 수도에 인접한 고속도로이기는 하지만 테를지국립공원으로 가는 길은 그리 평탄치 않습니다. 움푹 파인 구덩이가 도로 곳곳에 있어 운전자는 전방을 잘 주시해야 하고, 편도 1차로인 탓에 속도를 내는 것조차 쉽지 않습니다. 앞에 느림보 화물차라도 가고 있으면 속도는 이내 50킬로미터 아래로 떨어지고 맙니다.
시내에서 출발한 지 한참이 지나, 드디어 사진에서 많이 봤던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푸른 초원과 그 초원 위의 말과 사람들, 그리고 따뜻한 안식처가 되어주는 새하얀 게르가 조화를 이루어 한 폭의 멋진 풍경화를 선사합니다. 게르는 몽골의 전통 가옥입니다. 몽골 초원을 지나다 보면 게르촌을 자주 보게 되는데요 현대화된 게르 내에는 침대뿐 아니라 화장실도 있고 샤워실까지 있다고 하죠.
그렇게 창밖 풍경에 빠져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오늘의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먼저 보이는 곳은 몽골 말타기 체험장. 몽골의 말들은 체구가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목동이 말 등에 안장을 준비해 주면 오를 준비를 합니다. 아무리 체구가 작은 말이라고는 하지만 혼자 힘으로 말에 오르기는 쉽지 않죠. 오늘의 길동무 말에게 간단한 인사를 하고 목동의 도움을 받아 말 등에 오릅니다.
난생처음 타보는 말, 말 등 위에 앉아보니 뭔가 모를 콩닥거림이 가슴속에서 느껴집니다. 모든 일행이 준비가 되자 서서히 오늘의 트랙킹이 시작됩니다. 목동의 말이 앞에서 길을 인도하면 그 뒤를 따라 여러 말들이 뚜벅뚜벅 따라갑니다.
그 사이 낯선 몽골의 노래가 쨍쨍한 햇볕 아래 건조한 공기를 따라 퍼져나갑니다. 가사 내용은 알 수 없지만 목동의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오는 그 리듬만은 지금 이 순간과 잘 어우러져 더할 수 없는 신선한 경험을 만들어 줍니다. 한 시간 남짓 걸린 트래킹 코스, 그 길에는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고, 조금 빠르게 가기도 하고 조금 느리게 하기도 하고.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무언가와 참 비슷하죠.
즐거운 여행길에는 언제나 맛있는 음식이 있습니다. 현대식 게르 식당에서 미리 주문해 두었던 허르헉이라는 몽골 전통 찜요리를 맞이합니다. 찜통 같은 곳에 양고기와 감자, 당근을 넣고 뜨겁게 달군 돌을 함께 넣어 익히는 음식. 그동안 주로 먹었던 양고기 꼬치 요리와는 달리 맛이 담백합니다. 의외의 맛에 일행들이 하나 둘 감탄을 늘어놓는 사이 접시는 점점 비어 갑니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어느새 해는 지고 하늘은 새까만 어둠으로 가득합니다. 도로에서 잠시 빠져나와 차를 멈추고 하늘을 바라봅니다. 밝은 빛이 없는 몽골 시골의 하늘은 온통 별들로 가득합니다. 그동안 잊고 지낸 별들을 신기하게 바라봅니다.
우리가 밤하늘에서 맞이하는 별빛은 아주 오랜 과거의 별빛이라는데. 지금 우리와 마주한 저 별 빛은 얼마나 오랜 세월을 거쳐 여기에 온 것인지. 긴 여정 끝에 지구라는 별에 도착한 어느 행성의 별빛을 따뜻하게 토닥토닥 해주고 싶은 밤입니다.
♫ 에피소드 주제곡 ♫
▶︎ No Wind in the Sky // Yilana
▶︎ https://youtu.be/Qy19K1AyzIs
▶︎ 중국 내몽골 출신의 뮤지션 일라나가 들려주는 연주곡입니다. 이 곡에 사용된 악기는 몽골 전통악기 모린호르인데 악기의 음색이 우리의 해금, 중국의 얼후와 많이 닮아있어 동양적 분위기를 물씬 풍깁니다. 악기 맨 위에는 말머리 모양의 조각이 있어서 마두금(馬頭琴)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내게 몽골 초원을 연상시키는 노래가 두 곡 있습니다. 그중 한 곡이 바로 이 <No Wind in the Sky>입니다. 현실의 팍팍함으로 가끔 가슴이 답답할 때, 나는 이 곡을 듣습니다. 두 눈을 감고 이 곡을 듣고 있노라면 구름 한 점 없는 몽골의 새파란 하늘과 드넓은 초원이 눈 앞에 펼쳐지는 듯합니다. 마두금의 정감 어린 소리가 내 마음을 어루만져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