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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원하 Jul 24. 2020

콜롬보 . 미니스트리 오브 크랩

스리랑카

비 내리는 낯선 이국의 도시, 내 몸에 천천히 스며드는 비,
그 도시에 서서히 스며드는 나.
모든 것이 여행을 통해서만 가능한 경험입니다.



한때 실론(Ceylon)이라 불리던 나라가 있습니다. 최대 도시 콜롬보(කොළඹ, கொழும்பு, Colombo)까지는 비행기로 9시간, 여느 아시아 국가들보다는 긴 비행시간입니다. 인도양의 섬나라 스리랑카, 바로 옆에는 신혼부부들이 선망하는 여행지 중 하나인 몰디브가 있습니다. 스리랑카행 국적기가 콜롬보를 들러 몰디브로 들어가기 때문에 허니문 시즌에는 참 많은 신혼부부와 동승하게 됩니다.


실론티라는 이름의 유명한 홍차 음료가 있죠. 그 실론이 바로 스리랑카의 옛 이름입니다. 홍차 산지로 유명한 스리랑카에는 세계적으로 품질을 인정받는 ‘베질루르(Basilur)’, ‘딜마(Dilmah)’와 같은 홍차 브랜드들이 있습니다. 스리랑카 고유의 여행 선물을 생각한다면 베질루르와 딜마의 홍차가 꽤 괜찮은 선택이겠다 싶습니다. 알루미늄 상자 안에 고급스럽게 담겨 있는 홍차, 더할 나위 없는 훌륭한 맛을 선사합니다.


홍차와 함께 스리랑카에서 꼭 맛보아야 할 것은 바로 해산물입니다. 섬나라답게 스리랑카에는 바다에서 갓 건져 올린 어류, 갑각류 등을 주제로 한 다양한 요리가 여행자들을 유혹합니다. 그중에서 ‘미니스트리 오브 크랩(Ministry of Crab)’은 그 이름과 식재료에서 단연 기억에 남을만한 식당입니다.

‘미니스트리 오브 크랩’ 입구

미니스트리 오브 크랩, 우리 말로는 ‘게부’라고 번역을 해야 할까요? 다소 엉뚱한 이름의 이 식당은 콜롬보 시내 ‘옛 네덜란드 병원(Old Dutch Hospital)’ 지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곳은 말 그대로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 병원이 있었던 자리입니다. 지금은 그 자리에 식당, 기념품점 등과 같은 상업 시설들이 과거의 모습과 조화를 이루며 들어서 있습니다.


미니스트리 오브 크랩에 들어서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크랩이 사이즈 별로 그려져 있는 메뉴판입니다. 작은 것부터 큰 것 순으로 크랩이 구분되어 있는데 가장 큰 사이즈의 이름은 다름 아닌 크랩질라(Crabzilla). 마치 고질라가 연상되는 크랩질라는 그 가격 또한 남다릅니다. 시기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2킬로그램 기준으로 200달러가 훌쩍 넘는 그 가격 역시 고질라급이라 하겠습니다.

‘미니스트리 오브 크랩’ 실내

크랩질라는 항상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가격도 가격이니만큼 보통은 중간 크기의 크랩을 선택하게 됩니다. 크랩을 선택했다면 그다음은 조리법을 결정해야 할 차례인데요, 페퍼, 커리, 칠리, 갈릭 칠리, 버터, 그 어떤 맛을 선택하더라고 원재료가 뒷받침해주는 강력한 신선함과 풍부한 감칠맛으로 인해 후회는 없습니다.


크랩만을 주문하는 것이 다소 단조로워 보인다면 새우(Prawn)를 함께 주문하는 것도 좋습니다. ‘킹’이라는 수식어가 붙어도 좋을 만큼 큰 이 새우는, 크기가 여느 생선 못지않습니다. 크기만큼이나 속살도 푸짐해서 소스에 찍어 한입 베어 물면 그 쫀득쫀득한 식감과 함께 풍성한 맛이 올라옵니다.


또 한 가지, 오늘의 반주로는 와인을 주문해 봅니다. 신선한 해산물과 잘 어울릴만한 화이트 와인과 강렬하고 진한 향의 레드 와인. 목을 타고 흘러내리는 와인의 향긋한 맛이 식욕을 더욱 돋우면 이 입맛을 따라 손과 입이 더욱 바빠집니다.

페퍼 양념의 크랩 요리

식사를 마치고 나올 무렵, 하늘은 어느새 구름으로 가득 덮여 작은 빗방울을 내리기 시작합니다. 우산 없는 이방인들, 한국에서와 달리 굳이 이곳에서는 우산을 찾지 않습니다.


비 내리는 이국의 낯선 도시, 내 몸에 천천히 스며드는 비, 그 도시에 서서히 스며드는 나. 모든 것이 여행을 통해서만 가능한 경험입니다. 오늘도 이 도시에 관한 소중한 추억이 차곡차곡 쌓여갑니다.



♫ 에피소드 주제곡 ♫    

▶︎ Kiss the Rain // pf : 이루마
▶︎ https://youtu.be/imGaOIm5HOk
▶︎ 세상에는 참 감성적이고 서정적인 피아노곡들이 많지만, 나는 이 곡을 연모합니다. 지금보다는 꽤나 젊었던 시절, 이루마도 그랬고 나도 그랬던, 2003년에 발매된 앨범 'From the yellow room'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루마의 인터뷰에 따르면, 영국유학 시절 학교에 가려면 워털루 다리를 건너야 했는데, 비 오는 날 다리를 건너다가 떠오른 멜로디로 작곡한 곡이 <Kiss the Rain>이라고 합니다.
곡이 시작되면, 봄날 가랑비의 빗방울처럼 <Kiss the Rain>의 한 음 한 음이 살포시 우리들 마음에 내려앉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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