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비 내리는 낯선 이국의 도시, 내 몸에 천천히 스며드는 비,
그 도시에 서서히 스며드는 나.
모든 것이 여행을 통해서만 가능한 경험입니다.
한때 실론(Ceylon)이라 불리던 나라가 있습니다. 최대 도시 콜롬보(කොළඹ, கொழும்பு, Colombo)까지는 비행기로 9시간, 여느 아시아 국가들보다는 긴 비행시간입니다. 인도양의 섬나라 스리랑카, 바로 옆에는 신혼부부들이 선망하는 여행지 중 하나인 몰디브가 있습니다. 스리랑카행 국적기가 콜롬보를 들러 몰디브로 들어가기 때문에 허니문 시즌에는 참 많은 신혼부부와 동승하게 됩니다.
실론티라는 이름의 유명한 홍차 음료가 있죠. 그 실론이 바로 스리랑카의 옛 이름입니다. 홍차 산지로 유명한 스리랑카에는 세계적으로 품질을 인정받는 ‘베질루르(Basilur)’, ‘딜마(Dilmah)’와 같은 홍차 브랜드들이 있습니다. 스리랑카 고유의 여행 선물을 생각한다면 베질루르와 딜마의 홍차가 꽤 괜찮은 선택이겠다 싶습니다. 알루미늄 상자 안에 고급스럽게 담겨 있는 홍차, 더할 나위 없는 훌륭한 맛을 선사합니다.
홍차와 함께 스리랑카에서 꼭 맛보아야 할 것은 바로 해산물입니다. 섬나라답게 스리랑카에는 바다에서 갓 건져 올린 어류, 갑각류 등을 주제로 한 다양한 요리가 여행자들을 유혹합니다. 그중에서 ‘미니스트리 오브 크랩(Ministry of Crab)’은 그 이름과 식재료에서 단연 기억에 남을만한 식당입니다.
미니스트리 오브 크랩, 우리 말로는 ‘게부’라고 번역을 해야 할까요? 다소 엉뚱한 이름의 이 식당은 콜롬보 시내 ‘옛 네덜란드 병원(Old Dutch Hospital)’ 지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곳은 말 그대로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 병원이 있었던 자리입니다. 지금은 그 자리에 식당, 기념품점 등과 같은 상업 시설들이 과거의 모습과 조화를 이루며 들어서 있습니다.
미니스트리 오브 크랩에 들어서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크랩이 사이즈 별로 그려져 있는 메뉴판입니다. 작은 것부터 큰 것 순으로 크랩이 구분되어 있는데 가장 큰 사이즈의 이름은 다름 아닌 크랩질라(Crabzilla). 마치 고질라가 연상되는 크랩질라는 그 가격 또한 남다릅니다. 시기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2킬로그램 기준으로 200달러가 훌쩍 넘는 그 가격 역시 고질라급이라 하겠습니다.
크랩질라는 항상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가격도 가격이니만큼 보통은 중간 크기의 크랩을 선택하게 됩니다. 크랩을 선택했다면 그다음은 조리법을 결정해야 할 차례인데요, 페퍼, 커리, 칠리, 갈릭 칠리, 버터, 그 어떤 맛을 선택하더라고 원재료가 뒷받침해주는 강력한 신선함과 풍부한 감칠맛으로 인해 후회는 없습니다.
크랩만을 주문하는 것이 다소 단조로워 보인다면 새우(Prawn)를 함께 주문하는 것도 좋습니다. ‘킹’이라는 수식어가 붙어도 좋을 만큼 큰 이 새우는, 크기가 여느 생선 못지않습니다. 크기만큼이나 속살도 푸짐해서 소스에 찍어 한입 베어 물면 그 쫀득쫀득한 식감과 함께 풍성한 맛이 올라옵니다.
또 한 가지, 오늘의 반주로는 와인을 주문해 봅니다. 신선한 해산물과 잘 어울릴만한 화이트 와인과 강렬하고 진한 향의 레드 와인. 목을 타고 흘러내리는 와인의 향긋한 맛이 식욕을 더욱 돋우면 이 입맛을 따라 손과 입이 더욱 바빠집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올 무렵, 하늘은 어느새 구름으로 가득 덮여 작은 빗방울을 내리기 시작합니다. 우산 없는 이방인들, 한국에서와 달리 굳이 이곳에서는 우산을 찾지 않습니다.
비 내리는 이국의 낯선 도시, 내 몸에 천천히 스며드는 비, 그 도시에 서서히 스며드는 나. 모든 것이 여행을 통해서만 가능한 경험입니다. 오늘도 이 도시에 관한 소중한 추억이 차곡차곡 쌓여갑니다.
♫ 에피소드 주제곡 ♫
▶︎ Kiss the Rain // pf : 이루마
▶︎ https://youtu.be/imGaOIm5HOk
▶︎ 세상에는 참 감성적이고 서정적인 피아노곡들이 많지만, 나는 이 곡을 연모합니다. 지금보다는 꽤나 젊었던 시절, 이루마도 그랬고 나도 그랬던, 2003년에 발매된 앨범 'From the yellow room'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루마의 인터뷰에 따르면, 영국유학 시절 학교에 가려면 워털루 다리를 건너야 했는데, 비 오는 날 다리를 건너다가 떠오른 멜로디로 작곡한 곡이 <Kiss the Rain>이라고 합니다.
곡이 시작되면, 봄날 가랑비의 빗방울처럼 <Kiss the Rain>의 한 음 한 음이 살포시 우리들 마음에 내려앉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