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지금 이 순간이 많이 그립겠지,
또 그런 순간이 오면 나도 모르게 다시 비행기 편을 예약하겠지.
여행자들을 위한 특화된 거리가 있습니다. 일명 여행자 거리. 태국의 수도 방콕 카오산(Khao San) 거리가 그중에서 대표적인 곳이라 할 수 있죠. 방콕에 카오산 거리가 있다면 호찌민시티(Thành Phố Hồ Chí Minh, Ho Chi Minh City)에는 부이비엔(Bùi Viện) 거리가 있습니다.
부이비엔 거리는 각국의 여행자들로 항상 붐빕니다. 특히 핼러윈 축제 기간과 같이 특별한 날에 간다면 평소에 볼 수 없는 재미난 볼거리를 즐길 수 있죠. 다양한 분장의 인파로 가득 찬 거리, 날개를 단 하얀 천사, 얼굴부터 발끝까지 새까맣게 단장한 악마, 다들 저만의 개성 있는 분장으로 그곳을 찾은 여행자들의 뜨거운 환호를 이끌어 냅니다. 여행자들 또한 자기만의 사진을 찍으면서 점점 더 그 열기 속으로 들어가게 되죠.
부이비엔 거리의 명소 '크레이지 버펄로(Crazy Buffalo)'. 그 가게의 커다란 버펄로 간판에서 한참 떨어진, 길 끄트머리 한편에 볼거리와 음식맛을 제대로 갖춘 노상 주점이 있습니다. 가게 이름도 주소도 전혀 알지는 못하지만 이 거리에 들어서면 본능적으로 찾아가게 되는 그런 곳입니다.
그 길거리 주점 앞에는 초록색의 아주 작은 테이블이 여러 개 있고 그 테이블 주위로 흔히 목욕탕 의자라고 불리는 낮은 의자들이 놓여 있습니다. 특이한 점은, 의자가 모두 거리 방향으로 있다는 것입니다. 거리 자체가,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이 볼거리인 셈이죠.
이 집의 주 메뉴는 벌건 숯불 위에서 맛있게 구워내는 구이 요리들입니다. 구이의 재료에는 새우, 오징어, 문어와 같은 해산물이 있고 닭고기, 돼지고기와 같은 고기류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평소에 잘 접하지 못하는 다양한 특수 부위도 있기 때문에 평소 음식에 대한 호불호가 적고 호기심이 많은 여행자라면 언제든 용기 있는 선택을 할 수도 있습니다.
가게 직원이 건네준 메뉴판을 흘낏 보고 언제나처럼 문어 구이를 주문합니다. 그 크기도 우리네 식으로 소, 중, 대, 특대 등으로 구분이 되어 있는데요, 보통은 저녁 식사를 하고 이곳에 들르기 때문에 '중'자 정도가 적당합니다.
이렇게 좋은 안주거리가 있는데 맥주가 빠질 수는 없습니다. 여기는 베트남, 그중에서도 사이공(Sai Gon). 오직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맥주가 필요합니다. '사이공 엑스포트(Saigon Export)' 맥주처럼. 게다가 맥주 한 병은 1달러 남짓, 결코 부담스러지 않은 그 가격에 흥이 절로 올르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거리를 잠시 응시하는 사이에 주문한 음식이 테이블에 도착합니다. 역시나 숯불 구이는 튀김 요리만큼이나 그 재료가 무엇이든 맛깔스러운 모양과 향과 맛을 뽐내는 것 같습니다. 이제 안주가 왔으니 맥주병을 집어 들고 병째로 들이킵니다. 열대 지방에서 마시는 맥주의 진정한 맛은 이런 노상에서, 저녁에도 식지 않는 현지의 후텁지근한 기온과 함께하는 것에 있습니다.
사이공 맥주가 전달하는 시원하고 진한 탄산기가 목을 타고 강렬하게 전달됩니다. 이 탄산과 함께 어제의 걱정도, 내일의 근심도 같이 사라질 수 있을까요? 만약 그렇게 해서 모든 걱정이 없어진다면 밤을 새워 이 가게의 모든 맥주를 마신다 하여도 후회 없을 밤입니다.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지금 이 순간이 많이 그립겠지, 또 그런 순간이 오면 나도 모르게 다시 비행기 편을 예약하겠지. 언제 올지 모를 또 다른 여행 계획 생각으로 부이비엔 거리에서의 뜨거운 밤이 깊어갑니다.
♫ 에피소드 주제곡 ♫
▶︎ 떠나자 // 에피톤 프로젝트
▶︎ https://youtu.be/vEtvdCyxzBU
▶︎ 여행을 다닐 때면 항상 챙겨 듣던 앨범이 있었습니다.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공항버스 안에서, 한가롭게 휴식을 취하던 공항 라운지에서, 막 도착한 호텔의 새하얀 시트 위에서,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서도. 1인 프로젝트 그룹, 에피톤 프로젝트가 2012년에 발표한 앨범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는 여행의 설레는 마음과 함께한 소중한 동반자였습니다. 이 앨범에 수록된 모든 곡이 다 사랑스럽습니다. 그중에서도 이번 에피소드에 맞는 곡은 <떠나자>로 정해 보았습니다.
"이 시간이 마지막이야 다정했던 이 도시를, 안녕. 꿈만 같던 오랜 시간의 거리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지금도 <떠나자>를 듣고 있으면 부이비엔 거리에서 여행 마지막 날에 마셨던 맥주와 길거리를 오고 가던 사람들에 관한 추억이 몽글몽글 샘솟는 것만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