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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원하 Sep 18. 2020

프놈펜 . 출장과 여행 사이

캄보디아

현실은 내가 일로서 여기 왔다는 것,
그러나 마치 여행을 온 듯한 착각에 젖어들게 하는 공간.
처음 겪어보는 이런 경험.



다른 나라로 일하러 떠나는 것을 해외출장이라 하고 편안한 휴식이나 이런저런 구경을 위해 떠나는 경우를 해외여행이라고 하죠. 가끔은 이런 경계가 모호해지는 경험을 하기도 하는데요, 그 특이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រាជធានីភ្នំពេញ, Phnom Penh)에 있는 플랜테이션 리조트(Plantation Resort)입니다.


보통 도심 속에 위치한 숙박 시설의 이름에는 무슨무슨 호텔이 많고, 해안가 풍경이 좋은 곳에 위치한 경우에는 무슨무슨 리조트라는 이름이 많죠. 그런 의미에서 플랜테이션 리조트는 다소 예외적인 곳입니다. 프놈펜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이 리조트는 그 이름에서 의도한 바와 같이, 다양하고 커다란 식물들이 입구에서 여행자를 반깁니다.

리조트 입구

정문에서 바로 마주하게 되는 조그마한 연못을 지나면 리셉션 데스크가 있습니다. 친절한 직원의 도움을 받아 체크인을 하고 며칠간 머무를 방으로 이동합니다. 그런데 방으로 이동하는 길이 여느 호텔과는 많이 다릅니다. 보통은 호텔 직원의 도움이 없이, 리셉션 데스크에서 곧바로 보이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해당 층에서 내린 후 방 번호를 안내하는 표지판을 따라 쉽게 찾아갈 수 있죠.


이곳에서는 마치 미로와도 같은 복도를 지나고, 몇 개의 층계를 오른 후 다시 복잡한 복도를 따라 이 방향 저 방향으로 이동해야만 방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초행자는 반드시 리조트 직원의 도움을 받아야만 찾아갈 수 있는 매우 난이도가 높은 미션입니다.


방은 정말 남다른 장식과 향기로 가득합니다. 천장 위의 선풍기를 켜면 작은 바람이 선들선들 아래로 내려오고, 그 바람을 따라 좋은 향기가 방안에 가득 퍼집니다. 보통 마사지숍 같은 곳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이 향은 긴장을 완화시키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됩니다. 가끔은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존재하는 그 순간 자체가 행복일 때가 있습니다. '이 방 침대 위'가 딱 그런 경험을 선물합니다.


낯선 곳에서의 하룻밤을 보내고 이른 아침 조식을 먹기 위해 식당을 찾아 나섭니다. 식당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제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 가야 하는데 그 과정이 역시나 순탄치 않습니다. 어제의 기억을 더듬어 잘 찾아가더라도 두 갈래 갈림길에서는 왠지 자신감이 떨어집니다. 그렇지만 그 어느 쪽을 선택을 하더라고 괜찮습니다. 조금 돌아서 가든지 바로 가든지의 문제이니까요.

리조트 로비

그렇게 도착한 조식당에서 다시 한번 이 리조트가 주는 독특한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오픈된 야외 공간의 한편에 있는 식당과 그 앞에 자리 잡고 있는 풀장, 그리고 그 풀장 주변의 열대 나무들이 한데 어우러져 여지없는 동남아 휴양지 모습을 연출합니다.


지금 이 공간에는 아침 일찍부터 물놀이를 나온 가족들도 보이고, 선텐 의자에서 조용히 아침 햇살을 즐기는 여행자도 보이고, 나와 같은 출장자들도 보입니다. 게 중에는 그 풍경을 부러운 듯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고, 아침식사 자체에 열중인 사람들도 있고, 무엇인가에 대해 아침부터 진지하게 토론 중인 두 남자도 있고...


현실은 내가 일로서 여기 왔다는 것, 그러나 마치 여행을 온 듯한 착각에 젖어들게 하는 공간. 처음 겪어보는 이런 경험이 꽤 괜찮다, 생각됩니다. 출장이라는 단어가 주는 딱딱함과 고단함이 리조트라는 여유롭고 자유로운 공간에서 녹아버리는 맛을 볼 수 있으니까요.

식당 앞 풍경

오늘은 프로젝트 중간 보고회가 있는 날이라서, 잠시 후면 하얀색 셔츠에 하늘색 넥타이를 맨, 진청색 정장 차림으로 길을 나서야 합니다. 정장을 차려 입고 회의에 참석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언제나 긴장되는 일이죠. 그래도 오늘은 플랜테이션 리조트에서 얻은 이 이색적인 감정으로 인해 숙소를 나서는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울 것 같습니다.


마침 식당 바로 옆에는 마사지숍이 하나 있는데요, 마음을 한없이 편하게 해주는 명상 음악과 온몸의 긴장을 단번에 풀어줄 아로마 계열의 향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귀와 코를 사로잡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이곳에서 쌓인 피로도 풀고 여행의 느낌도 살짝 경험할 겸 해서 마사지를 좀 받아야겠습니다.


출장의 퍽퍽함을 여행의 달달함으로 변신시켜 주는 이곳, 플랜테이션 리조트에서 나름대로의 호사를 누려봅니다. 그리고 누군가 프놈펜으로 출장을 온다면 꼭 이곳을 예약해 보라는 당부의 말도 전해야겠다 싶습니다.



♫ 에피소드 주제곡 ♫    

▶︎ Lotus // Secret Garden
▶︎ https://youtu.be/Zrxdgat3y9c
▶︎ 노르웨이인 남자와 아일랜드인 여자가 들려주는, 마음이 정말 편안해지는 곡입니다. 제목 <Lotus(연꽃)>가 말해주듯이 불교와 동양적 색채가 강하게 느껴지는 음악입니다. 불교 국가인 캄보디아, 불교의 상징인 연꽃, 연꽃을 주제로 한 연주곡 <Lotus>. 
내가 몹시 힘들었던 시절, 밤에 잠자리에 들 때면 늘 아침이 오는 것이 두려웠었죠. 아침에 눈을 뜨면 가슴 한 구석을 짓누르는 강한 압박감을 경험하던 때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라디오에서 우연히 <Lotus>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을 편안하게 보듬어 주는 이 곡으로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캄보디아의 어느 스파에서 세상 가장 편한 자세로 누워 <Lotus>를 듣는다면 이보다 더한 위안이 있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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